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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6일차

by 안종익


어제 오후에는 긴팔이 너무 더워서 거의 반팔을 입고 걷는 것을 보았는데, 아침에 출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긴팔을 입고 있다. 더러는 페딩까지 입은 사람도 있다.

저녁부터 기온이 내려가 조금 추위를 느낄 정도이다.

출발시간을 정해 놓고 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출발을 하면 덩달아 가는 경향이 있다. 순례객들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일찍 나가니까 보통 달을 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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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다정스럽게 같이 순례하는 노부부들은 앞서 출발을 하고 있었다. 노인들이지만 걸음걸이가 보통이 아니다.

앞서가던 노부부들이 멈추어 서서 가리비 표시를 찾는 것 같았다. 간혹 표시가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때 가리비 대신에 노란 화살표를 그어 놓을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나는 노부부와 같이 나란히 걸어갔다.

한참을 가다가 보니까 두 분은 오던 길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리비 표시를 보지 못했고, 노란 표시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시 가리비를 확인하러 가는 것 같았다.

어제 묵었던 도심을 벗어나기 전에 아침 해가 구름 사이로 밝게 떠오르고 있다. 오랜만에 떠오른 해를 본 것이다. 아마도 저 해는 고향에서 보던 해와 같은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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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날이 밝아오자 걷는 길은 온통 밀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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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을 지겹도록 걷다가 보니 멀리 삼각산 밑에 작은 마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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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성당 건물이 보이니까 아마도 그곳을 지날 것이다. 순례길은 성당이 있는 곳을 지나는 것 같았다.

첫 마을에서 잘 가꾸어진 플라타너스가 있고, 이것도 두 나무를 연결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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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바쁘지도 않았는데 서둘다가 무엇인가를 놓고 온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유용하게 쓴 스포츠 타월을 놓고 온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거리까지 왔고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서둘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생길 가능성이 많다. 안경을 놓고 와서도 불편을 겪었는데 또 불편을 겪을 것이다. 그래도 그럴 수 있다고 위안하면서 정리했다.


첫 번째 마을을 지나서도 계속 밀밭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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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들판 사이로 성당의 종탑이 보이는 것이 두 번째 마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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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마을도 역시 종탑은 마을 중앙이고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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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마을이 주변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곳부터는 계속 내리막이다.

내려가다가 화살표가 두 개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는 사설 알베르게로 들어가는 표시를 나무에 걸어 놓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례객의 방향 표시를 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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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헤갈리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 전 노인들이 헤맬 때는 노란 화살표 두 개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헤갈릴 수 있게 표시되어 있었다. 두 노인 부부들은 잘 찾아갔으리라 믿는다.

“화살표를 함부로 긋지 말라”라는 말을 하고 싶다.

잘못 그은 화살표가 순례객에게 치명적일 수가 있다. 화살표를 보고 길을 잘못 가도 다시 올 수도 있지만, 낙오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나처럼 말이 통하지 않고 이정표를 읽을 줄 모르면 순례길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듣는 사람에게 일생의 아픈 상처로 남을 수도 있고, 희망을 좌절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에게 치명적일 수 있듯이 신중치 못한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신중해야 한다.

화살표가 특히 알베르게 숙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표시한 경우가 많고, 노란 페인트 화살은 공식적인 화살이 아니라 순례객을 돕기 위해서 나무나 건물이나 돌에도 표시되어 있다. 이런 화살을 함부로 그어서는 안 된다.


계속되는 수많은 밀밭을 보다가 새로운 밀밭을 보았다.

밀밭이 아니라 밀 산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비록 낮지만 산봉우리가 세 개나 있는 밀밭이 있었다. 밀 산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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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넓은 산에 밀이 잘 자라고 있다.

이렇게 넓은 밀밭에서 많은 밀이 수확될 것 같은데, 스페인에서 식당에 가면 빵을 몇 개 주지 않은데, 터키에 가면 그냥 빵은 무한으로 주고 있다.


계속되는 밀밭 사이로 난 길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곧게 뻗어 있다. 끝에 있는 순례객은 점으로 보일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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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길 끝에는 약간 오르막이다. 그 오르막에 올라서 보니 지나온 길과 같이 일직선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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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리가 넘는 길이 일직선으로 된 흙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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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지루한 길이고 멋이 없는 길을 걷는다고 한국에서 온 여자분이 말한다. 그 여자분은 이런 길을 걸으려고 여기에 왔는지 후회되고, 더 걷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말까지 한다. 아무리 봐도 밀밭이고 변화 없는 직선 흙길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분은 교직에서 은퇴한 분으로 풍기는 인상으로는 아직 미혼이고 교직 교조 활동을 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나의 추측이다.

이분을 며칠 보니까, 숙박비로 알베르게에 5유로 내고, 식사는 간단한 것으로 하는 것으로 하루에 10유로도 쓰지 않는 날도 있는 것 같다. 외국에 나와서 쓸데없는 것에 안 쓰고 돈 아끼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이 지루한 밀밭 길이 끝나고 제법 큰 마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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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같이 출발한 순례객 중에 이곳에 숙소를 정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여기서 이십 리 더 가서 숙소를 마련할 예정이다.

오일 동안 같이 알베르게에서 묵었던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혼자서 다음 숙소로 걸어간다.

이제 같이 가는 사람도 없이 들판을 혼자서 걸어가니까, 말로 표현이 잘 안되지만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을 느낀다. 내가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이런 상태를 내가 여행하면서 바라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밀밭이 완전히 끝이 보이지 않더니 포도밭도 너무 크게 만들어져 있다. 여기서는 크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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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 콩도 밭둑에나 작은 텃밭에 심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수천 평의 밭에 끝없이 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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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사이의 언덕에서 넘어오는 두 살람의 순례객 모습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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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관상용 양귀비꽃이 피어 있다. 이곳에서는 양귀비꽃이 밀밭에 피는 잡초로 취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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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성당의 종탑이 잘 어울리는 마을이 밀밭 가운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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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적지가 그 뒤에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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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숙소에 도착했다. 아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 프랑스 아줌마가 벌써 와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반가워한다. 알고 보니까 나와 동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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