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 스카이웨이

by 안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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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들 강아지 한 마리가 내리막길을 내려온다.

한참 뒤에는 그 강아지를 쫓아서 할머니 한 분이 걸음걸이를 빨리해서 내려오고 있다. 아침 운동으로 팔각정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다. 할머니가 먼저 강아지와 같이 내려오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승용차 한 대가 뒤따라 내려온다. 그 승용차에는 할아버지가 타고 있다.

그렇게 날마다 두 노인들은 승용차를 타고 북악 스카이웨이 가파른 오르막까지 올라가서는 그곳에서 승용차를 세워 두고, 팔각정까지 가서 건너 보이는 북한산 보현봉을 바라보면서 한참 동안 체조나 맨손 운동을 한다. 그러고는 다시 승용차까지 와서 할머니는 강아지와 함께 걸어서 내려오고, 할아버지는 승용차로 천천히 할머니 뒤를 따라 내려온다. 이것이 두 노인들이 수 십 년 해오던 아침 운동이다.


강아지와 할머니가 내려가고 한참을 지냈지만, 승용차가 따라 내려오지 않는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그래도 승용차가 곧 내려올 것 같아 계속 관심을 두고 걸어 올라갔다. 평소 늘 세워 두던 오르막 막바지 도로까지 와도 승용차를 보지 못했다. 물론 주차된 차도 없었다.

오늘 할아버지는 운동하러 오지 않은 것 같다. 평소에도 큰 키에 허리가 굽어 있으면서 걷는 것이 할머니보다 빠르지도 않고 쉽게 힘들어하는 것 같았는데, 아마 몸이 안 좋아서 오늘 운동을 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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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를 몇 개 돌아서면 팔각정이 보이는 곳이다.

돈암동 대단위 아파트에 사는 나이 든 아주머니가 겨울이지만, 모자 창만 있는 여름 모자를 쓰고 혼자서 내려온다. 목소리가 크고 너무 자기주장이 강해서 주위 사람과 어울리면 혼자서 떠드는 성격이라 사람들이 피하는 듯하다.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면 이 아주머니는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로 시끄럽다.

아침 운동을 하면 보통 늘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과 같이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이 아주머니는 외톨이가 된 것처럼 혼자서 내려오고 있다. 그래도 십 년 이상 이 스카이웨이 아침 운동길에 늘 만나는 아주머니여서 오랜만에 보아도 알아보았다. 이 아주머니는 체질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살이 붙어서 뚱뚱할 것 같은 체형이지만, 매일 아침에 운동을 하니까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것 같다.


별난 아주머니가 지나가고 한참 뒤에 아주머니 두 분과 남자 한 분이 아주머니들 뒤에 붙어서 내려오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도 북악 스카이웨이 아침 운동에 빠지지 않은 분들이다. 이 세분은 수년 전에는 앞에 간 별난 아주머니와 같이 걸었지만, 지금은 세분만 다니신다. 아마도 앞에 아주머니와 같이 다니다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거나 같이 다니고 싶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서로 떨어져서 아침 운동을 하는 것이다. 앞에 가는 아주머니 두 분은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십여 년 이상 매일 수다 떨면서 다니신다. 뒤에 따르는 남자는 두 아주머니 중에 한 분의 남편이 될 것 같다. 늘 아무 말 없이 뒤만 따라다닌다.


팔각정에 올라서니 할머니 같은 아주머니가 두 손 모아서 멀리 건너 보이는 사모바위를 향해서 연신 고개를 숙인다. 무엇인가 정성을 다해 빌고 있는 것이다. 십여 년 전에도 팔각정에 올라오면 사모바위 방향으로 이렇게 간절히 빌고 있었다. 이렇게 한참을 하고는 다시 올라온 길을 돌아간다.

걷는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허리를 꼬꼿이 세워서 흔들림 없이 간다. 십여 년 전에 처음 봤을 때도 걸음걸이가 전혀 흐트러짐이 없이 걸었다. 그때는 단발머리를 한 중년의 여자분이 바른 자세로 걷은 모습이 매력적이어서 뒤돌아 보기도 했지만, 이 아주머니는 언제나 옆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 다녔다.

늘 혼자서 도도하게 와서 팔각정에서 무엇인가를 빌고는 씩씩하게 내려가던 아주머니가 이제는 할머니에 가깝게 늙어 보인다. 여전히 혼자서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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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 스카이웨이 길에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은 수 십 년이 지나도 오는 사람만 늘 오지만, 그 사람들은 오는 시간도 늘 일정하다. 스카이웨이 길은 가로등이 있어서 계절에 관계없이 같은 시간에 올 수 있는 길이다.

