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앞 넓은 밭에는 배추가 심어져 있다.
아직 어린 배추는 사 일전 만해도 많이 살아 있었는데, 오늘은 산 배추보다 죽은 배추가 훨씬 더 많이 보인다.
어제 강한 햇볕에 어린 배추들이 말라죽은 것이다. 그래서 말라죽은 배추 자리에 배추 모종을 다시 심지 않으면 올 배추 농사도 끝난 것이다.
이 배추밭이 올해 들어서 세 번째 시도한 농사일이다.
처음에는 콩을 심었는데 비둘기가 와서 콩알을 파먹어서 콩이 오다가다 싹이 난 것이다. 이때 콩을 심어 놓고는 비둘기가 활동하는 낮에는 밭둑에 앉아서 콩을 파먹으러 오는 비둘기를 쫓아야 하는데 그냥 심어 놓고는 돌아보지 않았다. 비둘기들은 이런 밭은 신기하게도 알아보고 찾아온다. 비둘기가 하루 이틀만 다녀가도 심은 콩은 파먹어서 싹이 올라오지 않는 것이다.
기다려도 콩 싹이 올라오지 않으니까 다시 그 자리에 콩을 또 심었다. 이번에도 비둘기가 오는 것을 쫓아야 하는데 처음처럼 비둘기를 무시한 것이다. 비둘기는 체면을 모르는 동물이라 다시 주는 좋은 먹잇감을 그냥 두지 않고 콩알을 파먹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콩을 또다시 심을 시기가 지나 버리니까 두 번이나 농사를 망친 것이다.
비둘기가 망친 콩밭은 올해 다시 할 수 있는 농작물은 가을배추나 우무밖에 없는 때가 되어서 배추를 심은 것이다.
배추 모종도 준비가 되지 않아서 수소문해서 힘들게 구했다. 그 배추 모종을 콩이 나지 않은 곳에 일일이 사람을 사서 심었다. 그렇게 심은 배추는 처음에는 죽지 않고 잘 살았다. 며칠 비가 오고 잘 살 것 같았던 배추가 엊그제 햇볕이 강하게 내린 날 말라죽기 시작했다. 원래 배추 모종을 구할 때 그렇게 튼튼하지 않은 약한 모종이었다. 급하게 구한 모종이라 좋은 것은 구하기 어려워고, 모두가 본인들이 심을 만큼만 모종을 파종하기 때문에 남는 모종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배추가 죽은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이 빈 곳으로 남아 있어서 보기 싫지만, 다른 작물을 심을 것이 없다. 오직 배추 모종을 다시 구해서 심어야 하는데 모종을 구할 수가 없다. 아마도 며칠이 지나면 그곳의 잡초가 나오면서 배추밭이 잡초가 가득한 묵밭이 될 것이다.
묵밭이 되면 지나가는 이웃들이 웃고 지나갈 것이다. 더러는 자기 농사 잘 된 것보다 다른 사람 농사가 안된 것이 더 즐거워하는 이웃도 있고, 어떤 이웃은 배추밭에 배추는 없고 잡초만 있으면 비웃고 지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됐든지 이웃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 위안을 얻을 것이고 잠시나마 웃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밭을 지나는 이웃들이 올해는 무얼 했는지 궁금해하고 어째서 농사를 망쳤는지 알고 싶어 하는 곳이 되었다.
농사를 하러 들어온 지도 벌써 십 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새봄이면 의욕적으로 시작해서 여름이 지나면 서 잡초 반, 작물 반하다 결실도 못 맺고 가을을 맞는다. 그리고 겨우내 쉬다가 다시 봄이 오면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회사를 다닐 때는 적성에 맞지 않다고 투덜거리다가 농촌에서 자라서 본 것이 농사일이라서 적성에도 맞을 것 같고, 간섭도 받지 않고 잘할 것 같아 고향으로 들어왔는데, 여기도 생각한 것처럼 잘되지 않았다. 고향에는 연로한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고 아직도 농사하고 계셨다.
