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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14. 2023

피스테라로 가는 길

피스테라는 스페인 땅끝마을이다.

이 길은 산타아고 순례길이 끝나고, 다시 시작하여 100Km를 더 가면 땅끝마을인 피스테라이다. 피스테라를 버스를 이용해서 가는 경우가 있지만 걸어서 가기로 했다. 

이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서, 내려놓거나 버리러 가는 길이다. 


걷기를 아침 해가 뜨는 때 시작해 돌아보면, 산티아고에는 콤포 스텔라 성당의 종탑 네 개가 햇살을 받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피스테라까지 걷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피스테라는 이 길을 걸어가서 땅끝에서 버리는 의식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이나 새 마음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갖는 길이다. 

그 땅끝에서 버리는 의식은 옛날에는 버리고 싶은 물건을 태웠다고 한다. 지금은 태우지 못하게 하니까 버리고 오는 것이다. 

순례길의 연장선에 땅끝의 의미를 살려서 만들어낸 길인 것 같다. 


시골 마을의 옥수수밭 직선 길을 걷다가 그 길 끝에 수국이 활짝 핀 집을 지나면 긴 직선도로 길이다. 그 도로 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고 그 길 끝에 산으로 막혀 있다. 그 산은 어떤 식으로든 넘어야 할 것 같다는 것이 보는 순간에 느껴진다.


산을 넘으면서 오르막이 이어진다. 오르막은 역경이기도 하지만, 희망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오르막이 있는 삶은 희망이 있고 활력이 때이지만, 오르막이 없는 삶은 변화나 발전이 적은 노년의 시기이다. 나이가 들어서 인생의 오르막은 이제 끝난 시기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나름의 인생 오르막을 오르고 싶다. 내 인생의 오르막이 시작은 아니지만, 끝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 


피스테라 첫날의 오르막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렇게 힘든 인생을 이제 내려놓고 조용한 내리막을 가던지, 아니면 숨이 차고 힘이 들지만 오르막을 다시 오르는 삶을 살던지 선택을 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숨이 차고 힘든 것은 마지막까지 열심히 살라는 것 같다. 쉽고 힘들지 않은 길을 가려는 마음을 먹지 말라는 것 같다.


어제와 오늘 여러 마을 거쳐 왔지만, 마을에 성당이 잘 보이지도 않고, 있어도 한편에 소박하게 자리하면서 문도 닫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면서 마을이 나오면 성당은 가장 크고 높은 곳에 있으면서 늘 마을의 중심에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곳은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이다.


땅끝마을을 가는 사람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본 사람이 많다. 순례길이 끝나고 이 길을 걸어 땅끝에서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이다. 순례길에서 많은 생각과 참회를 하고, 땅끝에서 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이 길을 걸을 것이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버리는 싶은 것을 물건이든 생각이든 갖고 걸어갈 것이다.

나도 아직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 길을 걷는 것은 내려놓을 것이 있다는 뜻이다. 


이 길을 걷는 것은 과거의 아쉬움이나 미래의 불안도 모두 내려놓고,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 길을 걸으면서 정리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너무 바라는 것도 많았고 늘 채우려고 했지 비우려고 하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다. 이제는 비우고 내려놓는 마음을 가질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집착이 현재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을 이제 벗어나야 한다. 현재에 대한 집중이나 행복에 방해되는 것은 이 길에서 버리고 가야 한다. 


이제부터는 나무 그늘이 없는 옥수수밭 가운데로 끝이 없이 나 있는 길을 그림자와 같이 걸어간다. 마을 입구에 돌로 만든 곡물창고가 나온다. 돌기둥 위에 돌로 만든 창고이다. 돌로 만든 창고는 처음 보기도 하지만 오래된 것 같다.

다시 옥수수밭 사이로 난 길이 언덕을 향해서 올라간다. 그 오르막이 오늘 가장 높은 곳일 것 같고 그곳만 넘으면 걷기가 쉬울 것 같다. 그 길을 부지런히 힘들게 걸어갔다. 숨이 차지만 오르막까지 쉬지 않고 올라갔다. 오르막에 올라서 너무 힘이 들어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오르막 정상에서 내리막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앞에는 또 언덕이 보인다. 이것은 언덕이 아니라 작은 산이다. 

