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햇볕은 열기가 너무 심해서 걸어가면 지열이 얼굴로 올라와서 후근 거릴 정도이다. 이런 날은 시골길도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렇게 더운 날은 한더위가 지나고 네시 넘어야 일터로 나오는 사람이 보인다.
지열이 올라오는 것이 보이는 길을 따라서 차로 한 절 길을 가다가 보니까 길옆 냇가에 사람이 보였다. 한낮 더위에도 물에 들어가 허리 숙여서 다슬기를 줍는 것 같았다. 머리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고무줄이 헐렁한 바지가 엉덩이에 걸쳐 있는 것이 늘 굽은 허리로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할머니이다. 아침 일찍이 들에 가기 위해서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이나 냇가에 다슬기를 줍기 위해 허리 굽힌 모습이 야간 더 굽혀져 있지만 비슷했다. 할머니는 한낮에 더위를 식히면서 다슬기도 줍기 위해서 나왔겠지만, 한창 더운 땡볕에 젊은 사람들도 나오기 싫어하는 시간이다. 할머니는 집에서 가만히 쉬는 것보다 차라리 땡볕에 다슬기를 주우러 나온 것이 마음이 더 편한지도 모른다. 다른 할머니들이 주워가기 전에 하나라도 더 주워서 냉장고에 넣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십오 리 정도 떨어진 마을에서 시집을 와서 차멀미가 너무 심해서 백리 밖에 나간 적이 없이 이곳에서만 살았다. 그러니 다슬기는 칠십여 년을 주어 왔다.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에는 일을 하지 못하는 한낮이나 저녁에도 주우러 나왔다. 그래서 다슬기를 삶아서 소금을 쳐 놓으면 아이들이 즐겨 까서 먹기도 하고, 알은 까서 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그렇게 먹던 다슬기 언제부터인가 누구나 좋아하는 다슬기 국이 되었다. 자식들이 고향에 오면 말은 안 해도 다슬기 국을 끓였고 자식들도 다슬기 국을 먹어야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고 그 맛이 어머니의 맛이 되었다. 할머니는 올해도 자식들이 맛있어하는 다슬기 국을 끓이기 위해서 냇가에 나온 것이다.
다슬기는 여자들이 주로 주었고 남자들은 물고기를 잡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지금은 누구나가 줍는 것 같다. 냇가에 어딜 가도 늘 있던 다슬기였지만 지금은 줍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예전처럼 많지는 않다. 그래도 다슬기는 번식력이 좋아서 늘 가면 빈손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다슬기 많이 나오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도 많이 알려져서 늘 사람이 많다. 다슬기를 주우러 이제는 먼 곳에 사는 사람도 오고 남자들도 주우니까 늦으면 주울 것이 없어지니까 할머니는 시간이 나면 냇가로 나오는 것이다. 작년에 많이 줍던 곳을 올해는 못 주우면 왠지 내 것을 잃은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할머니가 주로 가는 곳은 교회 밑 냇가와 한절 보 밑이었는데, 교회 밑 냇가는 지난주 여러 날 내려가서 주었다. 거기도 벌써 사람들이 많이 주워서 작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주워서 냉장고에 넣었다. 한절 보 밑은 수로 작업으로 물이 넘치지 않아서 이제 다슬기가 없어서 보 위로 올라가서 주워야 될 것 같다.
다슬기를 주우면 시간이 언제 가는 줄도 모르고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있으니까 더운 것도 잊고 줍는 것이다. 그래서 한낮에도 등허리는 뜨겁지만 물 안이라 견딜 만한다. 할머니 오랫동안 이곳에 다슬기를 주워 왔기 때문에 어디에 어느 때 가면 많은지 훤히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할머니가 다슬기를 주우면 그곳이 많은 곳으로 알고 따라오는 경우도 있다.
냉장고에 가득 들어 있는 다슬기는 아직도 할머니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슬기를 주워서 일단은 끓는 물에 삶아서 그 알을 바늘로 빼내어서 냉동실에 넣어 놓으면 필요할 때에 녹여서 국도 끓이고 귀한 손님이 오면 묻혀서 내놓기도 한다. 그 옛날에는 그냥 삶아서 그 자리에서 알을 까먹고 그날 모두 소비했었다. 그러다가 냉장고가 나오고부터는 알은 냉동실에 오래 보관하면서 다슬기를 더 많이 주워도 처리가 되니까 시간이 나면 주우러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알도 좋지만 삶은 다슬기 물이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물도 버리지 않고 같이 냉동실에 들어간다.
