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추억>
양쪽이 산으로 막혀 있는 계곡을 따라서 들어가면 큰 저수지 뚝이 나온다.
아직은 바람끝이 차가운 날씨에 바람도 제법 불고 있지만, 양쪽에 산이 막혀서 계곡 사이로 부는 바람만 막아주면 봄볕은 따뜻하다. 계곡의 바람을 막아주는 큰 저수지 뚝 밑에는 늙은 엄마와 흰머리가 제법 보이는 나이든 아들 내외가 올라오는 봄 풀 중에서 냉이를 캐고 있다. 이른 봄날 바람을 막아주는 양지바른 곳에서 즐겁게 옛이야기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냉이를 캐는 모습이 세상 걱정을 내려놓은 산골 속에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그때 엄마와 같이 죽곡 저수지 밑에서 냉이를 캐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평생을 봄이면 캐던 냉이지만 나이든 아들과 같이 캐던 그때가 좋았을 것이다. 엄마가 시골에 계실 때는 이른 봄에 냉이를 캐러 같이 갔던 자리가 있었다. 냉이를 생각날 때마다 그 장소가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따뜻한 봄날과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향수를 느낀다. 마을에서 산골로 한참을 걸어가 왼쪽으로 들어가면 긴 계곡이 나온다. 그 계곡 마지막에는 죽곡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 이름이 쭉~개골이라는 뜻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 계곡에 저수지를 만든 것이다. 이 저수지 뚝 밑에 있는 밭과 밭둑에서 냉이를 캐던 곳이다. 올해도 이곳을 찾아갔지만, 밭은 그대로인데 지난해 고추를 심어서 냉이가 없었다. 그래도 엄마와 같이 냉이 캐던 추억이 있으니까 포근하고 아늑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서서 생각에 잠긴다.
예전에 정월 대보름날 저녁을 먹으러 온 가족이 모였다.
농사일이 곧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면서 들에는 온갖 새싹이 올라오려고 준비하는 계절이다. 이때쯤 저녁상에는 냉잇국이 올라온다. 냉이를 콩가루에 묻혀서 무와 함께 끓인 국이다. 할아버지는 냉잇국이 구수하고 시원하다고 하면서 냉이 향이 참 좋다고 말씀하셨다.
구수하다는 말을 듣고 냉잇국을 먹어 보았다. 냉이 특유의 향이 너무 진해서 한 숟가락 먹어 보고는 다시 숟가락이 가질 않았다. 냉이 향이 너무 찐해서 보통 나물 맛이 아니라 들판에 나는 풀 맛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더욱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냉이 향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보통 먹는 나물 향이 아니라서 먹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냉이는 정월 대보름 만들어 먹는 나물에도 빠지지 않고, 특히 특유의 냉이 향이 있는 냉잇국이 일품이다. 아니면 나물처럼 묻혀서 먹기도 한다. 냉이는 겨우내 추위 속에서도 가장 먼저 싹이 나온다. 겨울이 갔고 봄이 온다는 것을 알리는 전령사인 셈이다. 비슷하게 생긴 잡초가 있어서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냉이를 처음 캐는 사람도 한두 번만 눈여겨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냉이는 잎도 먹고 뿌리도 먹을 수 있는데 뿌리가 굵은 것은 몇 년 된 것으로 향도 더 찐하다.
고향이 산골이라서 어느 곳이나 냉이가 있을 것 같지만, 냉이를 캘 수 있는 곳도 찾기가 쉽지를 않다. 과수원 밭에는 굵고 좋은 냉이가 많지만, 농약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되고, 고추밭을 하던 곳도 비닐을 깔고 농약을 많이 치기 때문에 피하고, 콩밭이나 다른 작물을 심은 밭이나 밭둑에 있는 냉이를 찾아야 한다.
지난해 겨울 가뭄이 심해서 냉이가 없다고 하는데, 실제로 냉이 캐러 갔던 할머니들이 겨우 한 번 정도 먹을 것만 캤다고 푸념하는 것을 들었다. 그래도 시장에 가면 냉이가 제법 많이 있다. 냉이를 하우스에 재배해서 이른 봄에 나오는 것이다. 냉이가 시장에서 이제 봄나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나 향이 그렇게 찐하지 않다. 시장 냉이는 뿌리가 굵고 잎도 많이 달린 것이 많다. 냉이를 좋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거름과 비료를 많이 준 것이다. 겉보기에는 실해 보이지만 그 향은 자연에서 캔 것보다 못하다.
시장에 가면 할머니들이 봄철에 냉이를 갖고 나와서 파는 것을 자주 본다. 그런 냉이가 좋아 보이는 것이 많다. 시골에서도 냉이가 많이 나는 곳은 사과밭이다. 사과밭은 일 년에 농약을 열 번 이상 살포하는 곳이다. 이곳의 냉이는 농약 성분이 남았다고 생각해서 보통 캐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는 냉이가 실하고 좋은 것이 많다. 할머니 중에 간혹 사과밭이나 농약 많이 치는 과수원에서 캔 냉이를 갖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냉이보다는 차라리 재배한 냉이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좋은 냉이가 나는 곳은 콩밭이지만 이 콩밭도 이제는 거의 비닐을 깔고 재배하니까 냉이 찾기가 어렵다. 다음으로 묵밭에 냉이가 많이 나는데, 이런 밭은 이른 봄에 부지런한 사람들의 몫이고, 해마다 캐기 때문에 굵은 냉이가 드물다.
할아버지가 냉이가 구수하다고 할 때 너무 진한 향이 싫었지만, 그런 냉이도 이제는 구수한 맛이 나는 나물로 되었다. 지금은 아마 내 입에서도 향이 구수하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살아가면서 어른들을 닮아가는 것이다. 입맛도 닮아가고 살아가는 방식도 닮아간다. 순서에 의해서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엄마와 같이 냉이를 캐던 추억은 내 가슴에 남아있다. 이런 추억거리는 누구나 가슴에 오래 간직된다. 나도 그런 추억을 자식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시골의 봄볕을 맞으면 엄마가 생각나고 냉이를 봐도 엄마가 떠오른다. 겨울의 끝자락에 고향에 가서 냉이를 캐던 일이 아득한 먼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봄이 되면 옛 어른들이 많이 생각나는 것은 어른들이 봄에 기억할 만한 추억을 많이 주고 가셨기 때문이다.
엄마가 계실 때 이른 봄에 냉이를 캐러 같이 갔던 것을 생각날 때마다 그곳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따뜻한 봄날과 그리움이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