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기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마을 앞을 지나고 있다. 농사하는 노인이 타고 있다. 경운기를 운전하는 노인은 여전히 씩씩하고 얼굴 표정이 밝다. 경운기 위에서는 청년과 똑같은 모습이다.
노인은 요즈음 부쩍 가까운 거리를 갈 때도 예전에 잘 타지 않던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는 아직도 팔팔한 청년들 못지않게 잘 탄다.
노인이 경운기나 자전거를 타고 갈 때는 아직도 수 십 년은 더 사실 것 같다. 인생 100 시대를 실감 나게 한다.
그런데 노인이 경운기에서 내리거나 자전거에서 내리면 똑바로 걷지를 못하고 있다. 다리를 절면서 허리도 많이 굽었다.
걷기가 힘들고 불편하기 때문에 농사하러 갈 때는 경운기를 타고 가고, 마실 나갈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다. 아직은 전동차를 타고 다닐 정도는 아니다. 전동차가 편하지만 한번 타기 시작하면 편하니까 계속 타고 다닌다고 한다. 그래도 걸어야 오래 산다니까 걷는 대신에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경운기나 자전거도 전동차를 타기 전 단계이다. 이웃에 오랫동안 농사를 지은 노인들도 바른 자세로 꼿꼿하게 걷는 사람은 별로 없다. 농사지은 노인들은 운동이 아니라 노동을 오랫동안 몸의 균형을 망치는 자세를 반복해서 특정 부위가 손상을 입은 것이다. 젊어서 농사할 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오랫동안 사용한 결과로 몸에 이상이 온 것이다.
보통 살이 찌지 않은 노인들보다 더 심각한 노인들은 살이 찐 노인들이다. 이런 분들은 거의가 무릎관절이 아파서 힘들어하고 있다 무릎뿐만 아니라 허리를 아파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
노인도 큰 병을 알았고 무릎이 아파서 늘 힘들어하고 있다.
옛날에는 농사하면서 운동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운동과 노동을 구분하지도 않았고 움직이면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전체적으로 골고루 모든 신체 부위를 적당히 움직이는 노동은 운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농사일은 쓰는 부분만 쓰고 또 그 쓰는 부위를 과도하게 쓴다. 허리나 무릎이 대표적이다. 그러니 그 부위가 지금 아픈 것이다. 거기다가 농사하면서 술을 많이 먹은 노인들은 간이나 위에서 이상이 오는 경우가 많아서 술을 많이 먹던 노인들은 지금은 거의 돌아가셨다.
새로운 풍경은 저녁이나 아침에 농토를 따라서 걷는 노인들이 많다. 그 노인들도 거의 허리가 굽거나 다리를 절면서 걷은 것이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노인이 절반이 넘을 정도다. 이제 운동의 중요성과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안 것이다. 노인들은 걷는 속도에 비례해서 앞으로 살 날이 보인다.
평생을 일하면서 보낸 세월이 이제는 병으로 돌아와서 노인을 슬프게 한다.
노인은 오늘도 열심히 경운기를 몰고 밭으로 간다. 아픈 곳이 있지만 그래도 밭에서 앉아야 마음이 편하다. 아픈 마음도 밭에서 일하는 동안은 잊어버리고 지낸다. 땅에서 기르는 작물은 내가 신경 쓰는 만큼 더 잘 자라는 것을 보았고 그렇게 믿고 살았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픈 곳뿐이라고 생각하니까 허망하기도 하고 슬픈 생각마저 든다. 여기까지 살아온 것만으로도 만족하자는 자위도 해보지만, 그래도 마음은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것과 젊어서 적당히 사용했으면 덜 망가졌을 것이라는 후회를 해본다. 그래도 경운기나 자전거를 타면 절지 않고 갈 수 있으니까 좋은 것이다.
노인은 읍내로 나갔다.
요즈음은 시내버스가 많이 다니니까 읍내 나들이하기는 어렵지 않다. 읍내에 간 것은 큰 병원이 있는 도시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병원에 갔지만 아픈 곳은 좋아지지는 않고 다시 약 몇 달 치 타서 오는 것이 전부이다. 노인은 지금 아픈 병이 끝까지 갈 것이고, 앞으로도 더 많이 아픈 곳이 나타날 것이라 짐작한다. 다시 읍내로 돌아와 정류장에 내려서 약이 든 봉지를 한 뭉치 들고 읍내를 걸어간다.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읍내 구경도 할 겸 할 일 없이 걸어본다.
