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야 할 사람들>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살면서 그 사람에게는 가장 큰 일이며, 주변에 같이 살아온 사람에게도 특별한 일에 해당한다. 또 가장 큰 이별이기 때문에 그동안 인연 있었던 사람들과 만날 수 있으면 만나야 하고, 그런 만남은 따로 시간을 낼 필요도 있다.
이 세상에서 만난 것에 대한 인연을 생각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단순한 작별 인사뿐만 아니라, 풀어야 일이 있으면 풀고, 전달하지 못한 마음은 전해야 한다. 그런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이치이고 순수한 인간적인 모습일 것이다.
우리의 이별 중에 가장 마음이 아프고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이 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다. 우리가 살면서 다툼도 있고 억울한 일도 많다. 그로 인해서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서로 감정이 나빠져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어지기도 한다. 돈으로 인해서 불만이 있는 경우는 그 부채를 갚으면 끝난다고 하고, 그 외에 아무리 관계가 나빠도 상대가 죽으면 용서가 되거나 맺힌 것이 풀린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처럼 죽는다는 것은 보통의 이별과는 차원이 다른 이별이다. 옛날에는 보통 집에서 임종했기 때문에 볼 사람은 다 보고 떠났다. 멀리 사는 친척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돌아가시기 전에 와서 보고 가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슬프지만 그래도 떠나기 전에 마음을 미리 정리하는 것이다.
예전엔 임종을 못 본 자식은 불효라고 생각했고, 그 자식은 평생의 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는 부모의 임종을 보는 것이 효도의 필수였다.
요즈음은 보통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지만, 아직도 친척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찾아오고, 살던 집은 아니지만, 마지막에는 가족들이 모여서 보내드리고 있다. 그래도 본인이 살던 집이나 마을에서 돌아가시던 옛날을 생각하면 아쉬움과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
자기 몸을 스스로 추스르지 못하면 병원이나 요양원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자식들이 모두 직장에 나가야 하니까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거동이 불편하면 집에서 혼자 두는 것보다 요양 시설에 모시는 것이 보편화 되었고 여러 가지 제도적으로도 많이 지원되고 있다.
그것이 추세이니까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흉이 되거나 다른 사람의 이목이 의식할 필요가 없는 시대이다. 아직도 시설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노인분들이 있지만, 이제는 대부분 노인은 거동이 불편하면 가야 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병원에 오래 계시던 분에게 사람이 많이 찾아오면 임종이 가까워진 것이다. 지금도 여유가 있는 가정이나 움직일 수 있는 분은 임종 때가 되면 살던 집으로 돌아가서 마지막을 보내기는 한다.
임종은 그곳이 어디든지 손도 잡아주고, 그동안 못다 한 말도 해야 하고, 같이 고생한 일도 상기하면서 고맙다는 인사와 사랑한다는 말도 해야 한다. 가는 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모두 전해야 하고 가시는 분도 못다 한 말은 하고 떠나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감기 전염병으로 병원이 봉쇄된 상태이다. 엄마는 이제 몸이 나빠져서 돌아가실 날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면회가 안 되니까 만날 수가 없어 마음만 답답하다.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모든 사람에게 마지막 가는 길은 서로 보면서 작별 인사를 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감기 전염병으로 병원이나 요양병원의 면회를 금했지만, 형편이 좋은 사람은 혼자 면회할 수 있는 독방으로 갈 수도 있고, 집으로 모시고 가서 할 수도 있다. 그런 형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만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면회를 금지하는 명분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형편이 안되는 당사자는 억울하게 보고 싶은 사람도 못 보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임종에 대한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한다. 임종은 개인으로 봐서는 아주 중요한 시점이고 가족과 작별을 나누어야 하는 것은 인간이 살다가 죽으면서 누려야 할 권리일 수도 있다.
전염병으로 면회가 금지되는 경우에도 임종이 가까운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전염병 시국에서도 제도적으로 임종이 임박한 경우는 방역이 되는 병실을 따로 마련해서 가족과는 면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모친은 평생을 고생하면서 살다가 마지막까지 아쉬움이 남는 이별을 되니까 너무나 안타깝다.
얼마나 자식들이 보고 싶을까? 자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 못 보고 떠난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알고 계셔도 말씀은 못 하시니까 마음만 아프고,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보고 싶을까?
오랫동안 병원에서 외롭게 지낸 시간이 길었다.
그동안 외로웠지만, 마지막이라도 자식들이 매일 찾아와서 외로움을 덜 느끼면서 가야 하는데, 끝까지 기다리고 외로움 마음으로 가시는 것이다.
문 쪽을 바라보는 모친을 상상하면 가슴이 멘다. 언제 보고 싶은 사람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바라보실 것이다. 그렇게 보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사람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 모친은 인생은 혼자서 왔다가 혼자서 가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계신 것이다. 외로운 것이 인생이긴 하지만 하필이면 본인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아파하실 것이다.
누구나 노년에 가면 혼자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래도 모친은 불쌍하다.
혼자서 그 먼 길을 간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도 매우 위중하면 연락을 준다고 했으니까 그것만은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