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예상한 곳보다 6Km 정도 더 와서 묵었기 때문에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다.
오늘 갈 길이 그렇게 멀지 않아서였다.
또 내가 묵은 방에는 혼자서 묵었기 때문에 아침 수면에 방해도 없이 잘 보냈다. 그런데도 매일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서 조금 늦장을 부렸을 뿐인데, 준비하고 나가니까 신발장에는 내 신발 외에는 모두 신고 나간 것이다.
순례객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침상에서 그냥 보내는 것보다 일어나는 즉시 출발하는 것 같다.
이른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걸어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일 것이다.
아침에 걷기는 힘들지 않고 날씨도 화창할 것 같다.
걷다가 먼저 만나 마을이 제법 큰 마을이다. 그 마을에 햇볕이 내릴 때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도착하기 직전에 마을 어귀에 작은 건물과 출입구에 특이한 조각이 있는 건물을 거쳤다. 아마도 옛날에 성당에 관련된 건물인데 역사가 오랜 된 듯하다.
마을에 들어가는 입구에 호텔 간판이 크게 걸려있고 호텔 건물도 상당한 것이 마을이 아니라 도시 같은 기분이다.
또 입구에 낯익은 간판 건물이 있다. 눈사람 미쉐린을 여기서 본 것이다. 미쉐린 고향이 이쪽일 것 같다.
생각한 것처럼 도시는 상당히 컸고 마지막에는 성당이 도시의 출입문으로 이용하는 곳도 있었고,
도시를 건너는 곳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상과 강 위로 아치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시 밀밭 길을 가는 순례길이다.
밀밭이지만 한쪽에는 도로이고 다른 쪽은 순례길로 만들어져 있고, 가로수는 플라타너스가 심어져 있다.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한 곳도 많지만 이곳을 이 나무만 계속 심어 놓았다.
플라타너스를 이상하게 잘라서 키운 변형된 나무가 아니라 아무런 손질을 하지 않고 그대로 심어 놓은 것이다. 자연 상태의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자라고 있는 순례길이다.
원래 스페인은 옥수수가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옥수수밭을 보지 못하다가 여기서부터 옥수수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옥수수밭에 물을 주는 시설을 잘 설치해놓고 있다.
물주는 기계도 여러가지인것 같다. 이 기계는 바뀌로 움직이면서 물을 주는 기계이다.
서양 사람들의 보폭이 확실히 긴 것 같다. 같이 출발해도 한참을 지나면 뒤로 처지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나이가 많은 흰 수염이 무성한 노인이 같이 출발을 해서 갔는데, 갈수록 거리가 멀어지더니 마침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서 나간다.
나이 들어도 걸음걸이가 무척 빠른 것이다. 따라가려고 해도 어려울 것 같아 그냥 내 페이스대로 걸었다.
한참을 가다가 오랫동안 한국말을 할 기회가 없어서 입이 심심했다. 마침 반대쪽에서 반대로 걷는 순례객 두 명이 오고 있었다.
잠깐 정지시켜 놓고 “저 앞에 노란 조끼를 입고, 흰 수염이 많은 노인을 봤어요”라고 큰소리로 우리말로 물었다. 그것도 두 번을 반복해서 물었다.
순례객은 주의 깊게 듣더니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제스처를 한다. 당연히 모르겠지만 나는 무료해서 장난을 한 것이다. 그러고는 “부엔 카미로”했다.
넷 시간 이상 걷는 이 길을 플라타너스가 아니라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순례길 양쪽에 심어 놓았으면 세계적으로 명품거리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가로수 품종을 선택할 때 많은 고려가 있을 것 같고, 이 플라타너스도 아름드리나무가 되면 명품길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오늘 유숙할 마을이 가까워진 것 같은데도 가로수는 플라타너스이다. 이 가로수 아마도 오늘 유숙할 마을까지 심어져 있을 것 같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도로변에 노란 꽃이 만발해 있다. 이곳은 북쪽이라서 더 추워서 이 노란 꽃이 늦게 핀 것 같다. 처음부터 보아온 노란 꽃은 아직도 이름을 모른다.
이 순례길이 순례의 목적 외에 실직이나 이혼이나 이별의 아픈 상처를 달래려 오기에 적당한 길이라 알려져 있다고 하니까 과거를 생각하게 한다.
현재에 만족을 못 하고 불행한 생각이 드는 것은 과거를 잊지 못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 집착이 현재를 괴롭히는 것이다.
잊기 위해서 노력해도 잊히지 않는 것이 과거의 아쉬움이나 억울함일 것이다. 과거의 좋았던 일을 기억나지 않고 나빴던 것을 잘 기억나는 것이 우리 머리이다.
과거의 나쁜 기억은 노력해서 어느 정도는 잊을 수 있어도 머릿속에 완전히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한 노력 중에 더 잘 잊기 위해서 과거의 상처를 곱씹어 보기도 해본다. 곱씹으면 더 아프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은 효과는 있지만, 완전히 잊히지는 않는다.
과거는 그림자처럼 같이 살아간다고 보면 된다.
그러한 과거를 잊는 방법은 또 다른 희망을 갖는 것이다. 희망은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효과적이다.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도 갖는 것이 과거를 잊는 방법이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결국 현재를 잘 사는 것이다.
성현들이 현재를 살라고 한 말은 과거도 잊고 살라는 의미 있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러니 성현들은 현재를 사는 것이 과거를 잊는 방법으로는 최선인 것을 안 것이다.
만일 이 순례길을 아픈 상처를 잊으려고 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아픈 상처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걷는다면 차선이고, 그 상처를 곱씹어서 상처를 터뜨려 아플 데로 아파하면서 상처를 아물게 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다. 상처를 완전히 드러내어 내성을 갖게 하고, 또 다른 희망이나 상처를 잊을 수 있는 큰일을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과거의 아쉬움이나 상처는 갖가지이다.
사람이나 장소에 대해 아픈 것이 있는 경우는 그것을 외면하거나 떠나면 되지만, 그래도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것이 과거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과거를 생각나는 것은 아직도 살만한 때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 목적한 마을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고 나니까 날씨가 추운 느낌이다.
겉옷을 입고 있으니까 추위가 가신다. 이 겉옷은 무거워서 마드리드에서 버리고 올려고 했던 옷인데, 이번 순례길에 최고로 요긴하게 입는 옷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