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익 Feb 12. 2023

남파랑 길 11일차


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에 고현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장목항으로 가는 버스를 찾았다. 터미널에 가면 버스가 금방 있을 것 같았는데 한참을 기다렸다. 터미널 마당에는 비가 계속 내리고 모두가 우산을 쓰고 다닌다.

일단은 우의를 입지 않고 버스를 탔다. 버스가 장목항에 도착할 때는 비가 그칠 것이라는 바람을 가지고 무심하게 차창으로 비 오는 들판을 바라보면서 갔다. 버스는 이번 정류장은 어디이고 다음은 어디에 선다는 것을 방송으로 알려주고, 운전사 옆 전광판에도 나오고 있어서 편리하다. 비는 계속 오는지 차장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가 우산을 쓰고 다닌다.

장목에서 버스를 내렸다.

아직 비가 많지는 않지만 오고 있다. 정류장 안에서 우의를 입고 배낭도 비닐로 감쌌다. 비 오는 늦은 겨울 아침은 아직도 쌀쌀한 기운이 있어서 우의는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다. 간간이 인도에 고인 물이 있는 곳을 피해 가면서 오늘도 걷기 시작한다.

바다의 파도는 높지 않지만 흐린 날씨에 비가 내리니까 차분하고 조용한 아침바다이다. 하늘은 아침도 구름만 보이지만, 비는 곧 그칠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나가는 바닷가 방파제 넘어 아주머니 한 분이 파도에 밀려 나오는 미역을 건지려고 해안가를 다니고 있다.


걸어가는 남파랑 길 18코스에는 발 아래로 어촌 마을이나 작은 해수욕장을 보면서 천천히 내리는 비와 같이 걷는다. 그렇게 많이 내리는 비가 아니라 걷는 데는 애로가 없지만,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볼 수는 없는 것이 아쉽다.


상포마을 가기 전에 언덕에는 잘 지은 마을이 나온다. 해안가 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위치 좋은 곳에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름도 이색적으로 모나코빌리지이다.


상포마을에서 반 시간 정도 가면 “대통령의 고장 대계”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이 “김영삼”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대통령의 생가는 증건한 건물이지만, 원래 기와집이었을 것 같고, 사는 것이 넉넉한 집이었던 것 같다.

대통령의 생가를 지나서 가는 길은 옥포 대첩로를 따라서 가는 길이다. 도로 길을 따라 걷다가 보면, 도롯가에 특이한 기념비도 서 있다. 한국전쟁 당시 공권력에 의해서 억울하게 희생된 거제 지역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이다.

덕포 해수욕장을 도로 위에서 내려다 본 모양은 너무 아름다운 항구의 전경이다.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도 맑아 오는데 비에 씻긴 집들이나 바다가 깨끗해 보인다. 덕포 해수욕장도 작은 해수욕장이지만 바다 건너편에는 큰 조선소가 보이는 곳이다.

덕포 해수욕장에서 옥포 해전 기념비가 있는 곳까지는 산길을 올라서 가는 길이다. 산속 길은 잘 만들어져 있었고, 그 산길을 1.9Km을 올라야 기념탑이 나온다.

옥포 해전은 조선 수군의 첫 해전이면서 크게 승리한 해전이다. 왜군은 4080명이 사망했는데, 조선 수군은 1명만 부상을 입었다고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다. 상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승리이고, 이 해전에서 병력 규모는 작았지만 경상 우수사 “원균”장군과 합동으로 이긴 해전이다. 해안 길에는 거의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많았다.

옥포 기념탑을 지나서 해안 길을 따라서 옥포항으로 갔다. 옥포항에는 큰 배들도 많고 멀지 않은 곳에는 옥포조선소가 자리하고 있어서 옥포는 큰 도시였다.

옥포에 도착할 때는 비는 완전히 그치고 날씨는 푸른 하늘이 나오는 쾌청한 날씨가 되었다. 아침에 비가 왔다는 것을 생각지 못할 정도로 맑은 날씨에 이제는 걷기에 덥기까지 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고 맛집을 찾았다. 여기서는 식당이 너무 많아서 고민일 정도였지만, 느낌에 순두부집이 맛집 일 것 같았다.

들어가 보니까 때늦은 점심이지만 아직도 손님들이 많았고, 역시 이름있는 맛집이었다. 맛있는 점심을 오전 종일 걷고 먹는 맛은 그만이었다.

식당에서 나이 많은 노인들이 여럿이 식사를 하면서 하는 대화가 흥미롭다. 여행 가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디가 좋다고 말하면서 하는 말이 걷기 힘이 들어서 여행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자 한 노인이 말을 받아서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다리에 힘이 있을 때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 다리에 힘이 없으니까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말이다. 갑자기 내가 걷고 있는 것이 잘하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옥포 시내도 이순신 장군을 기념하는 것이 많았는데 옥포항 부근에 옥포대첩에 관한 이은상 시인의 시를 새긴 기념공원과 대형 거북선도 만들어져 있다.


옥포조선소가 건너다 보이는 길을 따라서 남파랑 길 19코스는 만들어져 있다.

옥포 조선소를 건너다보면서 걷는 길이 거의 일직선 길이다. 그 길이 길이가 무려 7Km가 넘는 길이다. 이 지루한 길을 걸을 때는 몸에서 땀이 났다.


옥포 조선소 남문을 지날 무렵에 멀리서 외국인 두 사람이 걸어온다. 젊은 외국인은 아마도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흔히 볼 수 있는 외국인이라 눈여겨보지 않고 걸어갔다. 그 외국인 중 한 명이 내 앞에 와서는 직각에 가까운 굴신 경례를 하는 것이다. 갑자기 왜 그렇게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당황을 했다. 그 외국인들을 지나치고 생각해 보니까 낯선 나라에 와서 불안한 마음에 인사를 하고 지나간 것 같았다. 친절하게 인사하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가 봐도 수염을 깍지 않고 무거운 배낭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나이 든 여행객이 시비를 걸거나 불량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내 모습에서 불량한 것이 보인 것이다.


옥포 조선소를 지나서 장승포로 들어오는 초입에 배 모양이 보인다. 그 배 모양을 한 조형물에 서 있는 나무는 돛대처럼 보였다. 장승포 초입의 조형물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돌리게 하는 조형물이었다.

조형물을 지나서 시내로 들어가면서 꽃이 핀 나무가 있다. 매화꽃이 핀 것 같은데, 올해 들어서 매화꽃이 핀 것은 처음 본다. 여기가 남쪽이라서 꽃이 일찍 핀 것이다.

오늘은 장승포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인데, 금요일이라서 방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남파랑 길 10일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