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이 있는 썰매장

by 안종익


올겨울이 수년 만에 다른 해보다 춥다고 한다.

보통 겨울이 추워도 삼한 사온이 있어서 견딜만하다고 하는데, 올겨울은 추운 날만 수십일이 계속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추워서 일어나기 싫어지고 밖으로 나가기는 더 싫은 것이다.

그래도 움직여야 한다고 오랫동안 학습되어서 아침이면 운동을 나간다. 도시에서는 아침에 운동 나가면 일찍 운동을 나온 어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추위보다 습관이 먼저인 사람들인 것이다.


도시에 아침은 추운 날에도 모두가 부지런히 시작한다. 모두가 바쁘고 분주하니까 항상 활력이 넘치는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여유 있고 한가로운 기분은 나지 않는 일상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한가함을 즐겨보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바쁜 도시를 벗어나서 조용한 시골이 생각나는 것은 그런 것을 느껴보려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시골에 가면 너무 한가해서 다시 사람들이 분비는 곳이 그리워진다. 마음은 어느 한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하는 것 같다.

그래도 한가하고 여유 있는 시골이 생각나서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정해져 겨울날에 고향으로 향했다.


시골집에 도착하니까 정말 조용한 곳이다. 차가운 바람만 불고 골목에 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추운 날씨에 모두가 집안에서 보내는 것 같다. 오랜만에 온 시골이라서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변한 것이 없는지 살피지만, 그동안 달라진 것은 온 들판이 푸른빛이 없어졌고 아직 덜 녹은 눈들만 쌓여 있다.

사람 다니지 않은 골목길을 지나면서 이집 저집 담 너머로 들여다보면서 걷는다. 그러다가 골목길이 끝나고 마을을 넘어서 뒤 개울 쪽으로 걸어간다. 사실 이곳에 왠지 가고 싶어서 골목길이 끝나도 계속 걸은 것이다. 그곳에는 큰 개울가가 나온다. 이 개울을 여기서는 “이넘애”라고 부른다.


“이넘애”는 고유명사가 된 지명이다. 그 뜻은 “이곳을 넘어서”라는 뜻으로 부르던 것이 이제는 뒤편에 있는 개울가를 지칭하는 말이 된 것이다. 그 말이 원래는 “이 넘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사투리와 결합되어 “이넘애”로 된 말이다.

그 “이넘애”는 깎아내린 것 같은 절벽 밑에는 큰 개울이 흐르고 건너편에는 넓은 농토가 있는 곳이다. 그 절벽 밑에 흐르는 개울은 보를 막아서 큰 강처럼 보인다.

막은 보의 물이 많아서 위 동네 산속에 사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내려와서 이곳을 처음 보고는 하는 말이 “바다”를 봤다고 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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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늘 많은 물이 흐르고, 깊어서 잘 들어가지 못하고 지켜보면서 자란 곳이다. 여름이면 낚시도 하면서 얕은 곳은 멱도 감던 곳이다. 절벽 밑 흐르는 개울은 늘 물이 많아서 천천히 흐르고 묵직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곳은 절벽이 높아서 햇볕이 빨리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음지가 오래 머무는 곳이다. 그런 음지 때문에 다른 곳보다 일찍 얼음이 얼고 봄에는 가장 늦게 얼음이 녹는 곳이다.

