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 밀라노까지 기차로 2시간 30분 타고 왔다.
밀라노 역에서 내렸는데, 역의 규모가 너무 커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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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내려 한참을 가도 입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크다.
놀랍도록 큰 기차역을 가진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의 최대 도시이며, 도심의 인구는 로마 다음으로 많은 도시이다. 주변의 인구를 더하면 이탈리아 최대의 도시이면서 경제 중심지이다.
금융이나 주식시장, 대기업 본사 그리고 공장들이 모두 밀라노에 있기 때문에 밀라노 사람들이 로마를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 밀라노는 세계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도시이기 때문에 자존심이 센 도시로 소문이 나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 칙령”으로 가톨릭을 인정한 것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밀라노 중앙역 광장에 나오니까 역 광장도 너무 넓다.
광장 중앙에 있는 하얀 사과는 최근에 만든 것이라고 하고,
이 중앙역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만들었다고 한다. 로마나 그리스의 궁정처럼 최대로 만들려고 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버리고 그 당시는 보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솔리니가 중앙역을 대리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처음 보면 박물관처럼 보인다. 실제로 지금 중앙역 안에는 박물관도 있다.
무솔리니의 영원할 것 같았던 권력도 망하고 스위스로 도망가다 잡혀서 죽음을 당했는데, 그 죽은 시체를 다시 중앙역을 만들면서 쫓겨난 사람들이 칼로 난도질하고 옷을 모두 볐겨서 역 광장에 높이 매달아 놓고 저주했다고 한다. 같이 도망가던 무솔리니의 애인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중앙역을 만들면서 원주민들에서 한이 맺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중앙역이 지금은 유럽 최대의 역으로 밀라노 주민들은 엄청난 편리함을 느끼고 있다고 하니까 그 편리함이 독재의 부작용인지 잘한 일인지 헤갈 린다.
밀라노 대성당을 찾아 구글 앱이 가리키는 곳으로 갔다.
밀라노의 상징이며 유일한 볼거리라고 불리기도 한 밀라노 대성당은 고딕 양식으로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성당이다. 600년에 걸쳐서 만들어다고 하며, 건물의 외벽에는 수많은 조각상들이 있다. 이 밀라노 대성당 주위가 이곳에서는 가장 땅값이 비싸다고 한다.
성당 내부에 들어가 보니까 열 아름드리 대리석 기둥이 50개 이상 성당을 지탱하고 있고, 중간에 있는 대리석 기둥의 천장 부근에는 사람들이 조각되어 있다. 큰 대리석에 돌아가면서 모두 조각되어 있으니까 한 기둥에 열 사람은 조각되어 있는 것이다.
앞쪽 대리석 기둥에는 모두 조각되어 있고, 양쪽 벽면에도 조각되어 있다. 이 성당 내부에만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조각된 얼굴 상이 모두 다른 것인지, 아니면 일정한 팬턴이 얼굴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특히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고 한다.
좌측에 있는 마리아 상은 아마도 이름있는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
성당의 외부에 나오니까 벽면에도 사람들이 조각되어 있고, 특히 뽀족한 첨탑 꼭대기에는 사람의 전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첨탑 끝에 조각된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일 것이다.
전면에서 보면 잘 보이지는 않지만, 황금색으로 예수님 상이 가장 높게 조각되어 있다. 또 전면에 잘 보면 첨탑의 앞쪽에 조각된 상들의 숫자가 12명이다.
성당 광장 앞에는 이탈리아 통일 왕국의 초대 왕 에니누엘레 2세 동상이 서 있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스포르 체스코 성이 있다.
이 성은 15세기 경에 밀라노 영주가 지은 것으로 그 뒤는 셈치오네 공원인데 밀라노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한다. 넓은 공원에 잘 가꾸어진 나무와 호수 사이로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작은 호수를 건너는 다리에 앙증맞은 인어들이 노를 들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스포르 체스코 성에는 미켈란 제로의 미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서 더 유명하다.
다음에 간 곳은 산타 마리아 델리 그라치 성당이다.
이 성당을 어렵게 찾아갔지만, 개방시간이 지났다고 들여보내주지를 않는다. 이 성당은 아담하고 작은 성당이지만 레오니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그림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을 볼 생각으로 왔는데 출입시간이 지났다고 막으니까 어쩔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지 않고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혼자 가지 않고 계속 있으니까 수위가 오라고 하더니 손가락 셋을 표시했다. 3유로를 주면 들여보내 주겠다는 뜻이다. 나는 2유로만 주고서 들어가려고 하니까 못 이기는 척하면서 들어가라고 했다. 들어가 보니 성당 안에는 십여 명이 미사를 드리고 있었지만,
나는 오직 성당 벽에 어디 그림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그림은 보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성당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부속 식당 건물 벽화로 그려져 있고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볼 수 있다고 한다.
브레라 미술관은 밀라노 대성당과 다른 방향에 있는데,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비교될 정도로 중세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있는 곳이다.
사실 예수님의 그림은 어느 미술관이나 거의 비슷한 것을 느꼈고, 그린 화가에 따라서 약간씩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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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예수님이나 성모에 관한 그림은 거의 비슷해서 안 봐도 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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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라 미술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키스”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고 그 주위에 있는 그림들이 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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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서는 4일이나 머물렀지만 많은 곳을 다니지 않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실제로 구경거리는 반나절만 보면 된다는 도시이다.
그래도 도심 속에 색다른 건물이 있어서 찾아서 그곳까지 가보니, 건물 외부에 나무 조경을 해서 처음 보는 건물의 모습이었다
또 도심에는 공원이 잘 조성되어서 시민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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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원 안에는 반려견의 공원도 만들어져 그 주인들과 같이 놀고 있었다.
여기서 외국에 나와서 성공한 지인을 만났다. 오랜만에 맛난 음식과 즐거운 시간을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해보니까 사람이 사는 것은 거의 비슷했고, 차이가 있다면 돈이 많고 적음의 차이라는 느낌이다. 또 마음의 여유는 돈의 숫자에 비례하지는 않고, 개개인의 성격에 달린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밀라노의 대형 건물 밑에 밤이 되어 노숙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노숙자는 어디를 가도 있고, 어느 도시의 노숙자나 사연이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한 노숙자가 뚜꺼운 메테레스 위에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다른 노숙자보다 호사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