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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12일차

by 안종익


브르고스는 스페인에서도 큰 도시인 것 같은데, 순례길에 대한 표시는 대단히 인색한 것 같 아 아침에 출발하면서 도시를 헤매지 않고 벗어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침에 준비는 끝났는데, 출발은 잠시 눈치를 보고 있다. 길을 잘 찾을 것 같은 사람을 따라갈 생각인 것이다.

자신 있게 출발하는 브라질 아주머니 셋 분이 있어서 뒤를 따라나섰다. 세분은 계속 무슨 말을 하면서 걸음걸이도 빨랐다. 그래도 계속 따라가면서 불안하기 시작했다. 순례길 표시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참을 가다가 브라질 아줌마들도 불안한지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을 묻는 것 같다.

한참을 와서 이제는 돌아갈 수가 없어서 믿고 따라갔다. 계속 가도 순례길에 대한 표시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길을 잘 못 가는 것 같지만 따라간다. 브라질 아줌마들이 길을 바로 찾기를 바라는 마음만 갖고 따라가는 것이다.

거의 한 시간을 순례길을 찾아서 걸어가는데, 가는 방향이 계속 직선이어서 방향은 틀린 것 같지 않는데, 순례길 표시는 보이지 않는다.

브라질 아줌마들과 내가 순례길을 찾으려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보고 애를 쓰는데, 바로 20여 미터 뒤에는 젊은 여성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것이다. 그냥 앞에 사람이 길을 잘 찾을 것이라고 믿고 따라오는 것 같다. 귀에는 이어폰을 낀 것이 아마도 속 편하게 음악을 듣고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따라만 온다. 얄미울 정도로 거리를 두고 태평하다.


그래도 순례 표시는 보이지 않지만, 주위를 보다가 보니까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단순하게 나무 그림 벽화이지만 사실적이고 단순한 것이 자세히 보게 만든다. 화려한 그림이나 낙서 같은 그린 피트 그림보다 훨씬 차분하고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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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순례길 표시는 발견하지 못하고 부지런히 걷고 있다. 그러다가 브라질 아줌마들이 환성을 지르고 있다. 순례길 표시를 발견한 것이다. 늘 보던 표시지만 무척 반가운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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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다시 밀밭 길을 간다.

그때까지 젊은 여자는 아무런 동요 없이 이어폰을 끼고 계속 따라와서 자연스럽게 순례길을 가고 있다. 아마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가는 것 같다.


노래 들으면서 여유 있게 따라오는 젊은 여성의 모습을 보니까, 소풍 같은 인생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누구나 한 번 왔다가는 인생, 바람 같은 시간이야 ........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걸, 붙잡을 수 없다면, 소풍 가듯 소풍 가듯,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렇게 소풍 가듯이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겠지만, 살아보면 그렇지 않다.

우리는 살면서 희로애락을 다 겪어야 한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다 겪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슬플 때는 울어야 하고, 기쁠 때는 기뻐하지만, 성날 때는 성을 내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즐겁고 좋은 것만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아무렇게 살거나 아니면 그냥 생각 없이 살면서 희로애락을 겪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살다가 겪어야 하는 것이다.

부지런히 사는 것이 우리에겐 주요한 덕목이다.

부지런히 살면 타인에게 해를 줄 일도 없고, 살면서 인간다운 존엄을 지킬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선하게 또는 자신을 위해서만 살지는 본인들이 선택할 문제이다. 보편적으로 선하게 사는 것을 지향한다.


자전거 순례객이 지나간다. 무엇이라 내게 한마디 하고 지나간다. 나는 그 대답으로 큰 소리로 ”잘 가라"라고 했다. 아마도 내 말을 못 알아듣겠지만 좋은 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사람이 못 알아 들어도 내가 좋고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유명 산악인이 왜 에베르트 산에 오르냐고 질문을 받고 한 대답이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른다“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순례길도 왜 걷느냐고 묻는다면 ”길이 여기 있으니까 걷는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다른 의미의 말을 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핑계에 불과한 군더더기 대답이 될 것 같다.


두 번째 마을 벽에 ”부엔 카미노“가 붙어 있다.

부엔 까미노 는 스페인 말로 좋은 길이란 뜻이다. 순례자들은 서로 지나면서 이 말로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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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마음속에 들리는 소리가 있다.

“익아 천천히 걸어라” “세상 급할 것 없다, 천천히 걸어라”라는 모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평소 급하게 사는 날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이렇게 걸으면서 모친이 생각나고 그리운 것은 세상의 연은 단순해서 가까이 오래 같이 산 사람이 가장 오래 기억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보면 기분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

우울했던 마음도 어느새 밝은 마음으로 바뀐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게 마음이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순례길을 걸으면서 체험한 것이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기분 좋은 마음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것이 성당의 종탑이지만, 그 종탑 위에는 거의 새들이 집을 짓어 놓고, 지금이 산란기인지 새들이 새집을 지키고 있다. 알을 부화하는 시기인 것 같다.

성당 지붕에는 거의 큰 새가 집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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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은 끝없는 지평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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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을 봐도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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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을 봐도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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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봐도 지평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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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끝없는 밀밭이 이어진다.


들판 중간에 양귀비꽃만 붉게 자란 밭이 있다. 양귀비꽃을 재배할 수도 있지만, 온 천지에 양귀비꽃이니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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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게으른 농부가 있어서 밭을 묵히니까 양귀비꽃이 자연적으로 밭 가득히 펴졌을 가능성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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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게으른 농부는 있기 마련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들판은 바람이 무척 센 들판이다. 바람이 지배하는 들판이기도 한 지평선 들판에는 풍력 발전기를 많이 설치해 놓았다.

지평선 위에 마을이 보이지 않는 것은 바람이 언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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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숙할 혼타나스 마을이 보인다. 이 마을은 끝없는 지평선에서 부는 바람의 평야에 위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불지 않은 계곡에 마을 만들어져 있다.

계곡 속에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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