저 언덕을 정면으로 넘어갈지 아니면 옆으로 난 길로 갈지는 모르지만, 넘기 힘든 길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걷는데 중간쯤에 앞에 보이는 언덕으로 가지 않고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길이 완전히 반전이다.

저 오르막을 또 어떻게 오를 것인가 걱정을 했는데 중간에서 내리막이 나온 것이다. 마음이 갑자기 가벼워지고 발걸음도 가볕다. 이 길을 내려가니까 첫 마을에 오늘 묵은 알베르게가 있었다. 어제와 오늘 길은 오르막이 마지막에 나오는 길이어서 힘은 들었지만, 땀을 흠뻑 흘리고 걸어서 걷고 나니까 개운한 느낌이 드는 길이었다.


아침에는 6월 하순에 접어들지만, 아직도 선선해서 긴소매를 입어야 했다.

산을 넘어가면서 마을이 나올 때까지 부지런히 걸으면서 앞으로 이틀 동안 더 걷는 것보다 오늘 하루 만에 피스테라까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공룡알처럼 생긴 특이한 바위가 있는 마을을 지난다. 이곳은 피스테라로 가는 사람들이 쉬었다가 가는 곳인 것 같다. 주변에 경관이 좋고 높은 곳에 위치해 별장이 많이 보인다. 

산길을 내려가니까 잘 닦인 도로를 만난다. 도로는 안개가 자옥하지만, 산길보다 오히려 걷기는 수월하다. 도로 길을 계속 가니까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 삼거리가 파스테라와 묵시아로 가는 갈림길이다. 묵시아는 야곱보의 유품이 처음 발견된 천주교의 성지이다. 신자들은 그곳을 파스테라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곳이다.


이제는 오늘 피스테라에 도착하면 버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일단 신고 온 신발을 버리고 올 것이다. 이렇게 힘들게 걸어서 피스테라에 도착하면 벌릴 것은 신발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과거의 아쉬움을 모두 내려놓고 와야 한다는 생각도 하면서 걷는다. 

그런 생각을 여러 번 해도 남을 정도로 긴 산길이다. 그 산길을 혼자서 걷다가 양팔을 벌려서 허수아비처럼 걸어본다. 그러다가 바람이 부는 데로 양팔을 흔들어 본다. 그렇게 한참을 흔드니까 안갯속에 춤추는 허수아비가 된 것 같다.

그러다가 실제로 걸어가면서 허수아비처럼 손을 벌려 춤을 추면서, 양어깨까지 들썩인다. 춤을 추면서 가는 산길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실제로 세상은 내가 춤추면서 가도 나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길 끝에 안갯속에 아담한 항구도시가 나온다. 아름다운 항구에는 수국이 한창 피어있다. 수국이 도로나 담장 밑에도 피어있고 순례객을 위해서 잘 가꾸어 놓은 것 같다. 이름 모를 붉은 꽃이 만발한 가정집도 지난다. 

다시 산으로 올라가서 돌담길을 걸으면서 피스테라가 이 산을 넘으면 나타날 것 같다. 이제 마지막 항구마을인 피스테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땅끝까지 3Km를 걸어갔다. 중간에 있는 야곱보 동상은 땅끝으로 가는 모습이다. 스페인 땅끝이 보이고 0.000Km의 표지석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고 다시 스페인 땅끝까지 온 것이다. 900Km를 걸어온 것이다. 

이제 스페인에서 걷기는 끝났다. 마지막에 힘들었지만, 내려놓고 싶은 심정에서 걸어온 것이다.

대서양이 보이는 바위 위에는 쇠 신발이 있고, 그 앞에 붉은 장미가 놓여 있다. 이제까지 신고 걸어온 신발을 벗어 놓고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끝없는 수평선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난다.

신발만 외로이 대서양에 남겨두고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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