이곳에는 얼음이 얼면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판이 된다. 그 얼음판은 아이들이 썰매를 타는 곳이 되고 겨우내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얼음을 타기 위해서는 아이들은 썰매를 만들었다. 여기서는 이 썰매를 “스게또”라고 했다. 집안에 어른들이 만들어준 썰매도 있었지만, 그런 썰매는 드물고 거의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겨울이 되면 아이들은 썰매 만드는 것이 큰일이었다. 썰매는 두 개의 두꺼운 판자 위에 앉을 수 있게 판자를 얻어 못질을 하고 그다음에 밑에 댄 두꺼운 두 개의 판자 밑에 젓가락 굵기의 철사를 구부려서 판자 밑에 못으로 고정시킨다. 이 철사는 얼음에 잘 미끄러지기 때문에 썰매가 가는 것이다. 또 필요한 것은 손으로 얼음을 찍어서 밀어내는 창이 필요하다. 이 창은 굳은 나뭇가지에 대못을 박아서 만든다. 이 창을 만들 때 곤란한 것은 대못의 못대가리를 잘라내야 나무에 박을 수 있기 때문에 못 대가리를 없애는 것이 어려웠다. 그 못대가리를 없애기 위해서 집에서 쓰는 도끼를 사용하다가 도끼날을 망쳐서 어른들에게 혼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든 썰매를 매고 “이넘애”에 오면 동네 아이들이 거의 이곳에서 얼음을 타는 것이다. 넓은 얼음판을 서로 어울려서 그냥 타고 다니는 것만도 그렇게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여기서도 서로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속도를 내지만 그래도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아이들이 더 잘 탔다. 그때 아이들은 스케이트라는 것은 몰랐고 가장 빠른 것이 외발 썰매였다. 외발은 중간 한 곳에만 철판으로 만든 칼날을 박고, 양발로 균형을 잡아서 서서 긴 창으로 가는 썰매이다. 그렇게 온 동네 아이들이 썰매 타러 왔지만 “이넘애” 한쪽 구석만 사용했을 정도로 “이넘애”는 넓은 곳이다. 간혹 누가 빠른지 시합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웃고 떠들고 타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다가 어떤 아이가 가지고 온 성냥으로 얼음가에 불을 놓으면 얼음을 타던 아이들이 주변으로 나뭇가지를 주어와서 모닥불을 만들어 놓고 손을 녹이면서 얼음 타던 곳이 “이넘애”였다.


겨울날 얼음을 타고 손이 얼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 있었다.

겨우 썰매를 창에 끼워서 메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손이 빨갛고, 옷은 얼음에 젖어서 추워서 떨고 들어갔는데, 집안사람들이 야단을 치면서 곧바로 뜨거운 불이나 아랫목에 손을 넣어 주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세수대에 찬물을 받아오라고 하고서는 삼촌이 그 찬물에 손을 넣고 주물러 주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았었다. 아마도 찬물에 손을 풀어주고 나중에 따뜻하게 해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게 해야 동상이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그렇게 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대가족이 같이 살던 때가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그 시절의 일이 기억나는 것은 아직도 마음은 그렇게 나이 들지 않은 기분이다. 인적이 드문 시골이 되었지만, 아직도 옛 생각은 그대로이다. 동네 아이들이 많아서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철마다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겨울에 어울려 놀던 곳이던 “이넘애”도 이제는 보이는 사람이 없고 황량한 얼음판이다. 오늘따라 더 넓어 보이는 얼음판은 얼마 전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다.

이곳에 오면 그때 놀던 아이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무도 없으니까 그 아이들이 모두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진다. 넓은 세상으로 흩어져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되었을 것 같다. 지금 떠오르는 얼굴은 없지만, 온 동네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한쪽에는 모닥불이 피어 있는 머릿속의 광경을 떠 올려 본다.


그 얼음판에는 눈이 덮여 있다. 간간이 부는 바람에 눈이 날리어 얼음이 드러난 곳이 있다. 그 얼음판 위를 옛날에 미끄럽던 얼음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곳에 올라섰다. 그 얼음 위는 예전보다 더 미끄러워서 몸이 자리를 못 잡는다. 그래도 천천히 조심조심 걸어보지만 너무 미끄럽다. 신발이 미끄러울 수 있지만,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해서 일 것이다. 얼음 위에 눈이 덮였지만, “이넘애” 얼음판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얼음 위보다 눈이 있는 곳을 걸어가면서 옛 생각에 잠겨서 높은 절벽도 쳐다보고 멀리 있는 산도 보면서 걸어간다. 이렇게 돌아와서 이곳에서 놀던 옛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면서 변했을 동네 친구들이 보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꿈꾸듯이 친구들이 다시 이 자리에 모인다면 변한 모습을 보면서 서로 반가워서 웃기는 하겠지만, 세월이 무상함을 이야기할 것이다.

다시 돌아오는 골목길에도 지나가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돌아온 집은 아무도 없는 빈집에 찬 기운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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