얼마 안 가서 읍내에 사는 아는 친구가 걸어온다. 손에 든 약봉지를 황급히 감추어 보지만 벌써 눈치 빠른 친구는 알아본다. 먼저 “병원에 갔다 오냐"라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대답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든다. 순간적으로 비교가 되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읍내에 사는 친구는 하는 일 없이 매일 놀기만 하는 친구이다. 세월이 좋아서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는 별로 지장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젊어서는 일도 안 하고 놀고먹는 친구가 부럽지 않았고, 나는 일하면서 살기에 그 친구보다는 더 잘 산다고 생각했었다. 그 친구는 매일 놀고먹지만 운동은 열심히 한다는 소리는 들었다. 지금 같이 걷고 있는 친구를 보니까 자세는 바르고 아픈 곳이 없어 보인다.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가까운 다방으로 들어갔다.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말하다가 자연히 건강이나 현재의 몸 상태를 서로 이야기한다.
노인은 작년에 큰 수술을 받아서 오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때 이 친구도 병문안 왔었다. 큰 수술이어서 열심히 번 돈도 병원에 많이 갖다 주었다. 앞으로도 완쾌되지 않을 병으로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병원에 간다. 또 무릎이 아파서 다리를 절고 다닌다
친구는 규칙적인 운동과 술을 많아도 먹지만 관리를 잘해서 아픈 곳이 없는 것 같다. 지금도 매일 놀면서 일은 하지 않고 그렇게 살고 있다.
노인은 본인이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이 친구가 더 잘 사는 것 같다. 노인은 자기는 멀지 않아서 세상을 하직할 것 같은데, 친구는 아직도 먼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자신이 잘 못 살아온 것 같다. 친구는 노인이 여름 땡볕에 고생하면서 일해 번 돈을 병원에 갖다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 결과만 생각하면 그렇게 산 것이다. 노인이 그런 생각이 마음에 드니까 한 일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고, 아픈 몸만 서럽고,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성공 기준이 오래 사는 것이라면 이 친구가 나보다 훨씬 잘 산 것이다.
노인은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한다. 시내버스 안에서 밖을 보니까 익숙한 풍경이 지나간다.
이 길을 어릴 때부터 다닌 길이다. 눈을 감고도 지금 어디를 지나는 줄 알 정도이다. 간간이 변하는 집이나 새로 들어서는 구조물은 한눈에 알아본다. 이렇게 이 길을 가면서 오늘따라 생각이 많이 난다.
젊어서 한창나이에 읍내 큰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면 대항 운동회를 할 때에 모래가마니 선수로 출전해서 면을 대표해서 달릴 때가 있었다. 그때에 아쉽게 2등을 해서 술을 잔뜩 먹고서 돌아왔던 이 길이다. 다음 해는 꼭 일등 하겠다는 다짐을 하던 일도 기억으로 지나간다.
맞 아들이 읍내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김치 항아리와 밥해 먹을 것과 이부자리를 가지고 집사람과 같이 자취 집을 구해 주러 갈 때도 이 길로 갔다. 돌아올 때는 아들이 공부 잘해서 잘 되길 상상하면서 돌아오던 것이 엊그제 갔은데, 이제는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 길은 장날에 고추 팔러 다니던 길이었고, 그때는 고추 가격에 웃고 울던 시절이었다. 너무 잘되면 가격이 없어서 울었고, 고추가 병나서 잘 안되면 가격은 높은데, 많이 따지 못해서 안타까워서 한잔하고 얼근하게 취해서 가던 그 길이다. 젊은 시절은 그렇게 흘러서 이제는 노인이 되어 남은 것은 아픈 몸과 다리이다. 노인은 버스에서 내려 다시 걸어간다. 집까지는 걸으면서 다리는 절뚝이면 걷는다. 집까지 경운기나 자전거가 있어서 타고 가면 아무도 내가 다리를 전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오늘은 읍내에 갔다 오기 때문에 자전거가 집에 있는 것이다.
젊어서는 술도 맛이 있었다. 술이 취하면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다. 이제는 술도 먹지 않는다. 먹으면 의사가 죽는다고 하니까 못 먹는 것이다.
열심히 잘 살았지만 남은 것은 아픈 것 외에는 별로 기억이 없다. 열심히 살다 보니까 몸을 무리하게 써서 아픈 것이다. 읍내의 친구는 매일 놀면서 술이나 먹고 다녔지만, 아직도 허리도 굽지 않고 반듯하다. 친구는 아침이면 열심히 일 대신에 운동을 한다고 한다. 아침이면 바쁘게 들에 가서 일만 했는데 그 친구와 비교하면 나는 손해 보는 것 같다. 벌어서 병원에 좋은 일만 했다는 마음이 드니까 서글프다.
누가 더 잘 살았는지 생각하면 내가 더 열심히 살았는데, 나는 아픈 곳만 있고, 일한다고 고생만 한 것 같아 온몸에 힘이 빠진다.
노인은 나도 읍내에서 만난 친구처럼 심한 일은 하지 말고 운동이나 하고 대충 살지 못한 것이 후회도 해본다.
돌아와 집 대문에 들어서면서 약봉지를 던져 놓고 마루에 앉아서 한참이나 앞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