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속을 걸으니까 가슴까지 시원하게 하는 곳이었다.
곧게 뻗어 한없이 이어지는 넓은 길에 양쪽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서 있고 햇볕도 막아주는 길이었다. 걸으면서 어디에 눈을 두어도 지루하지 않고, 시원하게 나 있는 길이 그렇게 멋지고 걷기에 좋은 길이었다.
그런 길을 끝까지 걷고 싶었지만, 같이 간 일행이 걷기 싫다고 해서 어디까지 걸었는지 기억도 없이 그만 돌아섰다.
그 뒤로도 이 아름다운 길을 다시 걷고 싶고, 내가 걸어 본 길 중에서 가장 좋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려니 길은 걷다가 만 다시 걷고 싶은 길이 되었다.
사려니 길의 아름다움과 다 걷지 못한 아쉬움이 그 길을 늘 마음속에 아름다운 길로 자리하고 있었다.
사려니 길은 제주도의 숨은 비경 중에 하나로 바지람로에서 시작하여 물찻오름과 사려니 오름을 거쳐가는 삼나무가 우거진 한라산 트레킹 숲길이다. 사려니 오름까지 이어지는 숲길이기 때문에 사려니 숲길이라 부린다. “사려니”는 신성한 숲이란 뜻으로 숲길을 걸으면 상쾌한 삼나무 향이 나고 여름에도 숲길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걷기 좋은 곳이다.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 다시 사려니 길을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많은 길을 걸어 봤지만, 이 길은 걸으면 힘들지도 않고 온통 즐거운 마음으로 걸을 것 같은 생각이다. 이 길은 평평한 길이고 곧게 난 길이면서 지나는 곳마다 서 있는 나무들이 제각각 다르면서 햇볕이나 센 바람을 막아주니까 걷기가 수월하고 좋은 길이다. 그러니 주위를 돌아보면서 큰 호흡을 하면서 걸으면 되는 길이다. 등산길이 아니고 걷기 어려운 돌길도 아니고 나무들로 둘러싸인 공기가 맑은 길이다.
그런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는 기회는 즐거움이었다. 다시 걸으면 마음의 힐링이 될 것 같고 다시 최고의 아름다운 길인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길은 제주 내륙에 자리하고 있고 늘 개방되어 있어서 가기만 하면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처음에 갖던 그때만 생각하고 이번에는 겨울에 사려니 길을 찾았다.
버스에서 사려니 길 정류장에 내리니까 울창한 삼나무가 도로 양쪽에 곧게 서 있는 그곳이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 길과 처음 만남은 틀리지 않았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삼나무가 너무 마음을 흥분시켰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시내 도로에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여기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다.
며칠 전에 이곳에 폭설이 내려서 내륙의 울창한 숲에는 아직 녹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일단은 어렵게 다시 찾은 사려니 길이 혹시 통제를 하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조심스럽게 안내소에 들어섰다. 멀리 출입통제라고 쓴 현수막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안내소에서 막지만 않으면 그냥 걸어 보려는 생각으로 걸어갔다.
안내소 직원이 문을 열고 신발에 아이젠을 차고 들어가라고 한다. 출입통제는 사려니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통제하는 것 같다. 사려니 길은 개방시간도 있었다.
아이젠이 없었지만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사려니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 시작을 하는 길은 장비로 눈을 치우고 지나간 자국이 있는 길을 걸었다. 장비로 다져진 곳을 골라서 가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눈길을 걷는 기분이 덜 나는 길이었다.
눈 속에 천미천의 아치 다리도 눈 속에서 혼자 서 있다. 원래 천미천은 건천일 때가 많지만 눈 덮인 개울은 숲속에 그냥 아치 다리만 서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가면 눈 속에 버섯이 피어난 것처럼 보이는 숲이 나온다. 가을에 깊은 산속에 송이버섯이 낙엽을 뚫고 올라온 것처럼 눈을 뚫고서 송이버섯이 올라온 모양을 하고 있다.
길은 계속 이어지면서 낙엽이 떨어진 잡목 길을 간다. 오랜만에 다정한 여인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가고 있다.
숲속 나무 의자는 눈이 소복이 쌓여있고 그곳은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이다.
장비로 눈을 밀고 간 길은 끝나고, 이제부터는 사람이 걸어서 발자국이 만들어 낸 눈길이 나온다.
사람 발자국 길은 넓지 않지만 걷기에 적당하다. 아직 날씨가 추워 눈이 얼어있는 상태라서 다져진 눈 속에 많이 빠지지 않는다.
