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기다림은 간절함이 함께하는 경우가 있다.
기다림이 좋은 것을 바라는 기대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견디는 것을 아름다운 말로 표현한 것이다. 어릴 때는 기다림이 희망이고 바램인 경우가 많았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런 것이 줄어들면서 의미 없는 기다림이나 아픈 기다림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기다림은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마음이 들기에 그 말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일각이 여삼추란 말이 있다. 기다리는 일각의 시간이 삼 년과 같다는 말이다. 기다림이 간절함을 의미한다. 그런 간절한 기다림은 젊어서 많이 느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기다림도 지루함으로 변하는 것 같다.
엄마의 삶은 늘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엄마의 기다림은 간절하고 애잔한 그리움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었다.
어린 시절 같이 시골 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이 어느 날 도시로 전학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부모님들이 자식에 대한 열정으로 어릴 때 도시로 보내서 더 많이 배우라는 배려였지만 같이 학교 다니던 친구가 떠나고 나면, 남은 친구의 마음은 허전했다. 그때부터 떠난 빈자리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
그 친구들이 방학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같이 놀다가 다시 방학이 끝나면 떠나는 모습은 늘 아쉬웠다. 그래도 방학이 되면 친구가 오기를 기다린 적이 많았다. 그때 멀리 걸어오는 친구가 보이면 그렇게 좋았다. 그 시절 먼 지평선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날이면 공부하러 간 친구의 생각이 간절했다. 순수한 우정의 기다림이고 어른으로 가는 마음의 가슴앓이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기다림의 뒤에는 그리움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는 커가면서 기다림과 그리움을 경험하며 어른이 되었고, 기다림은 결국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의문이망(倚門而望)이란 말은 어머니가 대문에 기대어 서서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말로서 우리 엄마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군에 간 아들들이 보고 싶어서 휴가 올 날만 기다리던 엄마의 마음이 그리움보다는 안타까운 기다림이었다. 나이 든 엄마가 명절에 자식들이 오기를 날마다 기다리면서, 그래도 자식들이 좋아하는 것을 준비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명절 전날에는 아침부터 언제 오나 담 너머로 고개가 돌아가는 것은 엄마 마음이 온통 기다림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문 앞에 나가서 자식들이 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때가 기다림의 절정이다.
엄마가 온종일 대문만 바라보거나 대문 밖에 서성이기 때문에 자식들은 언제 가는지 말하지 않고 갑자기 가기도 했다. 아무리 말을 안 해도 엄마는 자식들이 언제쯤 오는지 느낌으로 알았다.
우리가 사는 것도 기다림이다. 마지막인 죽음을 기다리는 중인 것이다. 죽음 쪽에서 보면 우리가 그쪽으로 가는 중이다. 추운 겨울에 우리는 봄을 기다리면서 겨울을 보내는 것이다. 긴 기다림 다음에 오는 봄은 우리에게 희망과 활력을 준다.
병과 싸우는 사람이나 나이 많은 노인들도 추운 겨울을 견디면서 따뜻하고 병이 좋아질 것 같은 봄을 기다리면서 보낸다. 엄마도 그런 봄을 기다리다가 봄이 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런 분 중에 막상 봄이 오면 이 세상을 떠나는 분이 많다. 기다린 봄이 오면 떠나는 아픔을 맛보아야 한다. 기다림이 이별과 가까운 이웃이다.
만일 기다림이 지칠 정도라면 우리는 마음을 달리 먹어야 한다. 기다리지 말고 맞이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대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대상이 아니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두고 살아보는 것이다.
보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고, 가볼 수 없는 곳이라면 보고 싶다고 연락이라도 해서 본인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운 부모님이나 친척이 있으면 역시 가서 뵙고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성이 그리우면 용기를 내어서 마음을 고백하면서 내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 상대가 내 마음 같지는 않다면 기다림을 멈추어야 한다.
병상에서 자식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엄마가 있었다.
오랜 시간 홀로 기다리면서 오늘 오려나, 내일 오려나 기다리던 엄마가 자식을 보면 얼굴에 화색이 돌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홀로 누워서 자식의 얼굴을 기다리다가 나중에 눈을 뜰 힘이 없어서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를 기다렸을 것이다.
기다림의 대상이 아직 있다면 행복한 시절인 것이다. 그런 기다림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사라지는 것 같다. 기다림이 있을 때 열심히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엄마가 병상에서라도 우리를 기다릴 때가 그립다. 이제는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계셔도 우리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는 자식들을 그렇게 반기던 엄마는 감기 전염병 창궐로 오지 못하는 자식들을 기다리면서 절망의 눈물을 지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