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에 내린 날이 평일 저녁 9시가 넘어서 도착했는데, 제주공항은 만원이었다. 택시를 타려고 해도 줄이 너무 길어서 버스를 이용해서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늦은 저녁이지만 예약한 숙소를 찾는 데는 어렵지 않았고, 그동안 여행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는지 길을 찾는데 마음이 편한 것이 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은 생긴 느낌이다.
제주도의 첫날밤 게스트하우스는 시설이 깨끗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산티아고 알베르게보다 더 좋은 곳이었다.
제주 올레길은 1코스부터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할 생각으로 미리 1코스로 가는 버스 편을 알아 두었다.
아침 일찍 201번 타고 올레길의 시작점인 신흥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종달리 방향을 150m 가니까 입구가 나온다. 입구도 자연적이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을 했다.
입구에서 50m 정도 들어가니까 첫 번째 표식이 돌담에 있는 것이 보인다.
이어지는 돌담들은 밭의 경계이지만, 정겹고 오래전에도 본 적이 있는 듯하다.
1Km 이상 올라가니까 올레길 안내소가 나왔지만 이른 아침이라서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안내소에서 곧바로 오르는 것이 말미오름이다. 처음부터 오르막으로 오르는 것이다.
말미오름은 말의 머리처럼 생긴 오름으로 정상에 오르니까 성산포 들판과
성산 일출봉, 우도가 한눈에 보였다.
곧 이어지는 오름이 알오름이다. 새의 알을 닮았다고 알오름이라고 이름 붙여진 오름으로 여기도 성산의 모든 것이 보이는 곳이다.
알오름을 내려가면 역시 정겨운 돌담 밭들이 보이고
돌담은 쌓을 때 바람이 통할수 있도록 조밀하게 쌓지 않는다. 그러니 센 바람이 불어도 담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바람이 구멍을 통하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밭을 경계하는 돌담도 있지만, 묘지 주변에도 돌담을 쌓은 것이 특이하다.
알오름에서 내려와 만나는 마을이 종달리이다.
종달리 마을을 통과하면 바다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성산 일출봉이 잘 보인다. 바다길을 가지만 그 길은 성산 일출봉을 향해서 가는 길이다.
성산포항을 지나서 일출봉으로 올라간다. 성산 일출봉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천년기념물로 관리하고 있는 180m 화산 분화구이다.
성산 일출봉을 지나서 광치기 해변으로 올레길은 이어진다.
광치기 해변에 도착할 무렵은 햇볕이 너무 뜨거운 정오 무렵이라서 걷기도 힘들고, 더욱이 햇볕을 가려줄 나무가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해변이 너무 길어서 계속 걷다가 보니까 올레 표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때부터 표식을 찾으러 아무리 다녀도 보이지 않아서 계속 헤매다가 너무 힘이 들어 오늘은 그만 걸으려고 주변에 쉴 수 있는 숙박 시설을 찾았지만 그것도 없었다.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2코스 시작점을 찾았는데, 광치기해변에서 너무 더워서 표식을 잠시 놓친 것이 오랜시간 고생하게 만들었다.
2코스를 시작하는 부근에 키 작은 코스모스 군락지를 조성해 놓았다. 코스모스는 예전부터 보아오던 꽃이지만, 군락지를 이루어 있으니까 또 다른 구경거리가 되었다.
코스모스 군락지가 끝나는 부근에 내수면이 시작되었다.
내수면 주위를 도는 것이 2코스 시작이고, 내수면은 조선 말기에 보를 쌓아서 만든 논이 늪지로 변한 것을 다시 양어장으로 만들었다가 지금은 방치된 상태지만 볼만한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내수면을 걸을 수 있는 테크 길을 잘 만들어 놓았지만, 여기도 햇볕을 그대로 받아서 풍광은 좋은데 걷기가 힘들었다.
날씨 더워서 그런지 올레길을 걷는 사람이 없었다. 실제로 올레길에 대한 인기가 떨어졌다고 한다.
내수면을 돌면서도 성산 일출봉은 계속 보인다. 올레길 1코스와 2코스는 성산 일출봉 주변을 벗어나질 않는다.
내수면 중간에서 식산봉으로 올라간다. 식산봉은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바다에 직접 접한 오름으로 왜구의 침략이 잦아서 오름을 낟가리처럼 쌓아서 군량미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어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했다는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식산봉에 내려와도 성산 일출봉이 보였다.
오조리 마을로 들어가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내수면 돌아서 성산리 고성마을로 간다.
도로를 따라서 지루한 길을 햇볕을 통째로 받으면서 걸어간다. 대수산봉에 오르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햇볕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이 있어 좋았다.
걷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번 제주 올레길을 걸어 보니까 아닌 것 같다. 걷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서 오늘만 걷고 제주 올레는 한번 경험한 것으로 만족하고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체력이 떨어진 느낌이다.
이번에 제주 올레를 걷는 이유 중에 하나는 예전에 산티아고를 걸어서 만든 몸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아 너무 방심해서 살이 상당히 붙었다. 그래서 다시 그때 상태로 만들어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힘들었지만 걷다가 보니까 혼인지에 도착했다.
전통혼례 체험장으로 만든 곳으로 연못을 구경했다.
혼인지 연못 주변에 지금은 꽃이 지고 없었지만, 수국이 많이 심겨져 있다. 수국이 핀 계절에는 엄청난 장관을 연출할 것 같은 곳이다.
계절이 지나서 수국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면서 연못 주변을 돌다가 올레길을 걷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머리가 흰 것이 나와 비슷한 모양새를 한 남자였다.
웃는 얼굴이 아니고 무언가 힘든 느낌을 주는 것이 나와 처지가 비슷한 것처럼 보여서 먼저 말을 걸었다. 이후 이 남자와 온평 포구까지 동행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리키던 교수였는데, 정년을 못하고 명퇴를 했다고 했다. 명퇴한 이유가 우울증을 알고 있어서 그만두고 지금은 치료중이고, 올레길을 걷는 이유가 우울증에는 햇볕을 많이 보면서 걸으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도 이렇게 본인이 우울증에 시달릴 줄은 몰랐는데, 어느 순간에 이 병이 들어서 힘들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올레길 스템프를 찍으로 온평포구에 간다고 하면서 스템프를 찍어서 마누라에게 확인을 받는다고 했다.
온평 포구에 도착해서 같이 동행한 남자와는 헤어졌다. 남자는 미리 정해 놓은 숙소로 돌아 간다고 했다.
온평 포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주변에 사전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게스트하우스가 있어서 자리를 잡았다. 자리 잡고는 이번 올레길은 맥주를 안 먹을려고 작정을 했는데, 날씨도 덥고 햇볕과 길을 잃어서 고생했기 때문에 맥주가 너무 고파, 내일 후회하더라도 오늘은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