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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Feb 08. 2023

남파랑 길 8일차



고성 기류 항의 이른 아침은 고요하고 물결이 잔잔하다. 오리들이 평화롭게 먹이를 찾고 있다. 기류 항의 해안을 따라서 걸어가면 물가에서 먹이를 찾던 오리들은 사람이 지나가는 인기척에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오리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만, 갈매기나 다른 철새들은 놀라서 멀리로 날아간다. 해안의 모양대로 길이 만들어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면서 걷는다. 마을에서 벗어나 조금 떨어진 독가촌의 농장을 지날 때 대문을 봉황 마크로 만든 황금색 철문을 만들어 놓은 농가도 있었다.


야산으로 들어가서 작은 고개를 넘어서니까 대형 조선소가 보인다. 조선소가 규모가 커서 한 시간을 걸어서 겨우 조선소를 벗어났다. 벗어나서 보니까 고성군은 지나고 통영 땅으로 들어와 있다. 아마도 조선소도 통영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조선소 언덕길에서 남파랑 길을 걷는 나이 든 부부를 만났다. 나를 뒤에서 따라온 것이다. 보기에는 내 나이가 비슷할 정도로 늙어 보였는데 걸음이 빠르다. 어제 내가 묵은 같은 여관에서 보내고, 아침에 출발했다는 것이다. 남파랑 길을 걸으면서 작은 동네에서는 숙소가 많지 않아서 예상되는 일이다. 부부는 걷기를 좋아해서 같이 남파랑 길을 걷는 중이고, 걷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부부들은 걸음이 빨라서 먼저 걸어갔다. 걸음이 빠른 것은 아마도 나보다 나이가 아직 젊었다는 뜻인 것 같다. 이 부부들을 걸으면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황리 사거리에서 다시 남파랑 길 코스가 시작되었는데, 이곳은 차들이 많이 다녀서 소음이 너무 심하다.

차가 다니는 길을 같이 걸어가니까 차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과 매연도 있어서 이런 길은 걷기가 힘들다

시끄러운 도로를 따라서 걷다가 오른쪽으로 틀어져 산 쪽으로 올라간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일단 조용하고 차가 다니지 않으니까 마음이 편안하고 걷기가 수월하다. 고요한 아침에 홀로 걸어가는 조용한 길이 처음에는 좋은 기분이었지만, 경사가 급한 임산도로여서 갈수록 숨이 차고 발걸음이 느려진다.

적덕 삼거리까지 3km 가 넘는다는 이정표를 보면서 생각 없이 마음을 비우고 계속 걸었다. 고개의 정상을 넘어서 다시 내려가니까 멀리 바다에 보이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도 건물이나 전봇대가 없으면 멋진 풍광이었을 장소이지만, 지금은 사람의 손길이 너무 많은 곳으로 별로이다.


다시 만난 것이 해안 도로이고, 왼쪽은 바다이고 오른쪽은 차가 다니는 도로를 걸어간다. 이 길을 걸으면서 혼자 걷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혼자 걸어가면 외로운 생각은 당연히 들고, 지루한 길을 걸어가니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예전에 아쉬운 생각은 많이 떠오르지만, 즐거웠던 것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쉬운 생각 뒤에는 반성도 하지만, 보통은 잊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지나간 것이므로 어떻게 할 수가 없기도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니까 그런 것이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생각나지 않게 하는 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낀다.

혼자 걸어가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신경 쓸 관계도 없으니까 마음은 편하다. 가다가 쉬고 싶으면 쉬고, 몸이나 기분에 따라서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으니까 좋은 것 같다.

혼자 걷다가 보면 때로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몸과 마음이 상쾌한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설렐 때가 종종 있다. 이런 기분 때문에 혼자 걷을 수 있는 것 같고, 온전히 자기를 있는 그대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 걷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는 혼자 걷는 것이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해변 마을에서 다시 창포마을을 만났다.

이 작은 항구마을은 통영의 창포마을이고, 어제 지난 창포마을은 창원의 마을이었다. 창포라는 이름이 바닷가 항구 이름으로 좋은 것 같다. 창포항을 지나서 굽어진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까 멀리 통영의 높은 건물이 보인다.

통영에 들어가는 입구에 죽림 소공원 자리하고 있다.

이 소공원은 공원의 크기보다는 이 공원에서 앞에 보이는 바다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잔잔한 바다와 앞에 보이는 섬들 사이로 양식장이 많이 보인다.

이 죽림 소공원에서 시작해서 정비된 해안선의 둑은 무려 2Km가 되는 직선 길이다. 이 길은 바다를 보면서 점심을 먹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손에는 종이컵을 들고서 이야기하면서 산책하는 길이다.

이 길이 끝나면 또 남파랑 길의 한 코스가 끝나고, 다시 다른 코스가 시작된다. 그곳은 통영시민충무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해가 많이 있을때 걷기를 마쳤다. 더 걸을수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더 걷기 싫어서 일찍 마치고 따뜻한 봄볕을 쬐면서 통영의 바닷가 벤치에 앉아 멍 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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