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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4일차

by 안종익


팜프로나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부지런한 노인들이 일찍 일어나서 떠날 채비를 하니까 알베르게는 평온이 깨져 잠을 깰 수밖에 없다. 나도 잠을 깨 누워있기보다는 그냥 준비해서 밖으로 나왔다.

벌써 순례길을 떠나고 있다.

알베르게에서 조금 나오니까 어제 시민들이 그렇게 탄성 지르던 곳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이 쓰레기만 남은 도심의 거리를 순례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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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프로나 도심의 순례 표시는 바닥에도 있고, 건물벽에도 방향을 가리키고, 간간이 팻말도 서 있어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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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로등이 빛나는 거리를 순례객들은 줄을 맞추어 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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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기상을 한 것은 순례객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시끄러워 일어나기도 했지만, 오늘 내가 가야 할 순례길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순례를 떠나기 위해서 분주히 준비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보이고 생기가 넘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 같은 분위기여서 나도 몸에서 활력이 나오는 것 같다.

할 일이 있는 사람이 오래 살고,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있는 사람이 건강하게 산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아침이다.

오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출근할 곳이 없어지니까 무료하고 달라진 환경에 잘 적응되지 않았다. 퇴직 후 부담 없이 지낼 수 있는 시간도 반년 정도 지나면 일없이 보내는 세월이 무기력해져서 어떤 일라도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수십 년을 일정한 패턴으로 생활하다가 그 패턴이 없어지니까 적응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일하는 습관 때문에 일을 없어지니까, 무엇인가 부족하고 잘 못 살고 있다는 생각까지도 들 수 있다. 그동안 신경 쓰던 일들을 하지 않고 편히 노는 것도 반년 정도이면 지겨워진다고 한다.

이제까지 직장에서 일정한 패턴으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노는 것도 아직까지 놀아본 경험이 없고 준비도 되지 않았으니까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다. 노는 것을 노는 일로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고 체계적으로 하면 또 다른 습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수십 년 하던 직장처럼 노는 것을 일로 생각하고 적응하는 것이다.


도심을 벗어나이까 밀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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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펼쳐진 밀밭을 걸어갈 즘에 아침 해가 떠오른다. 떠오른 해가 그 넓은 밀밭을 비추기 시작하고 순례객들은 밀밭 사이로 난 길을 부지런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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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넓은 밑밥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지만, 모두가 열심히 걷고 있다. 같은 밀밭이지만 저 멀리 고성이 보이는 밀밭은 중세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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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밀밭이 펼쳐진 끝에는 큰 산이 가로질러 서 있다. 그 위에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데 이 평온한 들판에 어울리지는 않은 인공적인 구조물이다. 오늘은 저 풍력발전기가 있는 산을 넘어야 목적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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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을 향해서 순례객들은 산을 넘으려고 오르막을 올라가고 있다. 그 오르막이 그렇게 가파르지 않지만, 순례객에게 오늘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그 산 밑에는 이 넓은 밀밭을 가꾸는 농부들이 사는 집들이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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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가는 순례객 중에 뒤에서 보니까 배낭에 순례객의 표시인 가리비도 나란히 달고, 스틱도 같이 짚으면서 나란히 발을 맞추어가는 남녀가 있다. 걸음걸이로 보아서는 나이가 든 노부부 같아서 앞으로 가서 보니까 예상대로 나이가 많은 노인 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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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은 같이 빠르지고 않으면서 그렇다고 뒤로 쳐지지도 않으면서 걷고 있다. 서로를 의지하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 늙은 부부가 나란히 걷는 순례길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의 돌아보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조용히 미소 짓는 할머니 모습에서 세상은 좋은 곳이라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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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에 올라오는 길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르막은 쉽지는 않았다. 이렇게 고개를 올라오면 먼저 온 사람이나 늦게 올라온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한참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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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기념촬영도 하고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고개 정상에서는 올라온 길도 보이고 앞으로 갈 길도 보이는 풍광이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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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올라온 만큼 내려가서 다시 순례길을 걸어간다.

고개에서 내려온 길도 밀밭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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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밀이 익지 않아서 푸른빛을 띠지만, 익어서 밀밭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이 순례길도 풍성한 순례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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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밀밭을 걸어오다가 성당이 있는 마을을 지나서 오늘 묵어갈 마을이 보인다. 그곳까지도 밀밭으로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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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있어야 사는 것이 재미있고 활력도 찾을 수 있다는 말도 맞다. 그런 직업은 정년이 없고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일 것이다.

평생직업으로 예술가나 건축가도 멋있는 직업이고, 구두나 양복을 만드는 일이나 농사일도 좋은 것 같다.

그런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지만, 그동안 살아온 직장은 정년이 있고 평생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지금 와서 일할 기술이나 기반이 없는 것이다.

인생을 마지막까지 일하다가 마친다면 그것도 엄청난 행복일 것이다. 평생 하는 일로 끝까지 일하다가 삶을 마감한다면 자연스럽고 행복한 삶인 것이다.

지금 순례길을 가고 있지만,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시간도 가질 것이다.

순례가 끝나고 또 다른 곳을 여행할 것이다. 그렇게 지치면 그때는 평생 할 일을 하고 싶다. 그 일이 지금 생각나는 것은 농사 일이다.

농사를 지어서 그 수확물을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물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재미로 농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는 베푸는 것이고 나름 마음의 만족도 올 것 같다.


순례길 표시는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오늘 마지막 마을을 지날 때, 순례길 표시는 가리비를 동판으로 만들어 도로 중앙에 중앙선처럼 부쳐 놓았다. 특이한 표시이지만 순례길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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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판으로 만든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플라타너스가 이곳에서 잘 생긴 나무로 자라는 이유를 알았다.

이곳에 나무는 플라타너스와 뽕나무 또 회화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쓰고 있었다. 이 나무들을 어느 정도 자라면 원가지를 잘라서 옆으로 여러 가지가 나오도록 가꾸어서,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키우니까 나무들이 원기둥이 있고 가지는 네 개 정도 옆으로 자라는 모양이 되는 것이다.

팜프로나 가로수의 플라타너스가 서로 다른 나무가 붙은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이 마을에서 그 원인을 알았다.

지나가면서 보니까 뽕나무를 양쪽에 심어 놓고 양쪽 가지가 맞닿을 정도로 자라면, 가지를 접을 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접을 붙여 놓으면 두 나무의 가지가 붙어서 한 나무처럼 신기한 나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접을 붙인 뽕나무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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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순례길은 밀밭을 걸어온 순례길이다. 의미 있고 걸을 만한 순례길을 걸었다. 끝없는 이어지는 밀밭 길에서 순례의 의미를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면서 걸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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