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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Feb 07. 2023

남파랑 길 7일차


어제는 남파랑 길 11코스를 마쳤지만, 시골이라서 숙소가 없어 마산까지 들어가 보냈다. 아침에 일찍 나오는데 교통편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여러 번 갈아타고 마지막에는 택시를 타고 어제 걷기를 마친 곳인 임아 교차로에 도착했다.

임아 교차로에서 직선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는 길은 창포로 가는 길이었다. 창포로 가는 길에서 얼마 가지 않으면 도로 이정표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그 간판을 보면 얼마나 아름다우면 이런 표현으로 미리 알리는지 궁금해지고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다.

길은 바다와 같이 가는 해안 도로 길이다. 이 바다는 창포만으로 바닷가에 포토존을 설치해 놓은 곳이 있다. 이 포토존의 초입에는 “행복이 파도처럼 계속 밀려온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포토존에 아침해가 떠 있는 창포만의 전경이 아름답다.

해안 길을 따라서 가면 창포항이 나오고, 아침의 창포항은 조용하고 한가로운 곳으로 바다의 파도도 잔잔하다.


창포항을 지나서 올라가는 길은 아름답다고 알려준 해안 길이라고 생각이 드는 곳이 나온다. 이 길은 고성으로 넘어가는 동진교와 바다가 어울려서 아름다운 길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동진교 건너편은 고성이라고 환영한다는 문구가 보이지만, 다리를 넘지 않고 해안을 따라 창원 해안 길을 계속 걸어간다. 해안 길을 따라서 걷다가 작은 어촌마을에 정박해 있는 배 위에 흰 개가 지나가는 여행객을 유심히 바라본다. 마치 전에 본 적 있는 것 같은 눈으로 계속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해안 길은 정곡마을로 이어져 있는데, 정곡마을은 창원 특례시의 마지막 동네이고 이곳을 지나니까 터널이 보인다. 이 터널을 지나면 고성군의 회화면이 시작되는 곳이다.


창원시를 뒤로하고 터널을 넘으니까 고성은 또 다른 느낌이 온다. 여기도 아직 바닷길로 가는 중이다. 먼저 만난 것이 고성 관광단지와 오토캠핑장이었다. 이 캠핑장에서 고개를 넘으니까 안갯속에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이 보인다.

이 작은 섬을 보면서 걸어가면 고성의 해양레포츠 단지가 나오고 당항포가 멀지 않다는 간판이 보인다


이어서 당항포의 유원지에는 인형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곧이어 당항만 둘레길 안내문이 보이면서 이 길을 조성한 경위를 적어 놓았다. 임진왜란 당시 당항포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리기 위해서 호수같이 잔잔한 당항만에 테크길과 야간 조명을 설치해서 야간 해안 둘레길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 당항만 둘레길을 걸어보니까 직선으로 길게 뻗어가다가 부드러운 곡선 길을 만들기도 하고 중간에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 길도 만들어져 바다를 보면서 바다 위를 걷는 듯한 멋진 길이다. 오늘따라 이 길을 걸어갈 때 바람이 없고 따뜻한 것이 완연한 봄날이다.

테크 다리 길 중간에 앉아서 따뜻한 봄 바다를 감상하고 있을 때 서울에 산다는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혼자 쉬고 있는 여행객에게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인사를 나누고 이 길이 아름답지 않으냐고 물으면서 본인도 여행을 다니다가 중단하고 있으며, 이 봄날에 여행을 다니는 것이 부럽다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면 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까 이곳에 아픈 부친이 있어서 내려와 병간호를 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여행을 시작할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지나가고 한참을 쉬다가 지나온 테크 길을 돌아보니까 돌아본 길은 아름다웠다.


봄이 다가오는 남쪽의 해변 길을 걷고 있지만, 어떤 목적보다는 그냥 걷는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집에 있는 것보다 걷는 것이 좋다는 마음에서 나왔지만, 그러나 걷다가 보면 발도 다리도 아프면 힘이 들어, 걷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그만두고 돌아갈 생각도 종종 하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걷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느 면에서는 걷다가 보니까 이제는 걷는 것이 취미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한창 일을 할 때는 어떤 소명이나 의욕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생각도 나지 않고 아직도 의욕적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면 과욕이 될 것 같은 마음이다. 그렇다고 그냥 하릴없이 소일하면서 지낼 수도 없는 것이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의욕이나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것이 내 마음이다.

그래도 걸으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고 지난 세월에 아쉬운 것도 생각나고, 잊고 싶은 것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더 절실한 것은 이제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유한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걷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걸었고 또 내일도 가능하면 걷고 싶은 것이다.


당항만 둘레길이 끝나는 곳에는 회화면의 면 소재지인 배둔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입구부터 공룡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가 또 파랑길의 한 코스가 끝나는 곳이다.

다시 시작하는 남파랑 길 13코스는 처음에는 논길을 따라 걷다가 바다로 향하는 강둑을 따라 걷는다. 그 강둑에 놓인 다리에도 온통 공룡 모형으로 도배를 해 놓았다.

고성에는 공룡 발자국이 있는 해안이 있다. 예전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고 그냥 해안 바위 위에 찍힌 작은 자국으로만 보였다. 그것이 공용이 밟은 자국이라는 것이다. 고성에서는 이런 곳이 있어서 온통 공룡으로 선전하고 상품화하는 것 같다.

예전에 오스트리아의 어느 도시에 가니까 이 도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차르트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이 도시는 모차르트 한 사람 때문에 먹고사는 것 같았다.

고성도 해변에 작은 공룡 발자국을 이용해서 이렇게 선전하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공용 발자국이 귀하고 소중한 것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본인에게 유리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고, 실제로 다른 지역도 별것 아닌 것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다시 바다를 만나서 바다를 건너가는 길에 다리가 보인다. 그 다리 중간에는 거북선의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이것도 당항포 해전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고, 해상 보도교라고 이름 지어 놓았다.

해상 보도교를 건너서도 해안 길을 계속 걸어간다. 이 길을 가면서 또다시 내가 걸어온 건너편 길을 돌아본다. 반대편 해변을 걸어온 길은 멀리 보이고 먼 길을 걸어온 것이다.

우리는 때로는 본인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아름다운 길이어야 하고, 내가 지금 돌아본 길도 아름답게 보인다.


이제 바다를 가로지르는 둑막이 다리를 건너서 걸어가니까 북촌마을과 남촌 마을이 나온다. 산 밑에 평화롭고 부촌 티가 나는 마을들이다.

넓은 논밭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지루하게 걸어간다.


이제는 발이 아파지는 것 같아서 정류장에 앉아 발을 주물러 본다. 그래도 아픈 발이 풀리지 않는다. 오늘은 예정한 곳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쉴 생각이다. 오늘 쉬는 마을은 두류 마을이다.

두류 마을에는 다행히 여관이 하나 있었다. 여관에는 할머니가 계시는데, 방이 있느냐 물어보니까 있다는 것이다. 방값을 흥정하면서 가격을 활인해 달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힘들다고 하다가 활인해 주었다.

그런데 마지막 말이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부탁하니까 깎아 준다"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나는 벌써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내 마음만 아직 따라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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