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by 안종익

젊어서 앞만 보고 살았던 것이 후회되는 나이가 되면 벌써 인생의 황금기는 지나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가 된다.

이때가 되면 바쁘게 산 것과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산 것을 부질없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부터라도 여유 있게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다. 그런 게기가 되는 것이 보통 정년이라는 인위적인 시기를 맞이했을 때이다. 예전에는 정년을 하면 환갑이 지난 나이이고, 그 뒤로 그렇게 오래 살지 않고 한 인생을 마감하던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백세 인생이라고 해서 정년 뒤에 수십 년이 남았다고 하니까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대이다.

이제는 인생 2막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말이 되었고, 노년에 건강도 문제이지만 오래 살아서 할만한 일이 없어서 심심하고 외로운 것도 더 문제이다. 물론 건강이 좋지 않아서 거동이 힘드는데 오래 살면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정년이 지나면 편안하게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을 하면서 나머지 세월을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된다. 보통은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다가 힘에 부칠 때 그만두고 마무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나머지 인생도 의미와 보람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대체로 나머지 인생은 나를 위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삶을 살려면 깊은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고 자존감이 강해야 한다.


정년이 다가오면서 남들처럼 나름대로 2 막을 준비해서 시작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생각한 대로 잘되지 않았다.

계획한 것은 “시니어 노마드” 삶을 생각했었다.

노년의 집시족이 되어, 내가 사는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유랑하는 삶을 다리에 힘이 있을 때까지 해 보려는 꿈같은 계획을 세웠다.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같이 가면 힘도 덜 들고 외롭지 않게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는 생각하고 계획했었다. 새로운 세상 구경이 목적이지만 부수적으로 여행한 느낌도 기록했다가 나중에 다시 보는 여행작가도 꿈꾸었다.


퇴임하면서 감기 전염병으로 꼬이기 시작하더니 허송세월을 일 년을 보냈다. 그래도 그 생각은 버릴 수 없어서 실천해 보려고 먼저 국내를 돌아보기도 했고, 나중에는 혼자 외국에 나가기도 했지만, 모두가 앞으로 진정한 “시니어 노마드”가 되기 위한 탐색이었다.

그런데 하고자 하는 의욕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느낌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전보다 추진력이 떨어지고 인내심도 없어져 가는 것 같고 가장 어려운 것은 기억력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때로는 못 가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이 들고 그냥 이렇게 대충 살아가는 거라는 나약한 마음이 찾아올 때가 많다. 그러다가 “인생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현재의 안주를 합리화시킨다.

그래도 동조자가 있으면 시작하겠지만, 같이 가기로 한 사람도 이런저런 일로 못 간다고 하니까 자꾸 노년의 꿈은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세상에 마음이 맞거나 생각이 같은 사람을 찾기란 힘든 일이고, 주변에 늙어가는 노인들을 보면 마지막으로 갈수록 혼자가 되어 가는 것이 보인다. 그러니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도 들 때가 많아지고, 이런 때에는 혼자도 잘 살 수 있고 인생을 홀로 마무리할 수 있는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자존감을 가지려고 무단히 노력을 하지만 쉽게 갖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계속 자존감을 찾다가 인생 마감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혼자서 여행 다니면서 자기만족과 즐거움을 찾으려고 시도했지만, 즐겁고 만족할 때도 있었지만 외로울 때가 더 많았다.


자존감이 적으니까 나이 들어가면서 삶이 만족이나 감사가 아니라 외로움과 공허해지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런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만나도 외로움에 도움이 되기보다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무의미한 만남은 의미 없고, 서로 배려하고 인간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이 들면서 의지할 대상은 가족이 먼저인 것 같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 있는 대상이고 삶의 굴레에서 자연스러운 공동체이므로 이해하고 배려하면 최고의 친구인 것이다.


일을 할 때는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었지만, 일이 없으니까 시간이 많아지고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움을 느낀다. “시니어 노마드”의 꿈도 혼자서 시도를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같이 가기로 한 집사람이 동참을 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한다고 혼자서 바쁘게 다니고 있다. 젊은 사람도 아니고 이제는 같이 지내면서 외로움을 덜어 주어야 할 때이지만 본인의 삶만 생각한다. 오히려 귀찮게 하지 말고 조용히 혼자 지내길 바라는 것 같다.

혼자 살거나 아내가 없는 사람보다 더 외롭고 쓸쓸하다. 없으면 없으려니 하고 살면 되지만, 있어도 외로움에 도움 되지 않고, 같이 살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만 쌓인다. 아내는 우리가 아니라 본인만인 것이다.

거기다가 자식들은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니까 그동안 키워준 것은 잊었는지,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만 하고 있다. 효라는 글자를 우리 자식들은 안 배운 것 같다. “자식 키워봐자 소용없다"라는 옛말을 실감한다.


“시니어 노마드”의 노년의 꿈을 이제 접고 싶은 심정이다.

술친구들과 한잔하면서 외로움을 잊고 주접을 떨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보통 인간이 사는 방법이고 그러다가 마치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것은 농사를 하는 것이다. 일을 함으로써 심심하거나 외로움을 잊고 살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기력이 쇠하면 시설로 가면 되는 것이다.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내가 생각하는 인생 두 번 살아보기를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일을 가지고 처음 살아보는 것처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아직 건강한 시간이 나에게는 있다. 그 건강한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면 무엇인가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삶의 마지막까지 자존감을 찾아서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하다가 마치는 것이다.

인간은 5년만 행복하게 살아도 잘 사는 거라는 말이 있듯이, 앞으로 5년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행복하다고 착각하면서 몸이 아프지 않을 때 해 보는 것이다. 같이 동행할 줄 알았던 사람은 본인만 외롭지 않은 일을 하고 다니고, 자식들은 내가 생각하는 자식들이 아니다. 말년에 배신을 당한 기분이다.

수 십 년을 열심히 일하면서 살았지만 내게 남은 것은 각자도생이다. 이렇게 말년에 혼자가 되려고 살지는 않았지만 현실은 혼자 살아가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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