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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9일차

by 안종익


오늘은 갈 원래 예정지가 소 도밍고 성당으로 20Km 정도이고, 다음날 갈 거리가 23Km이니까 오늘 하루 만에 모두 가려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너무 일찍 출발해서 어두워 순례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 등으로 간신히 찾아가고 있는데, 앞에 밝은 랜턴이 가고 있어서 따라 붙였다.

중년 남자가 큰 배낭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서로 처음 보지만, 순례길 이른 새벽에 같이 가면 동반자가 되고 길동무인 것이다.

겨우 국적은 주고받았지만, 자기 이야기들을 열심히 하지만, 서로가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 남자의 포르투갈 사람이고 순례자의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어두운 새벽에 포르투갈 남자의 헤드 랜턴으로 한 시간 이상 걸으니까 날이 밝아온다. 오늘은 하늘에 온통 구름이어서 날이 더 늦게 밝아 왔다.

그래도 뒤돌아보니까 하늘과 대지 사이에 틈이라도 생긴 것 같이 밝은 긴 줄이 새벽하늘에 나타난다. 포르투갈 남자도 그 광경이 신기한지 뒤돌아서 오랫동안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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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서서히 밝아오고 아직은 하늘에는 구름으로 덮였지만, 내가 묵었던 숙소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십자가가 육안으로도 잘 보인다. 포르투갈 남자가 그 십자가를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서 찍었다.

그런데 내 핸드폰은 성능이 별로인지 그 십자가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내 핸드폰을 포르투갈 남자가 보고서는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 있다.

여러 번 반복을 하고 손으로도 설명하니까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의 핸드폰에 산 위의 십자가가 나타나지 않아도 당신의 머릿속에 그 십자가를 기억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믿음이 돈독한 사람이 마음에서 나오는 말인 것 같다.

이 포르투갈 남자는 진정으로 성지순례를 하러 온 사람인 것이다. 메고 있는 배낭을 들어 보니까 너무 무거워 무게가 얼마냐고 물으니까 15Kg이라고 했다. 그런 엄청난 무게를 메고 고행의 길을 걷는 순례자인 것이다.

첫 마을이 나타나자 포르투갈 남자는 그 마을 성당으로 들어가면서 다음에 보자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마을을 내려오다가 갑자기 강렬한 햇볕이 구름 사이로 나와서 비추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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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래 비추지는 않았지만, 그 햇볕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치 순례객에게 천지창조의 순간을 보여 주려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러나 잠깐 비춘 햇볕이지만 비친 곳이 유난히 밝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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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밀밭 길을 걸어가면서 마음의 평온함을 느껴지고 한없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어제와는 마음이 완전히 다른 것이 너무 신기하고 이렇게 마음이 쉬게 변하는 것이 정상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이 생기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온을 얻고 만족하면서 살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오늘 길은 숙소를 출발해서 두 개 마을을 지나서 소 도밍고 성당 마을이 나왔다.

두 마을도 어김없이 성당의 종탑이 먼저 보이고 마을이 보였다. 소 도밍고 성당 마을이 멀리서 순례객 조형물 사이로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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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을 향해서 한참을 가니까 밀밭에 가려서 안 보이던 마을이 다시 종탑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을 모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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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성당은 다른 곳보다 규모가 크고 여러 조형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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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길고 먼 밀밭 길을 혼자서 걸어가는 순례객의 모습에서 진지함과 고독한 순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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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 도밍고 성당 마을을 지나서 지루한 순례길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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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갈려는 베로라도 마을까지는 다섯 개의 마을을 지나야 도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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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을이 지날 때에 순례길을 찾는데 요령이 생긴다. 순례길은 그 마을의 성당을 꼭 지나기 때문에 성당 쪽에 있다고 생각하고 표시를 찾으면 된다.

큰 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마을에 성당의 종탑보다 높은 건물은 없었다. 아마도 더 높게 짓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종탑보다 지대가 높은 곳에 건물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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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계속 나왔고, 밀밭도 계속되었다.

순례를 걸으면서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늘 옆에 있어서 같이 걷는 밀밭도 익어가는 것 같다. 순례길이 끝나면 또 다른 길을 떠나겠지만, 익어가는 밀도 추수되고 또 다른 작물이 심어질 것이다.

밀밭은 이어지고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황금물결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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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이제 한창 피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 길도 있다.

이곳이 추운 곳인지 한 달 전 터키에서 반갑게 보았던 아카시아가 여기는 이제 만개하고 있다. 언제 보아도 다른 것에 비해 낯설지 않는 아카시아꽃이다. 향기가 그렇게 진하지 않고 벌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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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많이 지나도 오늘 새로운 목적지가 된 베로나도는 나오지 않는데, 걷는 다리는 무거워 온다. 하루에 이렇게 오래 걷기도 처음이다. 벌써 9시간 가까이 걸어가고 있다.

마지막에는 베로나도에 도착하기 전에 마지막 마을에서 오늘 유숙하려고 했지만 숙소가 마땅치 않아서 힘들지만 걸어갔다.

또 마지막 길이 도로 바로 옆으로 난 길이다. 6Km 이상 도로 옆길을 달리는 차 소리를 들어가면서 걷는 길은 고통스럽다.

이렇게 힘든 길을 걸어가면서 길이 있으니까 걷는다는 생각이나, 시작했으니 끝까지 간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인가 얻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힘이 드니까 힘든 만큼 얻고 싶은 것이다.

생각나는 것이 삶은 진지하다는 것을 깨닫고 가는 것이다. 삶에서 어떤 것이라도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보다 삶의 태도가 진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숙소 마을에 도착을 해서 알베르게를 찾았다. 오후 4시를 넘겨서 도착했지만 아직 알베르게는 정원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 아직 비수기인 것 같다.

이 마을에서 하루를 보내고 내일 다시 진지하게 무엇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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