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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1일차

by 안종익


프랑스 작은 마을 생장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마드리드에서 기차로 팜플로나로 이동해서 다시 버스를 타고 생장 마을에 도착했다.

숙소를 정하기 전에 산티아고 패스포트를 발급하는 곳을 찾아 돈 주고 발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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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지마다 스탬프를 찍으면 마지막에는 산티아고를 순례했다는 증서를 준다고 한다. 별 의미를 두고 싶지 않지만, 이것이 있으면 공식적인 알베르게(숙소)에 묵을 수 있다고 하니까 받아 둔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을 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보다, 그냥 길이 있으니까 걷는다는 생각으로 가고 싶다.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에 순례자들은 저마다의 숙소에서 나와 걸어가고 있다. 각자가 어떤 생각으로 걷는지는 모르지만, 이 길을 모두가 걷고 싶어서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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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조용히 보슬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오르막을 천천히 오르는 사람들은 옛날 성지를 순례하는 모습도 이와 같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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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순례자가 되어서 보슬비 속을 건건한 마음으로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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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준비한 비옷은 산티아고를 순례 중에 한두 번 쓸 정도로 비가 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시작부터 비가 내린다. 그러나 누구도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은 없다. 나이 든 부부도 있고 젊은 사람도 있다. 젊은 사람들은 여행 온 기분으로 웃고 떠들면서 걷지만, 나이 든 노인들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보인다. 모두가 무엇인가 얻으려고 이 길 이른 아침에 걷고 있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었지만, 가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이 길을 왜 걷는지 알고 싶다. 지금 분위기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찾을 만한 환경이다.

불과 서너 달 전에 이 길과 거리가 비슷한 동해안 해파랑길을 그 추운 날에 걸었던 것이다. 그래서 긴 거리를 싶은 마음은 없어서 스페인에 오기 전에는 걸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걷고 있다.

유명한 순례길이니까 믿음에 대한 회의나 갈등이 있어서 생각해 볼 시간을 갖기 위해서 걷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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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야고보의 순례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안식과 평온을 얻고 경건한 신앙인으로 살고 싶은 심정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일 것이다. 나는 무신론자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그런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 길을 걸으면서 내가 흔히 말하는 “생고생”이니 “개고생”이란 말은 쓰지 않으려고 한다. 성지를 걷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 같다.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오르막이 프랑스와 스페인의 사이에 있는 피레네산맥 줄기라고 들었다. 이 코스가 인기 있는 것은 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피레네산맥 코스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다고 한다.

그런 아름다운 코스가 안개가 끼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흰색 천지이다. 그렇게 아름답다던 이곳을 안개가 보지 못하도록 하니까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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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르막이 완만해서 오르기도 편하고 내 취향에 딱 맞는 걷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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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아보기 위해서 이 길을 걷고 싶다고 잘 아는 지인에게 이야기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내게는 충격적이다.

“너는 맨날 돌아 보니” “아직도 돌아볼 것이 있나”였다.

그 말이 왜 충격이었는지 안다. 내가 지금 돌아봐야 무엇을 할 것도 아니고, 돌아볼 필요가 없는 나이이다. 돌아보는 것도 희망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러니 돌아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재만 잘 살면 되는 것이다.


차라리 길이 있어서 걷는다면 의미가 될 수 있다. 이곳은 안개가 걷히고 나니까 그 풍광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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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있으니까 마음이 힐링 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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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높은 곳에 곡선으로 이루어진 산들이나 푸른 초원과 계곡에 있는 구름이 멋진 그림이다. 그러니 트레킹 하러 왔다고 생각으로 바꾸면 걷는 이유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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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걷히고 구름이 산 사이에 갇혀서 머물고, 구름 사이에 솟은 완만한 산 위에는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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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에서 양들이 풀을 뜯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그 길을 걸어봐야 그 기분을 알 것 같다. 신앙인들의 순례길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걸으면 감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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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순례객들이 많이 가지만, 평소에 더 많이 걸어간다고 한다.

순례객 중에 말이 같은 사람을 만났다. 순례 첫날이니까 마지막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좋은 길동무를 만난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오면서 이 순례길을 걸으면서 생각할 기회가 적어질 수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 생각은 이 순례길은 혼자 가는 길이 더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완전히 같이 동행하는 것보다 가다가 만나면 반가운 사람으로 하고 걷기로 했다. 실제로 한동안 같이 걷다가 보니까 걸음이 늦어서 내게 먼저 가라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내가 생각하는 것이 되었다.


