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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돼지

by 안종익


지금은 연료를 석유나 전기로 쓰기 때문에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할 필요가 없지만, 수 십 년 전만 해도 겨울에 시골에서는 산에 나무하러 올라갔다. 산속에서 나무를 해 가지고 내려올 때에 쉬어 가는 곳이 있다. 바람이 안 불고 따뜻한 곳에서 나뭇짐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것이다. 그곳은 보통 양지바른 곳이고 아래가 잘 보이는 곳이다.

앞산 그런 곳에 조부모님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잔디도 잘 자라고 햇볕도 잘 들고 바람도 막아주는 아늑한 곳에 조부모님의 묘소가 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지만 자주 가지는 못한다. 일 년에 벌초하러 갈 때 가지만, 그 벌초도 대행업체에 위탁하면 못 가는 해도 있었다. 대다수의 묘소들이 이렇게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 벌초할 시기가 아니어서 조부모님의 묘소에 갈 일이 없는데, 갑자기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다. 조부모님의 묘소가 훼손되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급하게 올라가 보니, 아늑한 곳에 자리한 조부모님의 묘소는 없어지고 큰 공사를 하기 위해 기초작업을 하려는 것같이 낯선 곳으로 변해 있었다.

분봉은 거의 사라지고 주변은 파 해쳐져 있었고, 의도적을 이렇게 만들려고 해도 힘들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산돼지가 먹이를 찾아서 뒤집어 놓은 것이다. 작은 벌레나 풀뿌리를 캐 먹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묘지가 있는 곳은 다른 곳보다 관리가 되어서 풀이나 나무가 없어, 산돼지가 산속을 다니다가 묘지가 있는 곳은 주둥이로 땅을 파기가 쉬운 곳이다. 분봉이 둥글게 만들어 놓았고 편평한 땅이어서 쉽게 팔 수 있는 곳이 묘지이다.

수년 전 다른 산에서 이같이 산돼지가 묘지를 파헤쳐 놓은 곳을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 묘지에 나쁜 감정이 있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와 들어보니까 산돼지가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다. 다음에 그 묘지를 가 보니까 관리가 되지 않아 거의 산이 되어 있었다.

산돼지가 산속에서 먹이 사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산속에 있는 묘지는 어느 곳이나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산돼지 먹이가 있는 묘지는 지금까지 괜찮았던 곳도 알 수 없다.


이렇게 방치하면 산이 될 것 같아 다시 분봉도 만들고 잔디도 심었다. 그렇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산돼지는 오히려 한번 했던 곳이니까 또 할 가능성이 많다.

앞으로 묘지 관리가 문제이고 이렇게 산속에 묘지를 쓰는 문화는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

산속에 묘지는 관리도 힘들고 관리할 사람이 없어져 간다. 자손들 중에 누군가 관리하면 되지만, 그 역할을 할 사람은 맏아들을 중심으로 내려간다. 맏아들이 아닌 사람이나 딸들은 관리에서 멀어지고 관심도 거의 없다. 맏아들도 이제는 이어지지 않고 단절되는 가문들이 많다. 이런 가문들은 조상 묘소는 관리되지 않고 산이 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지금도 맏이가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면 관리하지 않아서 산이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경우가 흔하다.


수십 년 전에는 묘지가 계속 늘어나면 모든 산천이 묘지가 되어 큰일이라고 걱정하던 일이 이젠 한낱 기우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앞으로 산속에 묘소를 쓸 사람도 없고 쓸 수도 없는 환경이 되어 간다.

그래서 기존의 묘소도 관리하기 어려워지니까 맏아들이나 문중에서 조상을 기억하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멀리 있는 산소를 가까이 차들이 갈 수 있는 곳으로 모으고 있다. 본인들이 기억해야 할 조상들을 한 장소로 모시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산속에 있는 산소를 찾지 못해서 관리를 못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면 깊은 산속에 들어갈 사람도 없을 것이다.

조상들을 한 곳에 모아서 비석을 세워서 관리하는 방식이다.

그 비석을 세울 때 산소의 파서 그 유골을 화장해서 가져와서 묻고 비석을 세우는 경우가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도 하지 않는다. 산소를 훼손하지 않고 산소에 있는 흙만 조금 갖다가 묻고서 작은 비석을 세우는 것이다. 이런 간편한 방법이 요즈음 대세이다. 그렇게 하는 명분은 무덤 속에 유골은 건들지 않고 그냥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무덤의 흙으로 유골을 대신하고 그 흙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결국은 편하게 하려고 명분을 만든 것이다. 어쩌면 매장문화 자체가 큰 의미 없는 인간의 마음속의 명분이고 습관적으로 내려온 관습일 뿐인 것이다.


아직도 매장을 원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아마도 자손들이 묘소에 자주 오고, 오래 기억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묘소를 찾을 사람은 가까운 자식뿐일 것이다. 앞으로는 보지 못한 조상의 묘지는 자손들이 자주 찾지도 않고, 묘지가 관리된다는 보장도 없다. 오직 살아서 정을 나눈 사람들만 기억하고 죽어도 그리우면 묘지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사후에도 자신이 기억되고 자신이 묻힌 곳에 오랫동안 찾아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차라리 문학이나 예술을 해야 할 것 같다.

자손들을 번창시키고 가풍을 잘 만들어 놓으면 아무리 길어도 삼대를 못 넘어가지만, 기록에 남는 예술은 더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런 예술로 이름을 얻으면 그 유적지에는 그의 뜻을 같이 하거나 관광객이 오랫동안 찾아올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조상은 찾지 않아도 이름 있거나 흔적을 남긴 작품이 있는 사람은 찾아간다.

그렇게 해도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그런 예술가도 그 유명도에 따라 잊히는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잊힐 것이다. 요즈음은 유명한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별것이 아닌 것을 해도 명분이 있는 일을 한 사람이 빛을 보는 세상이고 아직도 예술은 그냥 사는 것보다 고상한 것이고 문명인으로 대우받는다.

지금은 유명한 사람이 눈에 잘 들어오고 기억하는 분위기이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세상이고, 대중들의 좋아하는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누구도 모른다.

차라리 고뇌하며 살아서 무엇이 되어 오래 기억되는 것보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묘지 주위에 파헤친 골도 메우고 다시 분봉을 만들었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아직은 손자로서 살아 있으니까 그대로 산이 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조부모님이고, 같이 정을 나누고 나를 챙겨 주시던 분들이다. 나는 기억하고 관리해야 할 조상 묘지이다.

물론 이웃 사람이 묘지를 관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눈치를 보았지만, 이제 그렇게 눈치를 줄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 이웃에 나이 든 사람들이 돌아가시면 산에 있는 묘지가 누구 것인지 관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당장에 두려운 것은 산돼지이다.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오더라도 그냥 지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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