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나는 할머니들

by 안종익


이른 아침에 조용한 마을에 경운기 소리가 들리더니 경운기 뒤 칸에 고정된 파라솔 안에는 할머니가 앉아있고 앞에서는 할아버지가 몰고 간다. 한낮 햇볕이 뜨겁기 전에 일하러 노부부가 밭으로 가는 길이다.

그렇게 농사일을 하다가 보통은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만 혼자 남겨져 오랫동안 살아간다.

농사일도 고추를 심어서 농사하는 할머니들은 아직도 건강한 할머니들이고, 고추가 힘들어 콩을 심어 농사하는 할머니들은 멀지 않아 일을 못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일할 때도 아픈 곳은 있지만, 걸어 다니는데 이상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때이다.

농사를 할 수 있는 할머니는 아직 살 만한 때이고, 젊은 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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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를 두 손으로 잡고 밀면서 걷는 할머니가 있다.

전동차를 타고 다니면 되지만, 전동차를 타면 걷지 않으니까 다리가 약해지므로 자식들이 못 사게 해서 유모차를 밀지만, 자신도 더 오래 걷고 싶어 전동차를 타지 않는다. 이 할머니는 이른 아침마다 고향에 더 오래 살고 싶어서 열심히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것이다.

그래도 전동차를 타고 다니는 노인들은 나름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하기도 하지만, 전동차 없이는 못 걷는 할머니들은 멀지 않아 고향을 떠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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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이 한창인 낮에도 일하러 간 할머니들은 일을 하지만, 일을 못하거나 하지 않는 할머니들은 정자에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면 시간도 잘 가고 심심하지 않고 아픈 몸도 잠시 잊고 지낼 수 있다. 여기 모이기 몇 전까지 농사를 하다가 몸이 힘들어 못 하지만,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할머니들이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에는 운동을 나간다. 운동을 해야 다리에 힘이 생기고 오랫동안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걸어 다녀야 정든 고향에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은 할머니들은 알고 있다.

그렇게 운동 나가면 웃 버스 정류장에 가면 석보 댁이 운동하다가 쉬고 있고, 아래 정류장에 가면 감천 댁이 쉬고 있다. 다니다 보면 동네 할머니들은 모두 만나고 안 보이면 몸이 나빠서 집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며칠 있으면 다시 나오면 그동안 안부를 묻는 것이 할머니들이 일상이다. 요즈음은 오랜만에 연당댁 할아버지 한 분도 운동 나가면 만난다.


할머니들은 운동하거나 마실 나갔다가 또래 할머니들과 보내다가 저녁이면 혼자 사는 집에 돌아와서 텔레비전 보다가 잠이 드는 것이다. 아침이면 다시 일어나 나가지만, 심심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이 찾아온다. 그래도 낮에는 같은 처지의 할머니들이 있어서 외로움을 잊기도 하지만, 저녁이 되면 외롭고 심심한 것이 더 심하다. 빨리 잠이 들면 좋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이나 자정을 넘어서 잠에서 깨면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그리움도 외로움을 변해서 힘들어지는 밤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고 싶은 자식들이지만 자주 보지 못하고 혼자서 사는 것에 익숙지도 오래다.


발매 댁은 날이 밝아 오면 일어나서 운동을 나가는데, 이렇게 부지런을 떨어야 다리에 힘이 있어서 하루라도 더 고향에서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못 움직이면 아무리 효성이 있는 자식도 같이 와서 살지 못하면, 시설로 보내버리는 이웃을 봤기 때문이다. 우리 자식들은 다르다고 생각하다가도 정신 차려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내 발로 걷지 못하면 시설로 간다고 생각하니까 날이 밝아 앞이 보이면 운동을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어도 아픈 곳은 한둘이 아니고 약을 한주먹씩 먹지마는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고향을 떠나 다시 돌아온 할머니들은 거의 없지만, 간혹 다시 돌아와도 얼마 안 있으면 다시 가서 영영 못 본 할머니들이 눈에 선하고, 할머니들은 정해지지 않은 순서를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다


봄날에 마실도 못 나오고 집안에만 있던 흥구 댁은 자식들은 그렇게 일하지 말라고 해도 도우미가 돌아간 사이에 방에서 두 팔과 다리를 이용해 기다시피 나와서 집 안에 있는 작은 밭에 잡초도 뽑고 옥수수와 고추도 심어 놓아다가 자식들에게 한소리 들었지만, 그래도 얼마 전까지 하던 농사일이라 봄이 와서 했던 것이다.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전통차로 바깥출입을 하면서 두 다리로 걷기도 했는데 올봄부터는 걷지를 못해서 집에만 있다.

못 걸으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여름에도 도우미 아줌마가 흥구 댁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는데, 어느 날부터 도우미가 오지 않는다.

몸이 걷지 못하니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로 나빠져서 큰딸이 있는 도시의 근처 시설로 가셨다고 한다. 이제 그렇게도 머물고 싶어 하던 고향을 떠난 것이다.

고향을 마지막 떠나면서 지난날 애틋한 세월들도 생각하지 못하고 아픈 몸만 힘들어하면서 떠난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흥구 댁과 같이 살던 고향이 살아있지만, 흥구 댁은 그 고향을 떠난 것이다. 그리움과 추억을 고향에 두고 말없이 차에 실려서 떠난 것이다.

멀지 않아서 또 다른 할머니가 고향을 조용히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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