낙엽이 떨어진 잡목들은 무슨 나무인지 구분이 안되지만, 곧게 난 눈길은 끝없이 뻗어 있다. 눈길을 걸으면서 우거진 숲도 없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간간이 부는 바람에 작은 소리만 내고 있다. 숲길은 내가 생각하던 그 길은 아니다. 더러는 눈밭에 찍힌 짐승 발자국이 보이기는 했지만,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같이 보인다.
눈길을 걸으니까 겨울의 정취는 있지만, 사려니 길의 평평하고 힘들지 않고 걸어갔던 가슴 시원한 그 길은 아니다. 눈길을 간혹 빠지기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하니까 온통 눈이 발에 가 있고, 주변의 경관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간혹 주변을 돌아봐도 잎 떨어진 앙상한 잡목뿐이니까 볼 것도 별로 없다.
겨울 눈길도 매력이 있다고 하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고 푸른 나무들이 싱그러운 숲길을 청정한 공기를 마시면서 편안하게 걷는 사려니 숲길을 상상하고 왔는데, 계절이 맞지 않아 몸과 마음을 치유받으려는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
사려길 숲길을 반 정도 걸어오니까 물찻오름 가는 길이 나온다.
물찻오름 표지석을 지나서 계속 사려길 길을 걷는다. 오늘은 걷는 사람이 아직 몇 사람 보지 못했다. 눈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눈길을 걷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눈길은 힘들고 걷기 어설픈 길이다. 물찻오름을 지나고부터는 기온이 올라가서인지 눈길이 녹는다는 느낌이 온다. 눈이 녹으니까 더 미끄럽고 신고 있는 신발이 젖어 온다. 한참을 걸어가니까 신발이 완전히 젖어서 양말도 축축한 것 같다. 아직도 사려니 길이 자랑하는 삼나무 숲이 나오지 않고 잡목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 잡목들은 여름이나 가을에는 갖가지 우거진 숲을 만들어 아름다운 숲길을 만들지만, 낙엽이 떨어진 잡목은 쓸쓸한 느낌만 준다.
눈길이 이제는 많이 녹아서 자주 미끄러지고 빠진다. 이제 간간이 삼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삼나무 사이로 난 사려길은 멋진 풍광을 보인다. 푸른 삼나무들과 흰 눈이 조화를 이루고 그 사이의 흰 눈길과 위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잘 어울려진 길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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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가 더욱 울창한 곳은 미로 길을 만들어 놓았고, 그 길은 온통 삼나무 숲이다. 미로 길 옆을 지나면 사려니 길도 끝나가는 것 같다. 붉은 오름이 가까워지면서 마지막 길이 나오는 것 같다.
멀리 사려니 길이 끝나는 차단 대가 보인다.
붉은 오름 사려니숲길 입구에 도착해 보니 처음 시작한 것과 같이 도로가 나온다. 날씨가 추워서 젖은 신발과 양말에 신경이 쓰였지만, 숲 입구에 있는 노점상에 김이 올라오는 어묵이 눈에 들어온다. 따끈한 어묵과 뜨거운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받아서 먹으면서 늦은 점심을 대신하고 뜨거운 국물의 몸에 들어가니까 사려니 길을 걸으면서 힘들었던 것을 잊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사려니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걸었을 때 숲이 너무 아름답게 보이고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마음이 들었던 길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사려니 길을 생각하면 가장 아름다운 길이고 다 걷지 못한 길이라서 늘 아쉬움을 갖고 있던 길이다. 어젠가는 다시 걷고 싶은 길이었다.
그런 좋은 마음을 갖고 있던 사려니 길을 다시 걸었다. 다시 한번 최고의 힐링을 느끼면서 잊지 못했던 그 길을 다시 걷는다는 생각에 가슴마저 설렜다.
도착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설경을 보면서 또 다른 경험을 하리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겨울 사려니 길은 다른 계절에 비해서 좋은 풍광을 주지 못했다.
눈길을 걷기도 힘들었고 낙엽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도 그저 그런 길이 되었다. 시원한 바람이 아니라 차가운 눈바람은 힘들었고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바닥을 보면서 걷는 길이었다. 다른 계절의 길은 평평한 바닥에 흙길이 대부분이라 걷기 좋은 길이었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눈길은 울퉁불퉁한 길이었다.
마음속에 늘 아름다운 사려니 길을 계절을 잘못 선택해서 늘 생각하던 그 길이 아니었다. 눈 덮인 길은 어디나 비슷하고 특별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눈이 내려서 쌓인 길은 걷는 것은 눈을 맞으면서 걷는 길과는 다른 것 같다. 사려니 길도 눈이 내리는 날 걸었으면 오늘보다는 좋았을 것이다.
마음속에 아름다웠던 길은 차라리 마음으로 간직하고 가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살면서 하고 싶어도 하지 않으면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아쉬움이 남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