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
친구들과 앞산으로 올라갔다.
모두가 자기 몸에 맞는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올라가는 것이다. 지게에 낫만 꼽고서 올라가는 것이 ”물거리“를 하러 가는 모양이다. “물거리“는 소나무 외에 낫으로 할 수 있는 잡목을 베어서 단으로 묶어서 지게에 지고 오는 나무이다. 소나무나 가시나무 외에 낫으로 뵐 수 있는 크기의 잡목은 모두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은 잡목은 단단한 싸리나무이다. 이런 잡목을 보통 세단을 해서 지고 오는 것이다.
앞산을 넘으면 싸리나무 같은 좋은 잡목이 많지만, 너무 멀기 때문에 초겨울에는 가까운 곳에서 하다가 겨울이 깊어져서 가까운 곳에 잡목이 없으면 앞산 너머도 가기 시작한다.
아직 중학교에 다니는 또래의 친구들은 앞산 꼭대기로 오르다가 중간쯤에 지게를 놓고 잡목을 하기 시작한다. 서로 많은 곳에서 하려고 빠르게 움직인다. 올라올 때는 힘이 들었지만, 나무를 시작하면 서로 많이 하려고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시간은 빨리 간다. 친구들이 한 짐을 할 때 같이 한 짐을 해야 하므로 정신없이 했다.
한나절이 되면 ”물거리“ 나무를 한 짐씩 해서 지게에 얻져서 지고 나온다. 먼저 나온 친구가 길 좋은 목에서 지게를 놓고 지게 작대기를 받쳐 놓으면 뒤이어서 다른 친구들도 그 옆으로 한 짐씩 받쳐 놓고 말은 안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나무를 비교했다.
한참을 쉬고 나무 짐들이 마을로 내려간다. 멀리서 봐도 나무 짐들이 한 줄로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나무 짐들은 내려오면서 쉬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 오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먼저 온 친구가 가장 좋은 곳에 자리하고 연이어서 지게를 놓고 쉬다가 다시 출발한다. 정신없이 반나절 한 나무이므로 지고 내려오기 때문에 나무 짐은 꽤 무거웠다.
마을에 다 내려와서는 각자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
산에서 출발할 때 간간이 내리던 눈이 집으로 들어갈 무렵에는 상당히 많이 내려서 온통 하얀 세상이 되어 집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무거운 짐을 지고도 내리는 눈을 맞으니까 가벼워지는 것 같고 빨리 지게를 벗고 싶어진다. 눈은 가볍게 춤추듯이 천천히 내리고 바람부지 않은 날씨는 포근하다.
대문을 들어서니까 마당에 걸어 놓은 가마솥에 김이 하얗게 올라오는 것이 내리는 흰 눈과 어울려서 온 마당이 하얗다. 가마솥 아궁이에는 활활 타는 장작의 붉은 불꽃이 온통 흰 세상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엄마가 가마솥을 열어 놓고 이제 막 두부에 간수를 넣은 것 같다. 올라오는 김 속으로 눈들이 가마솥으로 들어간다.
두부가 엉겨지고 있다. 엉겨진 두부는 밑으로 내려앉고 위에는 맑은 촛물이 보인다.
나무를 지게와 함께 나뭇가리 앞에 제쳐 놓고 가마솥으로 뛰어가듯이 갔다. 엉켜진 순두부를 떠먹기 위해서다. 몽글 몽글한 순두부는 약간 쓴맛의 촛물과 함께 먹는 맛이 있었다. 이렇게 먹는 순두부 맛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는 계속 먹으니까 국자를 뺏고는 나중에 두부판에 눌러서 먹으라고 말린다.
눈은 계속 내리고 순두부는 두부판으로 옮겨서 눌러지고 그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놓아 촛물을 빼고 있다. 그 사이에 엄마는 맛있는 간장을 만들고, 눌러진 두부를 칼로 네모나게 자른다. 이때 김 나는 두부를 간장에 찍어 먹는 맛은 그때 먹거리 중에서 제일 맛이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순한 맛이 말로 표현은 못 하고 기억 속에 있는 그 맛이다.
눈이 내리는 날, 솥에서도 흰 김이 올라오고 산에서 나무를 해 내려와 마당에서 엄마가 금방 한 두부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전날 밤에는 친구 집에 놀러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물에 물린 두부콩을 맷돌로 같이 갈자고 한다. 맷돌은 엄마 혼자 돌리기는 힘이 들고 두 사람이 같이 돌려야 수월하게 돌아가면서 이때 엄마는 한 손으로는 두부콩을 맷돌 구멍으로 숟가락으로 떠 넣어야 했다.
놀러 가려는 나를 잡아서 맷돌을 돌리니까 온갖 신경질을 부렸다. 괜히 힘을 써서 어처구니를 빠지게 해서 헝겊으로 감아 다시 박아 쓰기를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엄마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아무리 돌려도 콩은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고 놀러 가지 못해서 짜증이 났다. 오랫동안 그렇게 돌리다가 엄마가 부엌에 간 사이에 도망을 쳐 친구 집으로 놀러 갔다.
아마 그 뒤는 바로 밑에 동생이 돌렸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콩을 거의 갈아 놓았던 것 같다. 그래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엄마는 속만 끓였을 것 같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명절 때나 겨울에 엄마는 손 두부를 했다. 그때마다 그 맛은 늘 그대로였다. 계속 두부를 해서 간수 치는 노하우가 두부의 맛을 유지했을 것 같다. 나중에 며느리가 들어왔을 때도 같이 두부를 했었다. 며느리와 두부 할 때는 맷돌로 갈아서 한 것이 아니라 두부콩을 갈아주는 기계에 가서 콩을 갈아왔다. 그래서 며느리들이 맷돌을 돌리는 지루함을 맛보이지 못한 것이 엄마는 아쉬웠을 것이다. 엄마는 다슬기 알을 까는 것도 며느리들에게 은근히 경쟁을 붙일 정도로 심술도 있었다.
눈이 오면 갓 누른 따뜻한 두부를 짜지 않고 약간 단맛이 도는 양념장에 그냥 찍어 먹던 것이 생각난다. 엄마의 손두부 맛은 아직도 그 맛과 같은 두부를 만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