부모님은 농사해서 시골에서 서울까지 보내 좋다는 대학을 시켜 놓았더니 빈손으로 들어와 농사하겠다는 아들이 마음에 들 일이 없었다. 남의 자식보다 학교도 더 많이 시켜 주었는데, 학교를 안 한 다른 집 자식들은 공장도 하고, 장사해서 큰돈 벌어 집도 지어주고 차도 사준다는데 빈손으로 돌아온 자식이 좋아 보일 리가 없다. 이웃들이 뒤에서는 대학 시켜 놓았더니 백수가 되어서 돌아왔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자식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나서 한집에서 도저히 살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읽은 것인지 자식은 바로 이웃 동네 빈집을 얻어서 그곳에서 살면서 다른 사람의 토지를 경작했던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 이웃 동네에 살지만 안 만난 지가 자식이 고향에 들어온 햇수와 같다. 자식농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위안 삼으면서 늙은 부모님은 하던 농사일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해 뜨면 일하러 갔다가 저녁이면 돌아오는 것이 속이 편하다.
농사일이 하면 될 것 같은데 잘 안되니까 남보기 부끄럽기도 하지만 더 힘든 것은 뒤에서 뒤 담화가 신경 쓰여 이웃 보기가 싫어 집에서 잘 나가지도 않는다.
될 것 같은데 안 되는 농사는 한번 시기를 놓치면 망치게 되는 농사가 야속하기만 하다. 먹고사는 것은 처음 농사 시작할 때에 장만한 농기계로 이웃 노인들의 밭을 갈아주고받는 품삯과 나라에서 주는 직불금으로 살아가는 형편이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갈 때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으니까 그냥 여기 사는 것이다.
그래도 봄이 되면 혹시 올해는 농사가 대박이 날지도 모르는 희망은 있다. 그러다가 연로하신 부모님이 힘들어지거나 돌아가시면 물려받을 토지를 보고 살아가는 것이다.
남들은 게을러서 그렇다고 하지만, 농사 시기를 한 박자 놓쳐서 그렇다는 것을 믿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올해도 벌써 추석이 다가오니까 배추밭에는 이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마을 앞에서 잘 보이는 밭은 올해도 묵밭이 되어서 잡초만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올해도 같은 꼴이지만 이제는 이 밭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객지에 나가서 많이 배운 사람이 농사하는 밭이 울창한 잡초 구경거리를 보여주니까 부모님 외에는 한 마디씩 하고 웃고 지나간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갈 것이고 또 겨울이 오면 쉴 수 있는 시간이 온다. 그때는 다시 봄에 농사를 잘 지을 꿈을 꾸면서 지낼 것이다.
나도 이렇게 시골에 농사하러 들어올 줄도 몰랐고, 농사도 늘 이 모양으로 해서 다른 사람의 구경거리나 이야깃거리가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세상 살기가 쉽지는 않지만, 남들이 잘하는 농사가 왜 이렇게 안 되는지 나도 알 수 없다.
이웃 살던 친구들이 고향에 오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온 누구 밭이라고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도 몇 년을 보았다. 여러모로 이웃에게 즐거움을 주고 기쁨을 주는 농부가 된 것이다.
이웃에 위안이 되고 웃음 주는 농부보다는 농사 잘하는 농부가 되고 싶은데, 내가 짓는 농사는 이웃들이 밭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단조로운 농촌에서 늘 이야깃거리가 되고 내 농사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그대로 되어 가는 것을 보고 본인들이 말이 맞았다고 즐거워하는 듯하다. 나는 이웃에게 짐이 되거나 관심도 없는데, 별난 이웃들은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늘 지켜보는 것 같다.
그래도 나름 농사를 한다고 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지 일부러 웃음거리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날씨와 시골 인심이 나를 희한한 농부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