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이라 하면 연상되는 것이 춘향이고 광한루와 오작교를 기억할 것이다.
남원에 도착했지만 지리 감이 없어서 광한루 후문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이 넓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까 가장 많이 보이는 간판이 추어탕 집이다. 남원 추어탕은 우리나라 음식 중에 대표 음식이고 가성비도 훌륭하고 영양 면에서도 으뜸 메뉴이다.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좋은 음식이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집이 추어탕 간판을 걸고 장사하는 것은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말이다. 주차장에는 용 조각이 시원하게 물을 뿜고 있었다. 날씨가 봄이지만 더웠기 때문에 시원한 물줄기가 마음도 시원하게 했다.
광한루는 황희 정승이 600여 년 전에 세우고 정유재란 때 전소되었지만 다시 복원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계속 이 자리를 지킨 것이다. 그리고 인근 요천 강의 물을 끌어들여서 연못을 만들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데, 광한루는 건축물로도 뛰어나지만, 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이 이루어진 만남의 장소로 더 유명한 곳이다
광한루는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3대 정원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광한루는 그보다도 우리나라 4대 누각에 들어가길 바라는 것 같다. 그것은 광한루의 리플릿에 보면 4대 누각 중에서 으뜸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한루원 리플릿에 나오는 우리나라 4대 누각은 평양의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남원의 광한루이다. 그 외에도 이곳에는 완월정과 월매집, 춘향사당, 춘향관이 광한루원 안에 위치해 있다. 거의가 춘향 이야기와 연관이 되어 있었다.
부근에 흐르는 요청 강물을 끌어드려서 만든 연못은 너무나 조화롭게 구성하면서 각 연못마다 우주의 의미를 표현했다고 한다. 특히 광한루 바로 앞 연못에는 오작교를 만든 것이 백미인 것 같다. 전면 연못은 은하수를 뜻하며 그 못을 가로질러서 오작교를 만들었으니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이곳 광한루로 옮겨서 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오작교를 건너서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슬픔 사랑에 비교하면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 이야기는 아름다운 끝이 우리가 늘 생각하는 순리와 희망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지고 자녀가 복을 받는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주변에 오래된 버드나무가 많이 있다. 버드나무를 보면 춘향이 그네가 생각이 나고, 광한루 누각에 앉아서 그네 타는 춘향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도령이 그려진다. 광한루를 중심으로 오작교, 연못, 버드나무는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이곳 광한루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고 그 이야기가 머리에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지는 곳이다.
광한루 앞에 있는 석상은 언뜻 보면 거북이 같지만 자라 석상이다.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뛰어들 듯한 자세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인 것이다. 자라는 우리가 흔히 민물에서 볼 수 있는 양서류라서 더 친근감이 있다.
연못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원앙들이 쌍쌍이 놀고 있었다. 원앙은 두 마리가 같이 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새이면서 우리나라 텃새이다. 원앙은 정이 깊은 부부와 비교되기도 하는 새이므로 광한루의 연못에 가장 적합한 새이다. 원앙이 한가로이 노니는 것을 보면서 이도령과 춘향이 연상되는 것이다. 원앙의 쌍쌍들이 지금 봄볕을 즐기면서 급하지도 않게 한가로이 떠다니고 있다.
월매집은 초가집으로 춘향 이야기에서 이도령과 서로 백년가약을 맺는 장소이다. 월매집은 예스럽게 잘 꾸며 놓았다. 월매집 주변은 춘향 이야기가 전개되는 진행 시점에 따른 조형물이 춘향전을 쉽게 이해하고 연상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옛날 주막이었던 월매집은 지금 여기서 막걸리를 관광객에게 한 잔씩만 잔술로 팔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냥 서서 한잔하고 가는 그런 모습의 선 막걸리집이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월매집 담장 넘어는 그네가 있고, 투우와 제기도 있어서 실제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막걸리 한 잔씩 체험하게 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관광객이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체험을 하면 더 의미가 있고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 광한루는 관광객이 직접 타 볼 수 있는 그네를 두 곳이나 만들어 타보기도 하면서 촬영 장소로 좋아 보인다. 누구나가 타고 사진을 찍고 싶어 할 것 같다.
춘향이가 형틀에 묶여서 곤장을 맞는 곳도 여러 곳 만들어져 있다. 실제로 곤장을 때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 체험을 할 수 있으니까 관광 후에 오래 기억에 남을 체험인 것이다. 투호 던지는 공간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제기 차는 것도 활동적이거나 제기에 자신 있는 사람이 참여할 것 같다.
눈으로는 구경하고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 오랫동안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 광한루의 노하우가 만들어 낸 것 같다.
춘향관에는 춘향전의 역사와 영화, 판소리 각종 행사에 관해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춘향 이야기의 어제와 오늘이 한눈에 볼 수가 있었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남원에서 일 년에 한 번씩 미인대회를 열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인대회의 대표적인 행사이다. 이 대회에서 춘향으로 뽑히면 춘향 행사에 초청이 되면서 연예계로 진출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춘향이 되어서 스타가 된 사람의 얼굴이 게시되어 있었다. 낯익은 얼굴과 인기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새삼 이분이 여기 춘향대회에서 선발된 분이구나 하는 생각도 나게 했다. 그 제목도 멋있게 달아 놓았다. “춘향, 별이 되다” 춘향으로 선발되어서 인기 있는 스타가 되었다는 것이다.
춘향전은 한글소설로서 작자 미상이면서 조선시대 창작물이다. 이 작자가 이름을 밝혔으면 우리나 대표적인 문인으로 자리함과 동시에 그가 난 곳은 멋진 관광상품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춘향전은 전해 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신분의 벽을 넘어서서 사랑을 이룬다는 것이 큰 줄기이다. 춘향전은 수 편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판소리로 불린 대표적인 우리나라 고전이다.
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최초로 박사학위를 누가, 어제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최초로 받은 사람의 논문이 춘향전을 번역해서 받았다고 한다. 물론 순수하게 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신분제, 조선시대의 윤리 등도 분석해서 논문을 썼지만 주는 춘향전의 내용이었을 것이다. 춘향의 사랑 이야기는 어디나 어느 시대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광한루 뒤편에 있는 비석들이다. 이 비석은 남원과 관련 있는 부사나 목사들의 공적비를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이다. 남원을 거쳐 간 그 시대의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여기서도 엄밀히 따지면 서열의 높고 낮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높고 낮음보다는 그 시기에 무엇을 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서로 살아온 시기가 다르면 비교할 의미도 없고, 그리고 권력이 많고 적음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인 것이다.
광한루는 물을 잘 흐르게 해서 순환이 잘 되도록 만들었다. 아마도 앞에 흐르는 요천 강물을 연결해서 잘 만든 것이다. 광한루가 물을 잘 이용했다면 남원은 춘향전을 잘 이용한 도시이다. 춘향을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하고 실제로 그렇게 짜임새 있게 운용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남원은 춘향의 도시이다. 그리고 춘향을 연상하니까 지조가 있는 도시인 것 같고, 사랑스러운 도시라는 마음이 든다. 봄날에 그네를 한가로이 즐길 수 있는 동네가 연상되는 도시이다.
춘향처럼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