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생 할머니

by 안종익

<병오생 할머니>

읍내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매일 농사일하던 동네 사람들이 오늘은 이른 아침에 장 보러 집을 나선다. 오일장에 팔 물건들을 이고 지고 하늘목재를 넘으려고 갑골로 들어간다. 큰 고추 포대를 멜빵을 해서 지고 가는 남자도 있고, 보따리를 이고 가는 여자도 있다. 모두가 일찍 가서 장을 보고 다시 오후에 하늘목재를 넘어서 돌아온다. 갈 때나 올 때도 모두가 바쁜 종종걸음으로 다닌다.


한 무리 사람들이 오일장을 가고 나서 할머니는 하얀 저고리에 흰 치마를 입고 손에는 미색 보자기를 들고 길을 나선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증손자를 앞세우고 하늘목재를 넘으러 간다. 그렇게 빠르게 걷지 않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간다. 할머니 얼굴이나 어린 손자의 얼굴에도 바쁜 기색은 없다.

오늘 읍내에 사는 딸네들 집에 가는 것이다. 하늘목재는 이 부근에서는 가장 높은 재로 오일장이나 읍내로 가려면 이 재를 넘어야 한다. 하늘목재는 큰길이 아니라 겨우 두 사람이 지나칠 정도로 난 산길이다. 재 꼭대기까지 갈 때는 계속 오르막을 올라가니 숨이 차고 다시 밑으로 내려갈 때는 너무 급경사여서 힘든 산길이다. 오일장 날은 이 재에 사람이 꽤 많이 다닌다. 내려가면 읍내에 들어가는 비포장도로에 버스가 다니지만, 돈이 아까워서 별로 타지는 않는다. 할머니와 증손자도 하늘목재를 넘어서 읍내까지 걸어갔다.


읍내는 시집간 할머니 딸이 세 명 모두 살고 있다.

첫 딸은 살림이 넉넉지 않고 아이도 많아서 읍내에 가도 머물지 않고, 막내는 보통 살지만, 거기도 가지 않고 주로 둘째 딸 집에 간다. 둘째 딸 집에는 시어머니가 있어서 눈치가 보이지만 그래도 사는 것이 여유가 있어서 그곳에 주로 간다. 둘째 딸 집도 오래 있으면 시어머니가 눈치를 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할머니가 오는 날에는 딸들이 모두 둘째 딸 집으로 모인다. 오랜만에 온 엄마를 보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딸들도 할머니처럼 말이 많지 않고 주위에 인심을 얻어 살고 있다. 고향 마을에는 아들도 있고 친척도 많지만, 그래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할머니와 세 딸이다.


할머니는 흰색 저고리에 흰 치마를 깨끗하게 입고서 머리를 늘 정갈하게 빗어 비녀를 한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한결같이 흰옷을 입었다. 1906년에 태어난 할머니는 병오생 말띠로 사주가 세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할머니의 얼굴이나 느긋한 태도는 순하게 보이고 힘들게 산 표정이 전혀 없다.

할머니 아들도 병오생으로 동갑이다. 모자가 같은 병오생이지만 그 당시는 별로 특이하지는 않았다. 아들이 없어서 조카를 양자로 들인 것이다. 세 딸을 출가시키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지금은 동갑내기 아들과 같이 사는 것이다.


평생 흰옷을 깨끗하게 입으시고 정갈하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방안을 깨끗이 쓸어 놓고 세수를 한다. 그러고는 저녁까지 아프지 않으면 눕는 일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간 적도 없고 남을 속인 적도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흉도 거의 보지 않았다.


할머니도 아들을 낳기 위해서 자식을 12명이나 낳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아들도 있었고, 아들 한 명은 철이 들었을 때 죽었다고 한다. 끝내 겨우 딸 세 명만 살고 나머지는 잃은 것이다. 농사하면서 할아버지와 같이 살다가 세 딸을 출가시키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으니까 양자를 들인 집으로 가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양자를 간 집에 장손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 장손은 집안에 기둥이었고 할머니에게도 잘하던 손자였다. 장손이 죽으니까 집에서 할머니는 눈치가 보였다. 박복한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며느리도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갔다. 이제는 과부가 된 손자며느리와 같이 살아야 했다. 그러고 나중에는 양자 든 아들마저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순서대로 저세상을 가야 하는데, 많은 사람을 앞세운 할머니의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주어진 수명을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젊어서 고향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강원도에 가서 화전민으로 살면서 어렵게 돈을 모아서 고향에 돌아와 논밭을 사서 작은 초가집을 짓고 살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평생을 농사하면서 할아버지와 한 번도 큰소리 내지 않고 정 있게 살았다. 음식 솜씨가 있어서 주변에 잔치하는 집으로 음식 하러 불려 다니기도 하고 주변 친척들에게 바느질이나 어려운 집안일은 모두 할머니에게 물어 왔다. 그렇게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세월은 흘러 주변은 다 모두 떠나고 할머니만 남았다.


나이 들어서는 양자로 들인 증손자와 오랫동안 객지에서 학교 하러 간 곳에서 밥을 해 주면서 살았다. 나선 곳에서 철없는 증손자와 재미없이 외롭게 살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손자며느리와 같이 살았다.

그래도 딸들이 마음이 좋고 사위들이 좋아서 딸네 집에 자주 가기도 했지만, 어디 한 곳에 정을 붙일 데 없는 할머니였다.

종일 혼자 있어도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조용히 방에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늘 혼자 있는 방에서도 눕지 않고 꼿꼿이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말없이 보낸다. 마치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수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그래도 가끔 오는 증손자들이 반갑고 잘 되기를 늘 바랐을 것이다.

외롭고 변화 없는 시간이지만, 늘 아침이면 세수하고 주변을 정갈하게 정리하고 난 다음에 앉아서 지냈다. 간혹 바깥으로 나오면 사람들은 머리만 백발이 되고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새벽 날 꿈속에서 증손자가 사는 먼 도시 독신료에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다. 깜짝 놀란 증손자는 반갑기도 하고 놀라서 할머니를 맞이했다. 할머니의 차림은 평소에 즐겨 입던 흰옷을 입고 편안히 웃고 있었다. 증손자는 할머니가 서울에 한 번도 올라온 적이 없는데, “어떻게 여길 찾아왔느냐?"라고 물었고, “데려다준 사람이 누구였냐"라고 물었다. 그렇게 반가운 할머니와 재미나게 이야기하다가 잠에서 깨었다.

일어나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할머니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프면서 증손자 생각을 한 것이다. 생각한 그 마음이 증손자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 뒤로도 몇 년을 더 사시다가 병원에 한 번도 안 가시고 조용히 돌아가셨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잊히지만 그래도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언젠가는 잊히지만 더 오래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병오생 할머니가 곡절이 많지만 여러 사람에게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이다.

증손자가 아직도 잊지 못하고 따뜻한 할머니로 기억하는 병오생 할머니는 그래도 잘 사시다가 가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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