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새벽에 순례객들이 경쟁적으로 일어나니까 덩달아 일어났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에 오늘은 프랑스 아줌마가 출발하는 것을 따라 출발했다.
프랑스 아줌마는 자기 집에서 1700 Km를 걸어왔다고 한다. 두 달간 걷는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었지만, 정말 걷는 속도가 빨라서 나는 곧 뒤 쳐질 수밖에 없었다.
순례 표시는 보이지 않고 숙소 마을 어귀에 있는 달빛이 비치는 다리를 건너 앞에 가는 사람을 따라가는 중이다.
가면서 뒤돌아보니까 이제 먼 산에서 밝아오는 것이 보인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31일간 걷는다는 것만 결정하고 나머지는 매일 상황을 봐서 그날 해결하기로 했다. 매일 현재만 충실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영어로 PRESENT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현재란 뜻도 있다. 그러니 현재는 나에게 주어진 선물인 것이다.
내일 순례길의 코스가 높은 산이 있거나 거리가 먼 것은 다음 날일이니까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인내해야 일이고, 오늘 그것에 대한 준비는 가능하지만, 걱정이나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뿐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도 지금같이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같이 있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지금 자기와 같이 있는 사람이나 일에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는 말이다.
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금이 세 가지가 있는데, 소금과 황금과 지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지만 현재의 지금이 확실히 내가 숨 쉬고 있는 시간이니까 중요한 것이다. 과거를 부도난 수표이고, 미래는 불확실한 어음에 비교하지만 현재는 확실한 현금이라고 한다.
오늘 걷는 길도 밀밭이 많은데 벌써 밀을 수확한 밭도 있었다. 밀밭을 가다가 산속으로 이어지면서 길은 오르막이 나온다.
오르막이 계속되는데 멀리 노란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것이 보인다.
노란 꽃은 마드리드에서 등산 갔을 때 많이 보았는데, 거기서는 꽃이 지고 있었다. 지금 여기 꽃은 이제 한창 피고 있고 향기도 상당히 진하다. 멀리서 보면 이른 봄에 피는 개나리와 흡사하다. 아마 이곳이 마드리드보다 북쪽인 것 같다.
고개를 올라서자 도로를 따라 난 순례길에 노란 꽃 길이 만들어져 있다.
노란 꽃길에서 보이는 마을의 성당의 지붕과 멀리 큰 산에 햇볕이 밝아오는 광경은 서양화 같다.
그 성당이 있는 마을을 지나서 다시 밀밭이 나오는데 벌써 거의 익어가는 밀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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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밀밭에서 또 다른 마을이 아름답고 평화롭게 자리한 것이 멀리 보인다.
그 마을을 향해 올라가는 순례객들의 모습도 마을과 같이 한 폭의 그림이다.
마을에 도착해 가로질러 넘어가니까 햇볕이 마을로 들어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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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을을 지나 큰 도로를 가로질러 놓인 육교를 건너서 밭길을 간다.
여기에는 밀뿐만 아니라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 해바라기도 심어져 있다.
이제부터는 큰 도로와 같이 옆으로 만든 순례길은 지루한 길이다.
다리가 무거워지는 것이 많이 걸어온 것이다.
이때쯤 제법 큰 도시에 도착을 했다. 이 도시에 들어가는 다리는 아치돌 다리이다.
이 도시도 도로에 표시된 순례길 가리비 모양을 찾기도 쉽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옛날 성당도 자리하고 있다.
오늘 걸어야 할 순례길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도시의 이정표가 목적지를 2.4Km 쓰여있다. 오늘도 무사히 도착할 것 같은 기분으로 마음이 가볕다.
오늘을 순례길을 걸으면서 오늘 지금 사는 것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그냥 생각 없이 생활하면 거의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빠진다고 한다. 현재에 집중하려면 이런 생각이 들 때, 현재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연습과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현재에 생각이 머물게 하는 비결이다.
다른 생각이 나면 중지하고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고, 과거가 생각이 나면 중지하고 현재로 돌아오고, 미래의 희망이나 바람이 생각 나도 현재 하는 일에 돌아와야 한다.
현재가 아닌 것을 생각하면 멈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차라리 다른 생각을 하는 것보다 그냥 멍 때리는 것이 훨씬 좋은 것이다.
현재에 충실하면 바로 앞에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 다정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삶에 만족도 올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선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최선으로 오늘을 살아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길이지만, 개울을 건너 다시 숲과 들판을 지난다.
여기서부터 포장이 안되고 먼지가 나는 도로이다. 그래도 표시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면서 생각 없이 걷고 있다.
한참을 왔는데 생각해 보니까 표시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의심하면서 걷다가 계속 가리비 표시가 보이지 않으니까 잘 못 길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보이는 것이 공장 건물이고 대형 덤프트럭이 몇 대 지나가면서 흙먼지가 날리어서 사방이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다가 돌아가서 표시가 있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되돌아 나왔다. 다른 순례객이 혼자서 오는 것이다. 그 순례객과 길을 잘못 왔다는 손짓을 해서 같이 되돌아 나갔다. 그러다가 또 다른 순례객 한 사람이 오는 것이다. 그때는 내가 잘 못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서 세명이 같이 갔다.
그렇게 세 명이 한참을 가도 표시가 없으니까 두 사람도 잘 못 왔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길 위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자 한 무리의 자전거 순례객들이 그 길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확신을 얻고 걸어갔다.
예전에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여러 번 길을 잃은 경험이 있어서 표시를 보지 못하면, 불안한 기억이 떠올라 믿지 못하고 당황을 한 것이다.
도착한 알베르게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문 열기를 기다리면서 줄을 서 있었다.
오늘 마을은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