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했던 추석날 아침

by 안종익


<분주했던 추석날 아침>

추석날 아침에 옆집에 사는 담뱃집 형님이 시끄럽다. 성짓골 산소 벌초하러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성짓골 산소는 험하고 멀기 때문에 서로 가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다가 마지막에는 집에서 순서가 늦은 막내들이 그 산소에 벌초하러 나선다. 형들은 가까운 곳으로 벌초하러 가기 때문에 멀고 높은 산에 있는 산소는 주로 막내들이 간다. 평소보다도 명절에 집안들이 모이면 순서와 항렬이 암묵적으로 지켜진다. 이렇게 추석 아침이면 떠들썩하게 모여서 집안이 함께 벌초하던 때가 먼일은 아닌데, 한 세대가 지나니까 이제는 자기 직계만 벌초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그렇게 벌초할 때가 친척들이 왕래가 잦고 친하게 지내던 때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담뱃집 형님도 더 이상 추석에 떠들지 않아도 되었다. 각자가 자기 직계 산소만 벌초했기 때문이었다.


조상들이 묻힌 묘를 보통 일 년에 한 번 정도 벌초를 하면서 관리하지만, 죽은 조상에 대한 제사는 오래전에는 벼슬에 따라서 고조부까지 지내는 집안도 있고, 어떤 벼슬은 증조부까지 지내도록 하고 평민은 조부까지만 지내도록 조선 시대 경국대전에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집안이나 지역에 따라 제사의 숫자나 날짜가 달라지기도 했지만, 조선 말에는 보통 제사를 고조부까지 지냈고, 최근에는 조부까지 제사를 지내는 가정의례 준칙이 나오기도 했다.


불과 반세기 전에는 보통 집에서는 고조부까지 조상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제사와 추석이나 설날 지내는 차례가 있었고, 그리고 산소 관리는 벌초한 다음에 추수한 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해 산소에 가서 묘사를 지냈다.

그러던 풍습이 언제부터인지 산소 벌초를 하면서 음식을 가지고 가서 묘사를 지내는 것으로 한 단계 간소화하더니, 추석날 차례를 집에서 지내지 않고 산소에 가서 벌초하면서 음식을 차려놓고 차례 겸 묘사를 지내는 것으로 세 단계를 한 번에 다 하는 것이다. 물론 집안마다 차이는 있다.


예전 추석에는 가까운 집안들이 모여 조상 산소에 벌초도 하고 차례도 지내니까, 추석만큼은 고향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이날이 가까운 친척들을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안부도 묻고, 집안 소식도 공유하면서 서로 간에 친교 하는 시간이면서 고향과 조상님들을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친척뿐만 아니라 같은 동네에 살던 사람도 만날 수 있는 날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추석에는 많은 사람이 고향을 다녀갔다.


지금도 추석에 모여서 차례를 지내고 조상 산소에 같이 가는 집안들도 있지만, 이제 추석은 대체로 형제끼리만 부모님을 모시고 보낸다. 추석이라고 해서 고향에 오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 온다고 해도 추석날보다는 차가 밀리지 않는 그 전에 와서 벌초하고 가는 것이다. 이제는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집도 드물다. 아직도 조상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으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나 가문이 있지만, 그것도 지금 노인 세대가 돌아가시면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 산소에 직접 벌초를 하고 가는 집안은 그래도 성의가 있는 사람이고, 많은 사람이 벌초를 대행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세이지만, 일부는 벌초하지 않아 산소가 다시 산으로 된 경우도 늘어간다.

벌초는 보통 장손이 하도록 관습적으로 내려왔다. 그 장손이 책임감이 없거나 형편이 어려우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장손이 아닌 다른 형제 집안에서 하기도 하지만 책임감도 없고 자기가 할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얼마 안 가서 그 산소는 산이 되는 것이다.

지금 벌초하러 다니는 세대가 돌아가시면 산소 관리가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는 산소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못 가는 경우, 벌초하러 갈 자손이 없어서 못 가는 경우, 여러 가지 이유로 산속의 조상 산소는 벌초하지 않을 것 같다. 그때 벌초를 하지 않았다고 흉볼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 돌아가시면 산소를 만들거나 흔적을 남기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것이다. 일단

산소를 쓸 땅을 마련하기 힘들고 관리하기 어려워 화장해서 수목장이나 산천에 뿌릴 것이다. 조금 성의가 있으면 납골당에 모시거나 비석 위주의 가족 공동묘지를 조성할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장례 문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특별한 집안이나 고집이 있는 몇 집안을 빼고는 산에 매장하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 산에 매장되어 있는 조상 산소에 관해 관심은 점점 없어질 것이다. 가장 가까운 부모님도 자연에 뿌려서 산소가 없는데, 보지 못한 조상의 산소를 찾아서 관리하려는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다.


제사의 경우도 차례와 돌아가신 전날에 지내는 기제사가 있었다. 그리고 산소에 가서 지내는 묘사가 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안 지내는 집안도 있고, 어떤 집안은 벌써 차례, 기제사, 묘사를 일 년에 한 번만 마련하는데, 그것도 고조부까지 모두 함께 모시는 것이다. 가장 중심이 되는 조상 제삿날에 나머지 조상들의 제상도 같이 차리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이면 되는 것이다. 그것도 이제는 자손들이 여러 곳에서 직장을 다니니까, 가장 모이기 쉬운 추석 전날에 모든 조상의 제상을 차리는 집안이 늘어 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간소화하는 것도 조상님에 대한 애착이 있는 집안에서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제사 자체를 하지 않는 집안이 늘어간다. 이제는 조상님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가문의 뼈대를 거론할 사회 분위기는 아니다. 가풍이 있는 집안이나 이름난 조상을 배출한 가문에서는 앞으로도 제사나 성묘를 고수할 것이다. 그것도 수십 년이 지나면 계속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분주하던 추석날 아침에 벌초 가는 일도 마지막에는 엄마가 정리하기도 했다. 조상을 섬겨야 한다는 애착이 누구보다 있어서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남편을 위해서 일 년간 초하루 보름 아침에 음식을 마련해서 제사 지내던 엄마이지만, 어느 날 교회에 나가고부터는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살아오는 동안에 여러 잡신 때문에 고생해서 그런지, 모든 것을 잊고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인지 교회에 다니고는 간편하게 정리했다.

추석날 아침도 바쁘지 않았고 조용한 추석날 아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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