이렇게 들어간 다슬기 삶은 물과 알은 할머니 냉장고 냉동실을 거의 차지한다. 자식들이 많아서 다슬기 물 한 병과 알을 하나씩 주어도 다섯 개씩 넣어야 한다. 추석이나 집에 올 때에 주는 것이 할머니의 재미이고 보람이다. 이 다슬기는 어디서도 구하지 못하는 고향의 것이고 할머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식들은 모두가 할머니 다슬기 국 맛에 길들려 져 있다. 고향 와서 다슬기 국 먹고 가지 않으면 섭섭해할 정도로 그 맛을 그리워하면서 다슬기 국을 먹으면서 자식들 입에서 “이 맛이냐”라는 말을 할 때 할머니는 사는 보람도 느끼는 것이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다슬기를 주우러 가면 위험하니까 자식들은 냇가에 가지 말라고 하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주워 갈 것이고 그럴 때면 공연히 내 것을 빼앗긴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남들이 오지 않는 한낮에 나와서 물 위에 허리 숙여 있는 것이다.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오늘도 점심을 한술 뜨자마자 다슬기 있는 곳을 찾아 유모차를 앞 세우고 한낮의 지열을 받아 가면서 걸어간다. 늘 갔던 곳으로 가는데 그곳은 풀숲이 우거져 할머니의 굽은 허리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래도 그곳에 갈 볼 작정이다.
유모차를 앞 세우고 집에서 나와 골목을 빠져나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참을 밀고 가니까 옛날 우리 논이었던 칠성바위 논이 나왔다. 그곳에는 벼가 심어져 있는데 아직은 검은색이 유난히도 짖은 것이 아마도 비료를 너무 많이 준 것 같다. 도로에는 오가는 차도 별로 없고 사람은 하도 더워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이 더위에도 자기가 생각하는 곳으로 다슬기를 잡으러 가는 것이다. 옛날에는 한 걸음에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유모차를 앞세우고 허리는 낫처럼 휘어져서 지면에 가까우니까 빨리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보일듯한 거리지만 무척이나 멀어 보인다. 그래도 이렇게 걸을 수 있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도 한다. 할머니보다 여섯 살 아래였던 종 동서는 지난해 마지막 날 이 세상을 떠났다. 같이 사는 동안 서로 의지하면 살았지만 다슬기 줍는 데는 서로 경쟁적이었다. 서로 많이 있는 곳을 알기 때문에 먼저 갈려고 매년 눈치 보기도 했다. 그래도 종동서는 할머니 다슬기 어장인 교회 밑은 할머니 때문에 잘 오지 않았다. 그러던 동서가 떠나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더 극성으로 줍는다.
할머니가 생각한 곳에 오니까 다니던 길은 풀이 너무 우거져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다른 곳으로 내려갈 길이 있는지 잘 펴지지 않는 허리를 들어서 살펴보았다. 몇 해 전에 귀농한 유별난 사람이 하는 과수원에서 양수기로 물을 푸기 위해서 냇가로 내려가는 길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다시 그쪽으로 유모차를 밀고 가 보니까 내려가는 길을 가파르게 만들어 놓았다. 유모차는 입구에 놓아두고 다리를 먼저 내리고 손으로는 땅을 짚으면서 굽은 허리는 하늘을 보면서 한 발씩 내려갔다. 자식들이 보았으면 다시는 다슬기를 못 줍게 할 모양새지만 그래도 물가에 도착했다. 물에 허리를 숙여서 잘 보이지 않지만 다슬기를 줍기 시작한다. 한낮이라 돌 위에 나와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돌을 들고서 그 밑에 있는 다슬기를 주어 보니까 이곳도 벌써 누가 다녀간 것 같다. 때로는 청태 밑에 다슬기가 숙어 있는 것도 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지만 간간이 들에 가는 경운기 소리가 들리는 것이 벌써 네시가 넘은 것 같다. 옛날 같으면 한 자루 가득 주었을 것이지만 오늘은 양파 자루 겨우 밑만 채울 정도밖에 줍지 못했다. 이제 들고서 유모차가 기다리는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올라갈 때는 손을 먼저 올라갈 곳을 짚고서 기듯이 한발 한발 올라왔다. 다시 유모차를 앞세우고 집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할머니가 다슬기를 못 줍게 하는 것이 늘어만 간다. 냇가의 축대가 나날이 높아만 가니까 내려가기가 쉽지 않아 지고,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도 다슬기 철에는 풀이 우거져서 한 키가 넘으니까 들어가기 힘들고, 자식들이 물에 들어가서 어떻게 될까 봐 못 들어 가게 하면서 안부 전화 올 때마다 확인하니까, 대답은 알았다고 하지만 수화기를 놓으면 잊어버린다. 그래도 자식이 늘 눈치가 보인다.
다섯 살이나 아래인 옆집 할머니는 집에서 나와 유모차를 밀고도 겨우 다니는 것을 보면, 할머니는 아직은 다슬기를 주울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슬기 못 줍는 날이 오겠지만 할머니는 그날을 생각하기 싫다. 그래서 한 여름의 땡볕은 다슬기 줍는 할머니에게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