돌아가신 모친을 생각하면서 걷는 길이 될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생전에 잘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반성하고 모친이 천국에 가서 편안히 사시길 기도하면서 걷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은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 생각하면서 걷는 길이 되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조금 전에 만남 우리나라 순례객은 시차 적응이 안 돼서 입맛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니 한국에 있는 자식들이 파리 카르프에 한국 라면을 파니까 그 위치를 알려주고 사 먹으라고 할 정도로 순례를 나온 아비를 챙기는데, 일전에 이탈리아 입국할 때 급하게 필요한 것이 있어서 전화하니까 바쁘다고 하는 자식을 생각하면서 걷고 싶지도 않고,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걷는 길에 혼자 걸어야 하는 심정은 같이 순례에 나선 부부들을 보면서 가족을 위해 걷기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이제 안개도 걷히고 중간에 순례에 관한 표지판이 있었다. 그 표지판을 보려고 안경을 찾으니까 안경이 없었다. 숙소에 안경을 놓고 온 것이다. 안경이 없으면 인터넷도 못 보고 여행에 엄청난 지장을 주는 것이다. 그런 실수를 왜 했을까 하는 자책과 혼란에 빠진다. 한참을 짜증스러운 상황으로 빠지다가 생각을 바뀌기로 했다.

다음 숙소에 가서 안경을 사면 된다는 생각과 노트북이 안 보이면 햇볕에 나가서 자판을 보면 된다는 마음을 먹고 마음을 완전히 바꾸었다. 더 이상 스스로 자책하고 우울하거나 기분 나뿐 상황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상황은 인정하고 좋은 쪽으로 마음을 먹는 것이다.


이 길을 스페인에 왔으니까, 온 김에 가보자는 생각으로 걷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이 길을 걷기 위해서 다시 오지 않을 것 같고, 누구는 일부러 이 길만 걷기 위해서 온다고 하니까 걸어보는 것이다.

또 실제로 말이 안 통하지 않는 여행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걷는 것이고 그리니 산티아고 길을 걸으려고 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유로 걷는다고 하기에는 이것도 많이 부족한 것이다.


길은 프랑스를 넘어서 스페인으로 들어섰다. 길은 비슷하고 날씨마저 좋아지니까 산티아고 이름만큼이나 걷기 좋은 길이다. 이 첫 째날 길은 일직선이 많았지만 지루하게 하지 않는 길이다. 어떤 곳에는 울창한 숲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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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낙엽이 쌓여서 걷는 길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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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을 올라가면 더 멋진 풍광이 나오는 멋진 길이다. 이 피레네산맥의 길은 아름다운 길이기에 프랑스 생장 작은 마을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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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쯤 왔을 때 발가락이 아파지는 느낌이 왔다. 산길이고 순례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쎈달로 바꿔서 신었다. 전혀 산길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것이 첫날 순례길에서 가장 잘 판단한 것이다. 피레네산맥을 쎈달을 신고 넘으면서 발도 편하고 아무런 지장 없이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 더 보기는 해도 걷은 것은 무척 편안했다.


그래도 이 순례길을 걸으면서 의미를 부여하자면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서 걷는 것이고,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는 길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과거의 아쉬움을 이제는 버려야 할 때이다. 지난 정초에 그 추운 해파랑길을 걸으면서도 다 버리지 못한 미련과 집착의 찌꺼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그토록 열심히 일했던 지난날을 이제는 잊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를 잘 살기 위해서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이 길을 걷고 싶다.

이것이 산티아고 길을 첫날 걸으면서 생각한 것이다. 걸으면서 더 좋은 경험과 느낌이 올 것이라 믿고 걸어보는 것이다.

첫째 날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까 이제 만든 산티아고 패스포트를 잃어버린 것이다. 안경 외에 잃어버린 것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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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 들어가는 입구 표지판


첫날 숙소는 성당을 개조한 것으로 단체로 남녀 구분 없이 순서대로 침상을 배정하고 각자 알아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산티아고의 첫날은 이렇게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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