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골 복숭아밭

by 안종익


<유동골 복숭아밭>

햇볕이 작열하는 여름 낮에 복숭아가 잘 익어간다.

봉숭아는 저장성이 없어서 복숭아 철이 지나면 다음 해가 되어야 볼 수 있는 과일이다. 익으면 쉽게 물러지고 곧 썩어 버린다. 제철 과일이라 하면 복숭아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이런 복숭아는 어느 과일보다도 맛과 향이 뛰어나다.

예부터 복숭아는 과일 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다. 무릉도원도 복숭아가 있는 곳이고 서유기에 손오공이 하늘의 복숭아를 훔쳤다는 내용이 있다.


노인이 복숭아밭을 만든 곳이 깊은 계곡이 시작되는 초입에 평평하고 좋은 밭이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복숭아 서리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의 위치이다. 복숭아밭에서 보면 윗마을도 어렴풋이 보이고 아랫마을도 보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거리이다. 이곳은 유동골이라는 큰 계곡이 있는 입구였다. 옛날에는 그 계곡으로 나무를 하러 가는 사람, 소를 먹이러 가는 아이들이 드나들던 곳으로 사람들이 늘 오가던 곳이다. 지금은 사람의 왕래가 끊어져서 울창한 밀림이 되었다. 여름에는 아랫마을 동네 아이들의 거의 이 계곡으로 들어가 소도 먹이면서 해 질 무렵까지 놀던 곳이다. 그 계곡을 한참 들어가면 큰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 느티나무가 놀이터 겸 소 몰고 들어와 모이는 장소였다. 겨울이면 어른들이 나무하러 올 때 이곳에서 쉬는 쉼터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 계곡 산길이 사람과 소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길이었다. 지금은 길도 없어지고 나무로 덮였지만, 옛길을 어렴풋이 보이기도 한다.


복숭아밭은 넓어서 입구에서 끝까지 가려면 한참 가야 했다.

밭 입구는 그렇게 넓지 않다가 중간이 많이 넓어져서 대다수가 복숭아나무가 여기에 심겨 있다. 더 올라가면 입구와 마찬가지로 좁아지면서 끝나는 밭둑이 나온다.

봉숭아밭 울타리를 하기 위해서 노인은 탱자나무를 심었다. 그 탱자나무가 자라서 어른들이 못 넘을 정도로 커야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탱자나무가 잘 크지 않았다. 노인은 그 탱자나무가 울타리 될 때까지 사실 생각이 있었는지, 그냥 복숭아밭 울타리를 튼튼하게 할 생각으로 심었는지 모르지만, 탱자나무는 과수원울타리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복숭아밭 입구에서 조금 들어와서 원두막을 지었다. 원두막에서 보면 위쪽의 나무도 잘 보였다.


유동골 계곡은 깊고 길었다.

인근 마을에는 과수원이 한 곳도 없고 노인 복숭아밭이 유일했다. 원래 복숭아나무 사이사이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복숭아를 일찍 수확하고 베어내고 나중에는 사과 과수원으로 할 생각이었다. 노인은 그냥 농사는 힘이 드니까 생각한 것이 과수원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생각이 앞선 노인이었다. 결국은 사과나무는 별로 재미를 못 보고 베어버리고 복숭아를 주로 하게 되었다.


여름철에는 복숭아가 익어가면 노인은 그 과수원을 지켜야 했다. 주변 산골 마을에 복숭아밭이 없어서 여름밤에는 서리의 대상이 되었다.

밤낮으로 원두막에 홀로 계셨다. 아침은 아랫마을로 내려와서 드시고 갔고 점심과 저녁은 며느리나 손자들이 갖다가 주었다. 노인은 원두막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누가 서리를 해가도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초저녁에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정도이다. 노인은 서리해 가는 것을 봐도 쫓아갈 힘이 없어서 잡을 수는 없었다. 서리해서 가는 방향을 보고 어디 마을에서 왔겠구나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그래도 노인은 한 번도 어디 쪽에서 서리해 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서리가 없었는지 아니면 있어도 그냥 넘어갔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늘 밤새도록 지키기만 했다.


