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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Feb 10. 2023

남파랑 길 10일차

고현 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서 대각선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다리 위를 지날 때, 물 위에는 오리 때들이 놀고 있다. 봄이 멀지 않았지만 아직은 아침에 추운 기운이 완연하다.

다리 끝까지 가서 물길을 따라가다가 다시 다리를 건너도록 지도는 가르 킨다. 그래서 그대로 가니까 길은 철문으로 막혀 있다. 길이 공사로 인해 폐쇄된 것이다. 화살표는 막혀버린 길로 안내하고 다른 화살표가 보이지 않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도 이제는 안내 지도를 보고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여유는 있다. 길은 화살표가 완전하게 안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돌아서 두 번째 건널 다리를 찾아서 가다가 다시 화살표를 찾았다. 다리를 건너서 가는 길은 산으로 가는 길이다.


입구에 석름봉 정상이라고 쓰고 3.7Km라고 쓰여 있다. 이 길은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일 가능성이 많다.

아침에 올라가는 길은 힘은 들어도 올라갈만하지만, 오후에는 등산이 정말 힘들다. 오전에 다섯 시간 정도 걷고 난 다음에 산으로 올라가면 너무 다리가 무겁다. 걸으면서 오후에 산에 오르는 코스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도 해 본다.

설름봉 정상까지 오르막이었다. 완전한 오르막은 아니지만 두 번이나 힘든 고개가 있었다. 오늘 트레킹 길은 처음에는 등산이었다. 설름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니까 역시 보이는 것은 조선소이다.

정상을 힘들게 올라가서는 다시 내려가는데, 바다도 보이지 않고 그냥 산에 등산하는 중이다. 내려가는 끝 부근에 의자도 있고 쉴 만한 곳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산속에 난 임산도로를 따라서 걷는 길이다.

임산도로는 완만한 경사도 있지만, 걷기 좋은 길도 나오기도 한다. 두 시간 이상을 걸었다. 그렇게 걷는데 힘들지는 않았지만 아무도 없이 혼자서 조용한 길을 10Km 정도 걸어갔다.


걸으면서 걷기 좋은 트레킹 길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았다.

일단은 예측 가능한 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길을 걷다 보면 발길이 자연스럽게 가는 방향이 있다. 눈으로 앞을 보기 때문에 다음에 어디로 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방향이 바뀌면 당황을 하게 된다. 예측 가능한 길은 대체로 직선 길이고 완만하게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그래야 주변의 경관도 보면서 생각도 하면서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쪽으로 길이 안내되면, 표시를 붙여 놓아도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음은 경사가 완만한 길이어야 좋은 트레킹 길인 것 같다. 경사가 완만해야 걷는데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고 오래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하게 올라가는 등산이나 계단은 올라가기도 힘이 들지만, 생각이나 주위를 돌아보면서 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계단이 많은 길은 좋은 트레킹 길이 아니다.

그리고 트레킹 길은 주위에 경관이 좋은 곳이어야 할 것 같다. 주위를 돌아보면서 걷는 길은 덜 피곤하면서 걸어보면 지루한 생각이 나지 않는 길이 된다. 주위에 빼어난 구경거리는 물론이고 차들이나 소음이 없는 조용한 길이 좋은 것 같다.


지루한 임산도로가 끝나갈 무렵에 이제 멀리 산 사이로 바다가 조금 보인다. 마을이 보이는 곳에서 대나무 사이에 핀 동백꽃이 언 듯 지나가면 대나무에 꽃이 달린 것처럼 보인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첫 번째 만난 마을은 산 밑에서 앞에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살기 좋아 보인다. 겨울에 얼었던 얼음이나 눈들은 이제 보이지 않고 들판에는 곧 농사가 시작될 것 같은 시기이다. 양지바른 조용한 곳에 할머니들이 앉아서 이야기하면서 지나가는 여행객을 유심히 보는 것은 아직 농사가 시작하기 전에 조용한 시기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이제 완전히 바닷가로 나왔다.

산에서 내려와 처음에 만난 마을을 지나서 하청야구장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야구장 부근을 걸어갈 때 “정렬문”이 서 있다. 여행하면서 처음 봤지만, 지금은 이게 무슨 문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가 많을 것 같다.


맹종 죽순 체험길이라고 걷는 길에 많이 안내하고 있어 엄청난 길인 것 같아 기대를 하고 갔다. 그 길을 가는 곳은 오르막을 올라서 작은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다. 고개를 넘어가면서 양쪽에 대나무밭이 있는 길이 죽순 체험길이었다.

여기를 지나서 다시 큰길을 걸어가면, 장목항이 나오고 장목면 소재지가 위치한다.

오늘은 어제 무리해서 더 걷지는 못할 것 같아서 여기서 숙소를 찾기로 했다. 장목면에서는 숙소가 보이지 않아 어디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아 파출소에 들어가 물어보았다.

언덕을 넘으면 모텔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게 언덕을 넘어서 그곳을 찾아갔다. 그곳은 평범하게 숙박하는 모텔이 아니라 차로만 들어가는 무인텔이고 대실만 전문으로 하는 숙소이다. 돌아오면서 다른 숙소도 찾았지만, 그곳도 역시 무인텔이다. 장목면에서는 오늘 묵을 곳이 없었다. 다시 거제시로 버스를 타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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