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여름 한복>
누가 돌아가시면 평소에 쓰시던 물건을 정리한다.
특히 옷을 태워드리는 경우가 많다. 옷을 태워드리는 것은 돌아가신 분이 입던 옷을 태워서 깨끗이 정리한다는 뜻과 저승에 갈 때 입고 가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마다 달리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저승에 갈 때 입고 가라는 뜻이라면 그 옷을 태워드리는 장소도 산소에 가서 태워드리면 최고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승에 갈 때도 평소에 잘 입고 좋아하던 옷을 태워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 옷은 보통 나들이나 잔칫날에 즐겨 입던 옷일 것이다. 저승에 가면서 나들이옷을 입고 처음 만나는 저승사자에 잘 보이라는 뜻도 내포돼 있을 것 같다.
모친의 옷도 태워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풍습에는 장례를 지내는 날에 태워드린다고 한다. 미처 못 태워드린 옷은 늦어도 삼우 날에는 태워드렸다. 삼우 날 산소에 가서 산소가 잘 되었는지 돌아보면서 옷도 그 자리에서 태워드렸다.
그런데 모친은 삼우 날까지도 옷을 못 태워드렸다. 장례일에는 교회식으로 하니까 생각을 하지 못했고 삼우 날도 별다른 생각도 없이 보냈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고 토요일에 고향에 갈 시간이 있었다. 여동생과 같이 가기로 했다. 이 여동생이 유일하게 교회에 나가지 않는 동생이다. 이날 모친이 평소에 즐겨 입으시던 옷을 태워드리기로 했다. 산소에 가서 태워드릴까 생각도 했지만, 너무 바람이 불고 산불 염려와 산불감시원의 삼엄한 감시가 있어서 쉽지는 않을 것 같아 사시던 집 마당에서 태워드리기로 했다. 집에서도 화재 위험이 있어서 그냥 태우는 것은 위험했다. 그래서 불꽃이 번지지 않는 화덕을 준비했다.
태울 옷을 가져왔다. 어디서 많이 보던 옷이다. “한복”이었다.
저고리는 희색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미색도 아닌 색이다. 노란빛이 약간 나는 한복이다. 치마는 옅은 초록색 계통의 색깔이다. 겨울 한복이 아니라 여름 한복이었다. 만일 입고 가실 옷이라면 이 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안 좋았다. 여동생이 외투도 같이 태워드리자는 말을 했다. 아마도 추우니까 겉에 입고 가시라는 속 깊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그런데 태워드릴 변변한 외투도 없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홑겹인 여름 한복을 태우는데도 불꽃이 밖으로 넘쳐 나왔다.
외투가 없기도 했지만, 위험해서 태워드리지 못할 것 같았다.
얕은 한복이지만 옷은 오래 탔다. 연기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던 안방 쪽으로 날려갔다. 마치 연기도 모친의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연기가 검은 색깔이 많았다. 한복에 나일론이 많이 들었다는 뜻이다. 옷감이 비싸지 않다는 말이다. 좋은 한복 한 벌 못해 드린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철마다 좋은 옷이 해드린 기억이 없고, 고운 비단 겨울 한복을 태워 드려야 하는데, 얕은 여름옷을 태우는 마음이 무거웠다. 모친은 한평생 좋은 옷 입으시려는 생각이 없으셨고, 옷감에 나일론이 많이 든 것도 값싼 한복을 사신 것이다.
얕은 옷이지만 오랫동안 타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이 집에서 머물고 싶은 모친의 마음과 같았다. 오늘따라 바람이 몹시도 불었다. 그 부는 바람도 타는 불꽃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옷은 다 타고 불꽃은 없었지만, 그 불씨는 계속 남아 있었다. 그 불씨도 다 타도록 여동생이 뒤집어 주기를 여러 번 했다. 그래도 그 불씨는 오랫동안 싸그라 들지 않았다.
돌아서서 방안으로 들어왔다. 안방에 있는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안방에는 모친이 좋아하는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자식들의 결혼사진과 본인이 제주도에 가서 말 타고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외에 모친의 환갑과 칠순 때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모친을 중심에 두고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모두 있는 기념사진이다.
그 사진을 보기 위해서 들어온 것이다. 그 사진을 보았다. 가슴이 아팠다. 예전에도 그 사실을 알았다. 모친의 환갑 사진과 칠순 사진에서 입은 한복이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 봐도 마음이 아프다. 십 년이란 세월 동안에 같은 한복으로 살아온 것이다. 가장 좋은 날 입는 한복이 나일론이 많이 든 한복이었다. 오늘 여동생 태운 한복도 바로 “그 한복”이다.
모친의 생신은 추석 다음 날이다. 이때는 한복을 여름것도 입을 수 있다. 그러니 환갑 때나 칠순 때 여름 한복을 입은 것이다. 나일론 많이 들어서 구김은 적지만 값이 싼 한복을 사 입으신 것이다. 그 한복을 누가 해 드렸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늘 검소해서 입고 멋 내는 것에는 신경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자식들은 전부 출가를 시켰으면 한복이 여러 벌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런데 왜 그렇게 한복이 없었는지 의문이다. 유독 환갑 때와 칠순 때 같은 한복을 입으신 것이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평소에 고운 옷 한 벌 못해 드리고, 무슨 옷을 입고 계신지도 모르고 무심히 산 세월이다. 환갑 때 입은 한복을 칠순 때 다시 입으시는 것을 안 자식이 얼마나 될까? 옷을 태워드리면서 잊었던 아픔이 되살아났다. 그 흔한 한복 한 벌 못해 드린 것이 돌아가시니까 후회로 남았다.
“살아계실 때 잘해야 한다."라는 말이 이제 가슴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