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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Feb 10. 2023

남파랑 길 9일차

통영 충무 도서관 앞에서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오르막이다.

오르막을 오르면서 바다를 보니 푸른 물은 보이지 않고,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흐릿하면서 멀리 보이는 산 위로 아침 해가 뜨는데, 미세먼지가 가려서 밝지 않는 덕분에 바다에 비친 해 그림자가 마치 저녁놀처럼 보인다.

오르막 위에서 도로 옆길을 가다가 일봉산 쪽으로 화살표 가리켜 아침부터 등산을 할 각오로 올라갔다. 산에 오르는 초입에 누가 화살표로 우회 도로라고 표시해 놓아서 아마도 그 길이 더 순한 길인 것 같아 그 방향으로 따라갔다.

한참을 가다가 화살표를 잊어버리고 일봉산 중턱의 임산도로로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니까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그곳으로 내려가니까 남파랑 길 화살표가 있었다. 오늘은 초반부터 길을 잘 찾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때부터 화살표 따라서 걸어가는데, 화살표도 잘 보이고 걷기도 힘들지 않은 것 같아 오늘은 어제보다 몸 상태가 좋았다.


그렇게 길을 세 시간 이상 열심히 걸었다. 걷다가 보니까 통영 시내로 화살표가 안내를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곳과는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용남 해안로라는 이정표를 봤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고 걸었다. 그런데 오늘 넘어야 할 신 거제 대교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쯤은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걸어가는데, 오래 보이지 않다가 멀리 다리가 보였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저기 보이는 다리가 신 거제 대교가 맞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통영대교”라는 대답을 듣고 난 뒤에 길을 잘못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남파랑 길 28코스를 지나서 29코스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남파랑 길은 통영을 지나서 거제로 갔다가 다시 통영으로 오른 구간이 있는데, 그것이 일봉산 부근에서 길이 가장 접근하는데, 운 없게도 길을 잘못 가다가 28코스를 만난 것이다. 사전에 충분하게 공부를 하지 않아서, 남파랑 길도 통영이 끝나면 거제로 가고 이렇게 남해안을 한 번씩만 거쳐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통영을 오늘 마지막 지나간다고 생각을 했지 다시 올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기 때문에 28코스 남파랑 길 화살표를 보았을 때 의심하지 않고 따라간 것이다.

그렇게 10킬로 이상을 걷고는 다시 택시를 타고 15코스로 돌아갔다.


처음에 길을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크게 실망을 하고, 일단 그 자리에 앉아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파악하고 한참을 그 자리에서 쉬었다.

정해진 길을 내가 판단을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을 누구 탓할 수도 없고, 그래도 마음은 속상하지만 이제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잠깐 길을 잃은 경우는 돌아가면 별일 아니지만, 이 경우는 반나절이나 다른 길을 걸은 것이다. 화나는 마음 같아서는 걷던 길을 그만두고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집으로 가고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는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 있어서 못할 것 같다.

살면서 방향이나 판단이 잘못되어 별로인 인생을 살아도 “이번 생은 망쳤다"라고 포기할 수없이 계속 살아야 하는 것처럼, 다시 돌아가서 걸어야 할 것 같다. 다시 길을 찾아서 가야 하는 마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마음과 같은 것 같다.

그래도 이 길을 다시 돌아가서 걷는 것은,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보다는 다시 시작하면 회복할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더 걸어서 운동을 많이 한 것도 생각났다.


다시 용남면 쪽에서 걷기 시작했다. 다리가 벌써 아픈 것 같은 기분이지만, 멀리 보이는 신 거제 대교를 향해서 걸어갔다.

신 거제 대교를 건너서 도로 밑의 작은 터널을 넘어서 가니까 해안 길이 나온다.

