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앞산으로 넘어갈 무렵에 새떼들이 유난히 극성스럽게 날아다닌다.
한쪽으로 급하게 한 무리가 이동했다가 다시 반대로 날아가면서 온 하늘이 새떼들이다. 빨리 날면서 급하게 솟았다가 내려가는 모양이 참새 떼이다.
참새들은 가을에 나락이 익을 때 논으로 날아들면 농민들은 싫어하지만, 참새는 개의치 않고 배불리 먹으면서 새끼들이 늘려나간다. 그래서 참새가 많아지면 겨울에는 강남 간 제비집에도 참새들이 들어가 살기도 한다.
여름에는 하늘을 유연하고 시원스럽게 큰 선을 그으면서 날아다니는 제비에 비해서 참새 무리는 급하게 하늘로 올라다가 방향을 틀어서 한 곳으로 내려앉는 것이 제비와 확연히 구분된다.
제비가 떠난 겨울은 온통 참새의 세상이었다.
음력으로 삼월 삼짇날에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 했는데, 벌써 삼월 삼짇날이 지난 지도 며칠이 지났지만 날아다니는 제비를 보지 못해서 제비 찾으려고 하늘을 유심히 바라본다.
까치와 까마귀는 옛날부터 보아온 새이고, 까치를 닮았는데 산속에 주로 사는 어치는 산까치라고도 불리기도 하면서 색깔만 다른 토종 새이다.
몇 년 전부터 보지 못했던 새가 날아다닌다. 크기는 까치와 비슷하지만 꼬리가 유난히 길고 색깔이 푸른빛을 띠는 새이다. 산속보다는 논밭이 있는 산과 경계를 이루는 숲에 주로 살면서 무리 지어서 산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과일을 좋아하는지 사과나 배, 감나무에 무더기로 앉아 있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종은 확실한데,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꼬리가 길어서 그런지 그렇게 빨리 날지도 못하고 사람이 다가가면 다른 새들이 다 날아가고 마지막에 도망가는 새이다.
또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두루미와 가마우지들이 냇가에서 활개를 치고, 그 청둥 오리들도 때를 지어서 다니고, 들이나 집에는 콩새와 딱새도 흔히 보이고 딱따구리도 심심찮게 보인다. 봄이나 여름에는 종류가 많아서 산비둘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요즈음은 새들의 천국이다.
새들이 많아졌지만, 농작물을 어느 정도 먹어도 농민들은 개의치 않을 정도로 여유 있는 분위기이다.
저물어가는 저녁에 먼 들판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기이다.
새들도 둥지로 돌아가 긴 밤을 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분주히 움직이면서 시끄럽게 재잘대는 것 같다.
먼 산에는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할 무렵,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참새 사이로 수려하게 곡선을 그리면서 날아오는 새가 보인다.
마치 제비처럼 내가 열어 놓은 창문 위쪽으로 날아든다. 창문 위에는 작년에 지어 놓은 제비집이 두 채나 있는 곳이다. 그 새가 급하게 창문 위로 날아올라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날아가는 뒤태가 제비였다.
작년에 지어 놓은 제집을 찾아온 것이다. 제비가 자기 집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지금 왔다가 간 제비는 작년에 왔던 제비이거나 이 집에서 작년에 태어나서 강남으로 떠난 아들 제비일 거라고 믿고 싶다.
모친이 계실 때 유난히도 제비에게 잘해 주셨다.
제비가 길조이고 잘해 주면 “박씨”라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 “박씨”는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무탈하기를 비는 마음인 것이다.
제비가 집에 들어오면 재잘거리는 소리는 듣기 좋은 노래로 들 리 수는 있지만, 밑으로 떨어지는 제비 똥은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모친은 청소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매일 쳐다보면서 제비집마다 새끼를 몇 마리 낳았고 잘 크는지 지켜보고 사셨다.
혹시라도 떨어진 새끼가 있으면 고양이가 오기 전에 다시 집으로 올려놓기도 하면서 여름내 제비와 같이 사셨다.
모친은 해마다 오는 제비와 같이 사시다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시면서 집에 있는 제비와 이별했다. 제비와 같이 살던 집을 그리워하면서도 가지 못하고 병원에 오랫동안 계셨다.
모친이 병원에 계신 동안에 제비는 집으로 오지 않았다. 제비는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에는 들지 않는다. 모친이 돌아가시고,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제비는 다시 찾아온 것이다. 제비들은 모친이 아닌 그 아들인 줄 모를 것이다.
모친은 오고 싶었던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가셨지만, 제비는 다시 돌아왔다. 작년에 왔다가 올해도 다시 찾아온 것이다.
돌아온 제비를 보면서 모친이 그리워진다.
모친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 같아서 대문을 유심히 바라본다. 대문은 바람에 흔들릴 뿐 열리지는 않았다.
어디서 모친이 부르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지만 모친은 어디에도 다시 볼 수 없다.
그리움만 가슴에 남아 있고 그 옛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녘에서 모친과 냉이 찾으러 다니던 행복한 날이 떠오른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 말은 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떠난 뒤에 확실히 마음에 다가오는 말이다. 떠난 사람에게 해 줄 수 없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겹쳐서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가까운 사람도, 가까이 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멀어진다. 멀어지기 전에 좋은 마음을 전하고, 하고 싶은 말들을 해야 한다.
“엄마 고맙다”
촌수가 가까운 사람에게 더 잘해야 하고 좋아하는 말만 해야 한다. 가까운 가족은 쉽게 화해도 하지만, 사소한 말에 남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나 사람도 같은 이치이다.
하고 싶은 말이나 해야 할 말을 전할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작년에 왔던 제비가 벌써 다시 돌아왔지만, 작년 제비는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 본 제비는 작년 제비의 아들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