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하는 대화>
엄마는 병상에 있으면서도 늘 고향으로 다시 갈 수 있다는 희망은 놓지 않고 계셨는 것 같다.
억지로도 음식을 드시는 것은 그런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희망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다.
말을 못 하니까 글로서 대신했다. 내가 가면 연필로 쓴 것을 늘 보여 주었다. 처음에는 몇 자 알아보았지만, 나중에는 글씨도 되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눈이나 입 모양으로 말씀하셨는데 나는 알아먹지 못했지만, 여동생은 알아듣는 것 같았다.
엄마의 병이 깊어져 오늘이나 내일 운명하실 것 같아서 자주 엄마를 보러 가는 여동생과 같이 어렵게 원장실에서 특별면회를 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계셔서 몸에는 살이 거의 빠지고 눈조차 뜨기 힘들어하셨다. 말이나 어떤 것으로도 대화가 되지 않으니까 눈을 뜨셨을 때 표정만 보는 것이다.
엄마는 잡은 손에는 아직 힘은 있었지만, 눈은 좀처럼 뜨지 않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무엇인가 회상하시는 듯하다.
한참 뒤에 조용히 눈을 뜨시고는 무엇인가 힘들게 말씀하려고 하시는 것 같다.
자주 와 본 여동생은 엄마와 눈으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못 알아들었는데 여동생은 고향 집을 이야기하더니, 나중에는 장롱 위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자 엄마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그리고는 무엇이 있느냐고 묻고는 ”돈이냐“ 고 물을 때는 반응이 없다가 나중에 ”사진이냐“고 물으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자주 와 본 여동생과 눈으로 대화를 했다.
장롱 위에는 엄마 사진이 있었다.
엄마의 영정 사진이 장롱 위에 보관되어 있어서 엄마가 돌아가시면 영정 사진이 그곳에 있으니까 잊지 말라는 말이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엄마는 정신이 있는 것이다.
여동생이 다시 엄마의 표정을 보더니 엄마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하신 것 같다고 말을 할 때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났다. 엄마의 손을 다시 포근히 잡아 드리면서 엄마를 보낼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감기 전염병만 아니면 엄마는 보고 싶은 자식들을 다 보면서 눈으로라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데, 이렇게 제한된 시간을 겨우 갖는 것이 섭섭할 것이다. 비록 말은 못 해도 표정으로 자식들과 마지막은 충분한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을 느낄 때 전염병이 야속하다. 그렇게 육 남매를 모두 만나서 눈으로 인사라도 하고 떠나면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후련할까 생각하니까 한없이 아쉽다.
엄마는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고향 집 미련도 이제는 버린 것 같고, 살아온 모든 애증도 내려놓고 멀리 떠나실 준비를 하신 것 같다.
먼저 간 남편도 생각나고 자식들이 커 가면서 즐거웠던 일도 생각날 것이다. 엄마도 자기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웃음 지었을 것이고, 그렇게 아프게 했던 병도 이제 엄마는 아프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남아 있는 자식들이 행복하게 살길 바라면서 이제 떠날 준비를 끝내신 것 같다. 눈을 감은 엄마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깃들고 숨소리도 고르다.
조용히 엄마의 손을 다시 잡아드렸다.
이제는 엄마에 대한 바람은 하나도 없다.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동안에 고생하셨고 고맙습니다.
잘해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만, 나중에는 더 아쉬움과 후회가 오리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이제 마음을 정리한 듯한 엄마의 얼굴에는 눈을 감고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는 듯하다.
아프고 힘들었던 일들은 잊어버리고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을 떠 올리는 듯하다. 엄마의 어린 시절에 동무들과 놀던 옛 동산이 떠 오르고, 시집오던 시절의 그 설렘도 기억이 날 것이다. 자식들을 키워서 잘 커가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고향 오는 손자들을 환하게 웃으면서 맞이하던 일들도 스쳐 갈 것이다. 새색시 시절에 봄날 시집에 오던 날처럼 가슴 설레면서 보고 싶은 얼굴들이 있는 곳으로 웃으면서 떠나는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