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게는 대개 한 공간에 침대를 2층으로 놓고 많은 인원이 유숙을 하는 곳이다.
많은 곳은 50여 명 이상 같은 방에서 자기도 하고, 적게는 4~5여 명이 같이 자는 곳이다. 천주교 관계자들이 운용하는 곳이 많지만, 개인이 하는 곳도 많다.
먼저 들어온 순서대로 침대를 배정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남녀의 기준이나 같이 온 사람의 관계에 따라 배정하기도 한다.
어제는 12명이 한방에서 잠을 자는데, 10시가 되어서 소등하고 모두 잠을 자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12시경에 잠이 깼다.
바로 옆에 있는 할아버지가 너무 코를 심하게 고는 것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이렇게 심하게 코를 고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 방에 사람들은 거의 잠을 캔 것 같았다.
얼마나 심하게 골았으면 옆방에서 벽을 치고 난리였다. 건너편에 잠을 자던 여자분은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잠이 오지 않아 어제는 잠을 설친 날이었다.
걷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걸으면서도 순례자의 모습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행자의 모습도 아닌 것 같다. 나는 무엇을 바라는 간절함도 없고, 현재를 그렇게 즐기지도 않는 어중간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 순례길은 어떤 방향이든지 의미를 정하고 걸으면 좋은데, 그냥 다리운동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힘이 빠진다.
그래도 이 순례길에서 큰 것을 얻으려는 생각보다는 걸어보면 느낌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만족하고 싶다.
빌라프란카 마을 다리를 건너서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오늘 시작이다.
산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리 위 순례객 조각상이 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멀리서도 높게 보이던 산속으로 들어가서 고개를 넘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오늘은 오르막을 넘을 각오를 하면서 출발을 했다.
계속 가도 오르막은 나오지 않고 계곡으로 난 도로를 따라 순례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오르막이나 아니면 터널이라도 나올 것을 예상하고 걷는다.
예상이 빗나가는 것인지 오르막은 보이지 않고 계곡으로 계속 들어간다.
오늘 순례길은 높은 산 사이에 있는 계곡으로 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서 계곡의 마을이 있고 그곳에 성당이 있었다. 이 계곡길은 옛 순례자들이 걷던 길일 것이다. 이 계곡을 통과해야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첫 번째 마을을 지날 때 계곡이 깊어서 아직 햇볕은 산 위에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첫 번째 마을은 빈집이 많고 성당도 거미줄이 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문을 닫은 것 같다.
두 번째 마을은 제법 큰 마을이었지만 별로 사람이 많이 살지는 않은 것 같고, 순례객을 상대로 하는 가게만 문을 열었다.
앞서가는 제법 나이가 있는 남자의 걷는 모습을 뒤에서 보니까 정말 바른 자세로 걷고 있다. 발은 거의 11자를 유지하고 발 사이의 간격도 일정하다. 따라가면서 유심히 보았지만 걸음걸이가 흐트러지지 않고 정확하고 일정하다. 걷는 것이 리듬을 타는 듯이 걷기 때문에 힘도 덜 드는 것 같다. 걸음이 정확하니까 속도도 빠르다.
다음 마을 입구에는 순례자의 조각상과 담 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조각상이 정겹다.
.....
이 마을에서는 멀리 산 위로 지나가는 다리가 보인다.
그러니 이 순례길이 얼마나 깊은 계곡 길인지 말해준다. 한참을 가다가 보니까 이번에는 산 위에 다리가 2중으로 된 것도 보인다.
그 위로 헬기가 떠 있다.
이번에는 바비 인형 같은 젊은 여자 두 명이 순례길을 걷고 있다. 뒤에서 날 추월해서 가는데 다리에 군살이 하나도 없는 날씬한 몸이다. 몸이 가벼우니까 걸음걸이도 가벼운지 열심히 따라가도 계속 거리가 벌어진다. 이 젊은 여자분들도 발은 11자로 가장 이상적인 걸음이다.
나도 예전에 94Kg나 나가던 몸무게를 거의 20Kg 가까이 뺀 것이다. 그러니 걷기에 무리가 없고, 지금은 잘 유지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딸도 운동을 하다니까 바비 인형은 아니라도 뚱뚱하다는 소리는 안 들을 정도로 뺏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면 빠지는 것이 살이지만, 해도 안 빠지는 사람도 많은 것이 살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계곡도 끝나가면서 멀리 산 정상이 보이는데 오늘은 아마도 그곳은 넘어야 할 것 같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6시간을 걸었지만, 아직도 계곡길을 걷고 있고, 이제 계곡이 끝나고 산을 넘어야 하는 곳까지 왔다.
여기서부터 힘이 드는 구간이었다. 이곳을 오르기 위해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입에서 힘이 든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르막길이 계속되니까 나이 든 사람들이 표시가 난다. 가다가 쉬고 그렇게 빨리 걷던 노인들도 걸음이 느려진다.
그런데 남미 남자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힘든 길을 걸으면서 합창을 하고 가는 것이다. 앞으로 가면서 보니까 할아버지들이다. 힘들어서 인상 쓰는 것보다 났지만, 아마도 하도 힘이 들어서 그냥 잊으려고 부르는 것 같다. 아마도 우리나라 노래로 치면 “고향의 봄”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두 분의 표정으로 봐서는 오랜 친구 사이 같다.
이렇게 정상을 향해서 열심히 걷다가 보니까 정상 마을인 라구나에 도착했다.
그 마을에 있는 작은 바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가 힘이 들어서 여기서 맥주나 음료를 마시기 위해서 한참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이 정상으로 생각했는데, 한참을 쉬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니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이 라구나 마을에서 아래 보이는 경치는 맑은 하늘과 함께 좋은 풍광이다.
이곳에는 다른 곳과는 다른 운치 있는 십자가 비석도 서 있다.
다시 산길을 올라가면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한다. 이렇게 높은 곳에 목장들이 많이 보이고 산속에 마을도 더러 보인다.
오르막길을 끝까지 올라가기 바로 전에 오늘은 고양이가 맞이한다.
마지막 가장 높은 곳에는 성당의 종탑이 자리하고 있다.
종탑을 보러 가기 전에 목에 꽃을 건 특이한 여인상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정상에는 집들도 제법 있고 숙박시설과 기념품 가게도 있고, 순례객뿐만 아니라 차로 온 관광객들이 많았다.
이곳에서도 아래 보이는 경치는 맑은 하늘과 먼 산도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머물 생각이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좀 더 한적한 곳을 찾기 위해서 더 걸었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 산속으로 난 순례길이다.
산속 길이 끝나고 도로와 만나는 곳에서 소들과 힘들어하는 순례객 조각상을 만났다.
순례객 조각상이 오만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내 마음과 같은 느낌이다.
내려가서 첫 번째 마을에서 숙소가 없어서 다시 다음 마을로 걷는다. 다음 마을에서도 숙소가 없다. 제법 걸었는데 숙소를 못 찾아 걱정도 될 법한데, 별로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
다리만 아플 뿐이다.
오늘 숙소는 호스피탈이라는 작은 마을 알베르게로 정했다.
넓은 방에 한 사람이 있었다. 순례객들은 여러 순례객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 주로 묵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