여름날 저녁을 먹고 인근 마을 아이들이 어두워지는 밤에 모이기 시작한다. 노인이 지키는 유동골 복숭아밭에 서리를 하러 가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산밑으로 숨어서 복숭아밭에 들어가서 복숭아 서리를 해 마을로 돌아와 즐겁게 떠들면서 여름밤을 보냈다. 위 동네에서는 해마다 봉숭아 서리를 했다고 자랑을 했었다. 그 마을에서는 그 노인이 지키는 복숭아를 밤에 서리했던 것이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윗마을은 물론이고 윗마을에서 계골로 쭉 들어간 죽곡에서도 서리를 했다는 한다. 아랫마을과 그 밑에 있은 마을에서도 서리했다고 하니까, 노인의 봉숭아밭은 인근 마을 아이들의 여름날 추억거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여름밤에 달도 없는 날이었다.

아랫마을에서 윗마을 집으로 가는 사람이 있었다. 달도 없는 밤에 잘 보이지 않아 겨우 길만 찾아서 앞만 보면서 윗마을로 가고 있었다. 간혹 짐승들 울음소리도 들렸다. 그래서 신경이 곤두선 상태이다. 밤길을 걸으면서 깊은 계곡인 유동골 입구를 지날 때 더 긴장되었다. 그 계곡이 워낙 깊어서 옛날에는 호랑이도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어온 것이다. 만일 그 당시에 자주 거론된 무장공비가 있다면 그 계곡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상상이 되는 곳이다. 좀 더 일찍 출발해서 밝은 낮에 갈 것을 후회하면서 종종걸음을 가고 있었다.

그때 노인의 기침을 크게 했다. 노인은 늘 천식이 있어서 고생했다.

달도 없는 밤에 유동골을 지나던 그분은 너무나 놀라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머리카락이 솟구칠 정도의 긴장과 무서움이 있던 차에 기침 소리에 일순 정신을 놓았다고 한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생각 해보니 과수원에 노인이 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그분은 그 뒷날에 그것도 자랑인지, 놀라서 자빠진 것이 추억거리인지, 이야기하고 다녔다.


노인은 일도 부지런히 했지만 남보다 앞서서 무엇을 하려고 했고, 누구보다도 먼저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했다. 과수원은 그때 그 지역에서는 거의 없었다. 수익은 별로 많지는 않았지만 남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하려고 했다. 복숭아밭도 거의 없었지만, 특히 사과는 거의 하지 않던 때이다. 너무 일교차가 심한 곳이지만, 사과를 처음으로 시작을 한 것이다. 지금은 사과를 많이 하고 있다. 일교차가 심해서 아주 좋은 양질의 사과가 재배되고 있는 곳이다.


여름날에는 온종일 그 높은 원두막에 앉아서 윗마을 쪽으로 올라가는 내려가는 사람을 다 지켜보았다. 노인은 밤이면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과 인생의 마무리를 생각하면서 보냈을 것이다. 본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정리하고서 말없이 원두막에 지냈다. 병원에 한번 가지 않았고,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본인이 큰 병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받아들인 것이다.


노인은 복숭아가 익어가는 긴 여름밤을 홀로 있으면서 무섭거나 외로움보다는 옛날을 회상하면서 조용히 지냈다. 그래도 남겨진 자손들을 위해서 돈 한 푼 안 쓰고, 약 한번 안 지어 먹고 혼자서 과수원 원두막을 지켰다. 누구에게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복숭아밭에서 홀로 지냈다. 마지막 해도 복숭아밭을 다 지키고 마을로 내려오셨다. 그해 겨울에 먼 길을 떠났다.


고향 부근에 살았던 사람은 그 노인의 복숭아밭을 기억한다. 그 밭에 서리해서 기억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래도 서리를 하다가 잡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또 그 부근에 사는 사람들은 그 복숭아가 달고 맛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지금도 그때 그 복숭아 같은 맛있는 것을 먹어 보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다.


유동골 계곡의 입구를 지나면 나이 든 사람들은 무엇인가 없어진 허전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오랜만에 고향에 오면 복숭아밭이 있던 곳이 여기쯤이라고 지나면서 회상하기도 하는 분도 있다. 복숭아밭의 추억이 있는 유동골 계곡에는 지금도 그 입구를 지나면 노인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복숭아밭은 며느리인 엄마가 그 뒤로도 오랫동안 가꾸면서 노인처럼 과수원을 지키기도 했고 손자가 지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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