그 해안 길은 신 거제 대교를 바로 옆에서 보며 걷는 길이다. 안내 표지판은 다음에 후포항이 나온다고 알려준다. 후포항을 가기 전에 가까이 보이는 섬이 아늑하게 보이고, 섬이 둘러싸고 있는 듯한 곳에 집이 보인다.

그 집은 위치를 잘 잡은 별장 같기도 하고 고기 잡는 어촌 집 같기도 하다. 그런데 후포항에서 보니까 한 개의 섬이 아니라 두 개의 섬이었다. 두 개의 섬 사이에 양식하는 어구들이 바다에 가득한 것으로 보아서는 어촌 집인 것이다.


후포항을 지나서 산길로 올라간다.


산길을 내려가는 곳에는 바닷가에 청포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은 앞에는 바다, 뒤에는 산이 바람을 막아 주고 양지바른 곳이다. 그렇게 보였는데 실제로 잘 지은 집들이 많이 있었다. 거제와 통영이 가까우니까 별장인 것 같다.

그다음에 나오는 마을이 청곡 마을이다. 여기는 바다만 보이고 뒤는 산으로 가려진 동네이다.

다음 동네로 가는 길은 어김없이 작은 산을 넘어서 가는데, 이 산길에는 유자나무 밭이 많았다. 이곳이 유자로 유명한 남해안인 것이다.

청곡 마을 교회는 산마루에 자리하고 그곳을 넘으면 시등 실내 체육관이 나온다. 실내 체육관에서 시등해안을 따라 긴 테크 길을 만들어 놓아 바다를 구경하면서 걷기 좋은 곳이다.

테크 길이 끝나면 시등면 소재지가 나오면서 남파랑 길 15코스가 끝난다. 남파랑 길 15코스를 이렇게 어렵게 마쳤다.

새로 시작한 코스는 시작하고 얼마 걷지 않아 성포항으로 들어갔다.

성포항에는 도다리 경매가 한창이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경매하는 것을 구경하지 않을 수 없다. 경매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손가락 표시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

성포항 언덕을 올라서 성포중학교로 다시 언덕을 올라간다.

거기서 오르막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끝이 보이지 않은 산으로 올라가는 오르막이 나온다. 너무 걸어와서 걷기가 힘든 때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이다. 한발 한 발이 천근의 무게와 비교되는 걸음이다. 가장 나쁜 상태의 컨디션이다. 오늘 벌써 7시간째 걷고 있으니까 힘든 시간도 되었다. 그래도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내려다본 바다는 아름답다.

경치는 아름답지만 좋다는 말은 힘이 들어서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침에 보였던 미세먼지가 조금은 가신 것 같다.


그 산에서 내려가면 성내 마을이 나온다. 성내 마을은 넓은 평지와 바다를 갖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 바다에는 온통 조선소가 자리하고 있어서 옛날에 아름다웠던 풍광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산을 내려오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해 본다.

성내 마을에는 시등성의 터가 있고,

“양달석”화가의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다.

양달석 화가는 “한국적 낙원의 화가”라고 불리고, “소와 목동”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평생을 전업작가로 가난하게 살아온 화가로 성내 마을에 생가가 있다는 것이다.

화가를 자랑으로 내세우면서 마을에서 그 화가의 벽화를 구경하는 것도 신선하다.


마을 앞 도로에는 화물차와 트럭들이 물건을 가득 싣고 부지런히 다니는데, 그 소음이나 속도가 무서울 정도이다. 그런 길을 따라서 걷다가 보니까 사곡해수욕장이 나온다. 해수욕장이 그렇게 크지 않고 주변에 조선소 높은 크레인이 보이는 곳이 많아서 해수욕장의 위치로는 별로인 것 같다.

해수욕장을 지나서 다시 도로를 따라 걸어오니까 차츰 도시가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건물이나 식당들이 많이 있고 차들도 더 많이 다닌다.

장평동의 지나서 다리가 무거워서 숙소를 찾아 헤매다가 보니까 고현 시내버스 정류장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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