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6월 하순에 접어들지만, 아직도 선선해서 긴팔을 입어야 했다.
늘 보던 들판이니까 별로 신기한 것은 없었지만, 돌로 만든 곡물창고가 특이한 것인 줄로 알았는데 여기서부터는 계속 돌로 만든 것이 나오는 것을 보니까 이쪽 지방은 곡물창고를 돌로 만드는 것 같다.
산을 넘어가면서 마을이 나올 때까지 부지런히 걸으면서 앞으로 이틀 동안 더 걷는 것보다 오늘 하루 만에 피스테라까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45Km 정도 남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길은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이제 걷는 것도 지겨운 시기가 된 것이다.
그래도 먼 거리라고 생각하니까 쉽게 결정을 할 수가 없다. 먼 길을 무리하다가 탈이 나면 더 큰일이라는 생각과 하루 더 걷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겨운 생각이 드니까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 마음이 결정되니까 갈 자신이 생긴다. 마음먹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인 것이다.
이곳에도 풍력발전기가 있는 것은 바람이 세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바람이 세지 않으면 목장의 냄새로 사람이 살 곳이 못 되는 곳일 것이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은 소똥 냄새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땅에 배여 있는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 마지막도 소똥 냄새와 같이 걸어온 길이다. 이곳에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이 이곳 사람에게는 다행인 것이다.
이제 오늘 피스테라에 도착하면 버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일단 신고 온 신발과 양말은 버리는 것으로 했지만, 입고 있는 외투를 벌릴 것인가 고민이 된다. 이 검은 점퍼는 상징성이 있는 옷이기에 버리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었지만, 그동안 추워서 너무 소중히 입고 다닌 옷이다. 또 지금도 날씨가 아침에는 추워서 입어야 하니까 버리기가 망설여진다. 그래서 반바지를 버리기로 했다.
반바지는 긴 바지를 잘라서 내가 만든 바지이고 버릴 명분도 있으니까 그렇게 결정했다.
또 다른 마을이 나오는데 공룡알처럼 생긴 특이한 바위가 있는 곳을 지난다.
이곳은 거의 피스테라로 가는 사람들이 쉬었다가 가는 곳인 것 같다. 주변에 경관이 좋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별장이 많이 보인다. 주변에 농토나 목장이 될 만한 곳이 없으니까 건너 산기슭에 있는 것들은 별장인 것 같다.
산길을 내려가니까 잘 닦인 도로를 만난다. 도로는 안개가 자옥하지만 산길보다 오히려 걷기는 수월하다. 도로 길을 계속 가니까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가 파스테라와 묵시아로 가는 갈림길이다. 묵시아는 야곱보의 유품이 처음 발견된 천주교의 성지이다. 신자들은 이곳을 파스테라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곳이다.
나는 당연히 파스테라쪽을 선택했지만, 묵시아를 선택하는 사람은 내가 올 때는 없었다.
안개가 많은 도로를 하염없이 걸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걸었다.
다시 산길로 걸어가니까 안갯속에 이상한 동물의 조각상이 덤비라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지루한 길에 특이하게 잘 만들었다.
십자가가 있는 갈림길에서 다시 안개 낀 산길을 걸어간다.
이렇게 힘들게 걸어서 피스테라에 도착하면 벌릴 것이 신발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모두 내려놓고 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걷는다.
그런 생각을 여러 번 해도 남을 정도로 긴 산길이다. 안개가 끼어서 걷기에 덥지는 않았지만 산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산길을 혼자서 걷다가 양팔을 벌여서 허수아비처럼 하고서 걸어본다. 그러다가 바람이 부는 데로 양팔을 흔들어 본다. 그렇게 한참을 흔드니까 안갯속에 춤추는 허수아비가 된 것 같다.
그러다가 실제로 걸어가면서 허수아비처럼 손을 벌려 춤을 추면서, 양 어깨까지 들석여 본다. 춤을 추면서 가는 산길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세상에 실제 내가 춤추면서 가도 나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산길을 춤을 추면서 가듯이 인생도 이렇게 가는 싶은 생각이다.
이제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안갯속에 세 사람이 오는 것이 보인다. 이번에는 그 사람들이 보라고 실제로 허수아비처럼 춤을 추면서 걸어갔다.
산길 끝나는 곳에는 밤나무들을 양쪽에 심어 놓았다.
가을이 되면 밤이 익어 떨어지면 순례객들이 가다가 줍도록 배려해 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런 것이 이 먼 곳을 걷는 순례객에 대한 관심과 배려인 것이다.
산길 끝에 안갯속에 아담한 항구도시가 나온다.
한눈에 아름다운 항구이고 이 항구에는 수국이 한창 피어있다.
수국이 도로나 담장 밑에도 피어있고 순례객을 위해서 잘 가꾸어 놓은 것 같다.
이름 모를 붉은 꽃이 만발한 가정집에서 멀리 보이는 곳에는 항구에 요트들이 떠 있다.
다시 산으로 올라가서 돌담길을 걸으면서 피스테라가 이 산을 넘으면 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산허리를 돌아가면서 만든 돌담 산길이 끝나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곳이 나타난다.
그리고 바다 저 끝에 있는 것이 피티테라라는 것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내리막으로 내려가서 바다 옆길 돌길을 걷는다.
.....
돌길이 해변을 따라 만들어진 돌길을 걸어가니까 항구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피스테라까지 3Km를 걸어갔다.
중간에 있는 야곱보 동상은 피스테라로 가는 모습이다.
스페인 땅끝이 보이고 0.000Km의 표지석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고 다시 스페인 땅끝까지 온 것이다. 900Km를 걸어온 것이다.
이제 걷기가 끝났다. 오늘 걸은 거리가 이제까지 가장 먼 길을 걸어온 것이다. 마지막에 힘들었지만, 내려놓고 싶은 심정에서 걸어온 것이다.
대서양이 보이는 바위 위에는 쇠 신발이 있고 그 앞에 붉은 장미가 있다.
이제까지 걸어온 신발을 벗어 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난다는 의미의 쇠 신발이 대서양을 바라보고 놓여 있다.
나는 쇠 신발보다 더 앞으로 가서 오랫동안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끝없는 대서양 수평선을 바라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난다.
신고 온 내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돌아선다.
신발만 외로이 대서양에 남겨두고 긴 걷기도 이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