스카이웨이 길은 인왕산에서 팔각정까지 올라와서 내려가는 인왕 스카이웨이 길은 사람들은 거의 드물었고 간혹 몇 명 있던 적도 있지만, 성북동에서 팔각정으로 올라가는 북악 스카이웨이 길은 십여 명 정도가 늘 아침 운동을 하는 코스이다.

이분들은 수십 년을 걸어온 길이라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아침이면 같은 시간에 올라오면 어김없이 어제 본 사람들을 만나는 길이다. 그러는 동안에 서로 같이 걷다가 마음이 맞지 않아서 떨어져 걷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맞아서 늘 같이 다니는 사람도 생기는 길이다.


이른 아침에 스카이웨이로 올라오는 차는 거의 없지만, 드라이브 오는 승용차가 자주 보이면 휴일날이다. 그 승용차들은 이른 아침 드라이브인지, 아직 밤새 놀다가 새벽이 왔는지 모르는 차인지 모르지만, 굉음을 내면서 굽어진 스카이웨이 길을 경주하듯이 달린다. 위험하게 달리는 승용차를 이어서 휴일에는 자전거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스카이웨이 길이다. 자전거들은 팔각정까지 갖은 힘을 다 써서 올라와서는 내려갈 때는 승용차 속도로 내려간다. 그래도 젊은이들이 힘차게 밟아오는 페달에서 힘을 느끼고 청춘이 느껴진다. 라이딩하는 몸에 달라붙은 유니폼에서 건강한 신체가 보이고, 걸어가면서도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눈으로 부러워할 뿐이다. 남자들 사이에 같이 힘차게 밟아 올라가는 여자 라이딩을 볼 때 정말 멋지게 사는 사람들인 것 같다.


팔각정은 예전에 시골에서 서울로 신혼여행 오면 들리는 필수 코스였지만, 지금은 간간이 시골 노인들을 태운 관광차가 보일 뿐이고 올라오는 사람도 많지 않다. 팔각정에는 겨우 편의점 한 곳만 사람들이 붐비고 나머지 가게들은 수시로 주인이 바뀐다. 여러 가지 다양하게 시도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자리를 내놓고 떠난다. 오랜만에 오니까 지금은 자판기들만 가득한 곳이 되어 있다.

스카이웨이는 세월은 흘러서 그 옛날 낭만의 드라이브 코스가 이제는 음식점 배달의 기수들이 간혹 찾아오는 폭주족들이 길이 되면서 한적한 길로 변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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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다른 곳에서 살다가 다시 찾은 북악 스카이웨이는 아직도 십여 년 전에 운동하던 사람들이 아침에 그대로 운동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고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 사이에 스카이웨이 길도, 스카이웨이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도 변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다시 본 사람들이 반갑고 아직도 건강하게 걷고 있지만, 조금은 늙어진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해도 젊어지지 않은 것이고 잠시 늙어가는 속도를 느리게 할 뿐이지만, 그래도 아침 운동은 좋은 것이고 마음에 활력을 주고 몸을 원활하게 움직이게 한다. 북악 스카이웨이 길은 아침 걷기에 무척 좋은 곳이다.


며칠간 강아지를 앞세운 할머니를 보았다.

그 뒤에 승용차가 따라 내려오는 것이 익숙한 모습인데, 승용차는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 혼자 쓸쓸히 걷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제 운동을 못 할 수도 있고, 멀리 떠났을 수도 있다. 남은 할머니와 강아지만 아침에 나온 것이다. 북악 스카이웨이 길 아침에 만나는 사람들은 오늘도 변함없지만, 머지않아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북악 스카이웨이 길은 팔각정까지 오르막이지만 완만한 길이어서 그렇게 힘들지 않고 올라가면 사방이 다 보이는 팔각정이 있다. 산속이라 공기도 다른 곳보다 신선하고, 산새 소리 들리고 청설모들이 나무들을 건너 타고 다니는 것이 보이는 좋은 길이다.

그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은 이 길이 좋은 길이라는 것은 알지만, 걷기에는 아침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십여 년이 지나도 아침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늘어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된다. 스카이웨이 길을 걸으면 사계절이 모두 보이고 시간이 흐르는 것이 보이는 길이다.

내려오는 길에 서서히 날이 밝아 온다. 아직도 가로등이 환하게 불을 밝힌 스카이웨이 길에는 첫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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