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손가락>
여러 날 생각했던 것을 오늘은 실천할 생각이었다.
본인의 마음을 전하려면 표현을 해야 한다. 물론 표현하지 않아도 그냥 넘어갈 일도 있지만, 나중에 그렇게 하지 않아서 후회되는 일이라면 꼭 해야 한다.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고, 좋아하면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야 할 사람에게는 그 말을 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쑥스럽거나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면 힘들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해야 한다. 내가 고맙다는 말을 꼭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병상에 계신 엄마이다. 평소에 고마운 마음은 늘 가슴속에 있었지만, 엄마에게 표현한 적은 없었다.
오랫동안 엄마와 아들로 살아오면서 가장 가까운 관계이고 늘 서로 공동의 관심사를 의논하고 함께 애쓰며 살았다. 고생도 많이 했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오늘까지 힘들게 살았는데, 이제는 너무 병이 깊어 다시 일어나실 것 같지 않아 마음만 아프다. 그래도 아직 병상에서라도 볼 수가 있어서 좋다. 지금은 감기 전염병이 창궐하는 때라서 병원에 계시지만 자주 뵙지를 못한다. 전염병 전파를 차단하고 예방을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아픈 환자로서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병상에서 움직이지 못하지만, 자식들이 오는 낙이라도 있었는데, 면회를 차단하니까 답답하고 외로우실 것이다.
더욱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환자는 기막힌 일이다. 한평생 같이 살던 자식들을 보지 못하고 혼자서 쓸쓸히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홀로 보내는 것이다.
감기 전염병이 다시 창궐하니까 극히 제한적으로 풀렸던 면회가 또 금지되었다.
모친이 음식을 먹지 못한 지가 몇 주 지났다는 소식에 꼭 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원장실에서 특별면회를 요청했다. 예외적이지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물론 철저한 소독과 검사를 하고 난 뒤에 면회가 허용되었다.
여동생과 같이 원장실에서 오래 기다리니까 엄마는 병상에 누워서 간호사가 밀고 들어오셨다.
전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 마른 모습은 작년에 돌아가신 아픈 이모님 모습과 비슷했다. 그래도 뵙기 전에 엄마가 미음을 조금 드셨다는 원장님의 말씀에 약간은 안심되었다.
눈을 감고 계시다가 잠시 후 눈을 뜨셨다.
아직도 정신은 있었다. 나와 여동생을 알아보았다. 그동안 뵐 때마다 마음에 있었지만 못한 말을 오늘은 할 작정이다. 또 모친이 정신이 있어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때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와 팔에는 살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손이 유독 커 보였다. 손을 잡아드렸다. 그리고 말씀을 드렸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다.”, “젊어서 혼자되어서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하셨다”라고 말씀드렸다. 이제는 모든 생각 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라고 말씀드렸다. 그 말만 했는데도 감정이 앞서서 눈물이 났다. 또 “사는데 고생했고 고맙다“고 말을 했다.
이 자리에서도 “엄마 사랑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지는 못했다. 평소에 안 하던 사랑합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 내가 마음속에 있는 말을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이라도 표현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
엄마도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눈가가 촉촉함이 느껴졌다. 옆에 여동생도 “엄마 열심히 살았다." 하면서 울먹인다.
엄마도 눈은 감으셨지만, 표정으로는 자식들에게 ”잘 살아라”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어렵게 눈을 살짝 뜨시더니 힘들게 두 손을 들어서 여섯 손가락을 만드시고는 눈을 다시 감았다. 육 남매에게 남기신 손가락이었다.
육 남매들이 잘 살아 주어서 고맙고, 앞으로 우애 있게 살아 주기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부모와 자식 간에 좋은 인연이었다.
말을 못 하시니까 힘들게 손들어 만드신 그 여섯 손가락을 보면서 마음이 한없이 아팠다. 어떤 말보다 여섯 손가락은 깊은 의미와 강한 이별의 메시지로 남았다.
면회 중간에 막내와 영상통화도 하셨다. 처음에는 잘 보다가 나중에는 눈을 감으시는 것을 보았다. 정신은 있지만, 눈조차 뜨기 힘드신 것이다.
모친은 어려운 것도 잘 이겨냈고 힘든 것 억울한 것조차도 잘 견디시고 지금까지 잘 사셨다. 엄마 잘사셨습니다. 그리고 엄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