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기도>
새날이 밝았다. 이 새날이 새해 첫날이다.
엄마는 어제 가셨다. 엄마는 새해에 오는 새날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몸이 아파서 한시라도 편안함을 바랐는지, 그래도 새로운 날을 기다렸는지는 그 마음을 모르겠다.
첫날 아침이 몹시도 추웠다. 내일 장례식을 치르기 때문에 오늘 하루 문상객을 받기로 했다.
엄마는 교회 권사이시기 때문에 모든 장례예식은 기독교식으로 하기로 했다. 교회식으로 하면 임종 시에 임종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감기 전염병과 사전에 준비가 되지 않아서 임종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그래도 임종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해서 어제 못 드린 예배를 아침에 하기로 했다. 이 임종 예배는 막내아들이 다니는 교회에서 와 예배를 드렸다. 고인은 이제 아픔에서 벗어나서 편안히 천국에 가시라는 내용이었다. 엄마의 입관은 10시에 거행되었다. 모든 자식과 그에 딸린 손자 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했다. 오랜 병으로 몸이 많이 말라 있었다.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고 당당했던 체구는 왜소하게 변해 있었다. 관을 닫기 전에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모친에게 한마디씩 했다. 모두가 고생하셨고 이제는 아프지 않고 편안히 쉬시라는 말을 전했지만, 모친에 대한 마음은 아쉽고 감사함과 잘해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이제 영원히 돌아가신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들이었다.
이어서 입관 예배가 장례시장에서 거행되었다. 이 입관 예배는 막내딸의 교회에서 와서 했다. 멀리 용인에서 오신 것이다. 영안실에서 막 입관을 끝내고 올라온 뒤라서 영정 사진을 보면서 자식들은 더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입관 예배에서도 고인은 고통을 벗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서 편안히 쉬시라는 말과 끝까지 장례식이 무사히 끝나도록 바라는 내용이었다. 교인들은 이런 장례식에 서로 도와주고 친교를 하면서 신앙심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문상객이 감기 전염병과 한 해가 시작하는 초하룻날이어서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올 사람은 다 온 것 같았다. 형제들이 많아서 각자가 자기의 주소로 부고를 알렸다. 나중에 본인들이 그분들에게 감사의 답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서로 의논하고 상식적인 생각으로 진행했고 장례에 드는 비용도 공평하게 했기 때문에 형제들의 불만은 없었다. 화환은 많이 들어와서 놓을 자리가 모자라 식당 옆의 창문 끝까지 놓였다.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손자 손녀들도 자기가 할 역할을 잘했다. 각자가 역할을 분담해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해서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모두가 돌아가신 할머니가 좋은 곳에 가시라는 뜻일 것이다.
오후가 되어서는 예정에 없던 위로 예배를 세 번이나 드렸다. 예배를 많이 드리면 좋은 곳으로 가시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편했다. 먼저 둘째 딸 교회에서 와서 예배를 드렸다. 그 교회의 목사님과 신도들이 많이 와서 엄마를 위한 기도와 위로의 말을 했다. 다음으로 서울에 큰 교회 유명한 목사님이 오셨다. 이 목사님은 나이도 연로하신데 일부러 오신 것이다. 평소에 엄마를 잘 알고 있던 목사님이다. 그렇지만 새해 첫날에 감기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에 오신 것은 너무나 이례적이다. 평소에도 이 목사님을 뵙기는 무척 어려운 분이다. 고인을 위해서 전 가족이 앞에서 기도를 해 주셨다. 그리고 엄마의 신앙심과 우리 조부모님도 언급을 해 주시면서 우리 가문과의 목사님과의 관계도 말씀하셨다. 서울 큰 교회 목사님이 가시고 또 목사님 한 분이 오셨다. 큰 교회 목사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고 만나러 오셨다가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이 목사님도 모친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처음 보는 목사님이지만 엄마를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가셨다.
엄마는 권사님이고 그동안 교회에 열심히 잘 다녔으니까 천국에 가셨을 것이다. 엄마의 신앙은 윗대가 잡신을 믿는 분위기에서 교회에 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어서 잡신을 멀리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가신 것이다. 할머니가 무당을 불러서 굿하는 것에 신물이 났었다. 그렇게 교회에 나간 것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나갔다. 그전에는 엄두도 못 내는 집안 분위기였다. 교회에 나가니까 정신도 맑아지고 삶도 많이 단순해졌을 것이다. 그 신앙의 핵심은 자식들을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늘 교회나 집에서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 자식 중에 누구는 어떻게 잘 되게 해 주시고, 또 누구의 무엇은 잘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본인을 위한 것보다 자식을 위한 기도를 주로 했다. 그런 기도가 통했는지 자식들이 별일 없이 잘살고 있다. 정성을 모아서 하는 엄마의 기도는 엄마의 마음처럼 자식들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고 열심히 살도록 인도한 것이다.
저녁은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일찍 출발하기 위해서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아침 5시부터 모두 일어나 준비를 했다. 이날도 몹시 추웠다. 올해 들어서 가장 추운 날이었다. 추위가 계속 심해지니까 날마다 올해 들어서 가장 추운 날이 되는 것이다. 장지에 땅이 얼어서 매장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추운 날에 문상 오는 분들도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추운 땅속에 묻힐 모친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발인 예배를 준비된 시간에 시작했다. 막내 남동생 교회에서 다시 와서 예배를 드렸다. 이른 아침이지만 목사님과 몇 분 오셨다. 가족 모두가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다. 모두의 마음은 모친에 대한 정과 이별을 슬퍼하면서 천국에 가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예배가 끝나고 장지로 가기 위해서 모친의 영정 사진을 선두로 해서 영안실로 내려갔다. 모친의 관은 운구차에 옮겨지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