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아침을 먹고 설거지하고서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중이다.
오늘도 별로 할 일이 없지만 낮에 얼마나 더울지 염려된다. 아직은 덥지 않아서 문을 닫아 놓고 있지만 더운 한낮에는 문을 열어서 맞바람이 들어오도록 해서 더위를 식힌다. 요즈음은 한낮에 더우면 문이란 문은 다 열러 놓고 가만히 집 안에 있는 것이 더위 식히는 할머니 방법이다. 지금은 할 일이 없으니까 그냥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것이다.
대문 밖에 차가 서는 느낌이 있어서 문쪽으로 몸을 일으켜 일어났다. 누가 온 것 같다. 벌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까 할머니를 잘 아는 사람인 것이다. 온종일 있어도 누가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데 이른 아침에 온 것이다.
“엄마 뭐해” 하는 소리가 읍내에 있는 딸이다. 아침에 이렇게 일찍 오는 일이 별로 없는데, 오늘 온 것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부근에 일이 있어서 가다가 엄마를 잠깐 보고 갈려고 들렸다고 한다. 할머니는 말로는 바쁜데 그냥 가지 왜 왔냐고 하지만 이렇게 보는 딸이 반갑기도 하고, 큰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다. 다른 자식들도 바쁘게 살기 때문에 명절이 아니고는 자주 오지 못하지만 읍내에 있는 딸은 자주 오는 편이다.
할머니는 온종일 혼자 보낸다. 방안에 누웠다가 일어나 집 앞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다가 매일 보는 할머니들이 모이는 정자에 가기도 하고 날씨가 더 더우면 경로당 에어컨 밑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점심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서 아침에 먹던 밥을 한 술 뜨고 다시 텔레비전을 보다가 또 놀러 나갈 때도 있고 방 안에서 소일거리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밭에 나가서 농사지으며 사니까 일 철에는 바쁘고 시간이 잘 갔는데, 올해부터는 농사를 하지 않으니까 별로 할 일이 없다. 다리가 아파서 잘 걷지 못하니까 농사를 할 수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농사할 때가 시간은 잘 갔지만, 농사한다고 다리를 무리하게 쓰면 못 걸을 수도 있다는 의사 말에 올해부터 농사를 안 하기로 했다. 농사일을 안 하면 편할 줄 알았는데 시간도 잘 가지 않고 다리 아픈 것만 생각나서 짜증은 더 난다. 이년 전만 해도 할아버지가 살아 있어서 이런 농사철에는 이른 아침에 경운기를 같이 타고 고추밭에 고추 따러 갔었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니까 이렇게 한순간에 혼자가 되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빈집을 지킨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도 가끔 나지만 지금 늘 생각하는 것이 아픈 다리이고 다리가 덜 아프면 하릴없이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낀다.
딸이 가고 나서 나서냐 대문 밖으로 나왔다. 벌써 더워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정자에 할머니들이 모일 시간은 아니고 그래도 정자 쪽으로 지팡이를 짚고 아픈 다리를 절룩이면서 걸어간다. 그런데 집 앞 냇가에 사람들이 여럿이 엎드려 무언가 줍고 있다. 아침부터 다슬기를 줍는 것이다. 요즈음 다슬기가 없다고 하지만 집 앞 냇가는 다슬기가 늘 많이 있는 곳이다. 한참을 내려다보니까 머리를 숙여서 등만 보이지만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작년까지만 해도 저곳에 들어가서 다슬기를 줍던 곳이다. 같이 줍던 신구댁도 보였다. 할머니는 정자로 가던 발길을 멈춰 다슬기 줍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다슬기가 많은지 벌써 양파 자루 밑자리를 깔렸을 정도이다. 할머니는 속으로 답답함을 느낀다. 할머니 다슬기를 다른 사람이 다 주어 가는 기분이 들고, 다리가 아프지 않으면 냇가로 내려가서 같이 주울 수 있는데 못 줍는 것이 안타깝다. 마침 친구인 신구댁이 허리를 펴서 할머니를 바라다본다. 할머니는 “다슬기 많아" 물어보니까 신구댁은 “그렇게 안 많아” 못 내려가는 줄 뻔히 알면서 “빨리 내려와”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고는 다시 머리를 숙여서 다슬기를 줍는다. 옆에 같이 줍는 사람들과 경쟁적으로 더 주우려고 정신이 빠진 것이다. 한참을 보아도 밑에서 다슬기 줍는 사람들은 정신없이 줍기만 하지 할머니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다리가 아파서 못 내려가는 자신이 무척이나 늙어 보였고 다 산 느낌이 들었다.
마침 앞집에 사는 정년을 하고 집에서 팔자 좋게 놀고 있는 아재가 지나간다. 할머니를 보고 인사를 하니까 할머니는 인사 대신 대답을 했다. “다슬기도 못 줍는 병신은 죽어야 돼”라고 엉뚱한 소리로 했다. 그러고는 정자 대신 다시 집으로 들어가면서 “다슬기 국 안 먹으면 되지 뭐” 하고는 들어갔다. 할머니는 몇 년 사이에 다리도 아프고 몸이 약해져 마음까지도 따라서 힘들어진 것이다.
할머니는 한참을 집에서 다슬기도 못 줍는 처지 때문에 마음이 울적해 있다가 텃밭으로 간다.
조금 먼 거리는 지팡이를 짚고 가는 것이 편해서 대문 앞에는 늘 지팡이로 쓰는 나무 막대기가 있다. 아직 지팡이를 사거나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언젠가 아픈 다리가 나으면 지팡이 없이 걷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있다.
동서네 텃밭에 심어 놓은 고추 보러 갔다. 몇 포기되지 않은 고추지만 벌써 진듸물이 끼는 것이 약이라도 쳐야 하는데 이웃에 부탁하기가 쉽지는 않다. 옆에 심어 놓은 고구마와 땅콩은 아직은 잘 자라고 있지만 옅은 색이 나는 것은 비료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한참을 일없이 텃밭에 서성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 먹고 집안이 더워져서 할머니들이 많이 모이는 정자로 갔다.
점심을 먹고는 하도 더워서 일 나가는 할머니들도 이곳에 모여서 놀다가 더위가 한풀 꺾이는 때에 들에 나간다. 정자에 가보니 나이가 가장 많은 할머니가 벌써 나와 있고, 유모차를 앞세우고 나오는 할머니들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도 많고, 할머니처럼 다리가 아픈 사람도 있다. 모이면 어디 가면 다리 아픈 것을 용하게 잘 본다는 이야기나 어디 가서 수술하면 허리를 잘 고친다는 말도 하고 인공관절을 넣으면 몇 년을 사용하고 누구는 몇 년째 잘 쓰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 정자에서 누구 집에 무슨 일 있다는 소식도 듣는다. 이렇게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서 했던 이야기도 또 하면서 보내다가 해가 질 무렵 더위가 한풀 꺾이면 집으로 돌아가서 일하러 갈 사람은 가고 할머니처럼 집에 있을 사람은 집에서 저녁을 준비한다.
집에서 저녁 먹을거리를 찾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린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싶어서 문을 열어 보니까 앞집에 사는 아재가 다슬기를 두 사발이 될 것 같은 량을 가지고 왔다. 오후에 앞 냇가에 주운 거라는 것이다. 아마도 아침에 다슬기를 못 줍는 것을 신세 한탄을 하는 것을 듣고 서 주어 주는 것이다. 보통 다슬기는 주우면 본인들이 먹고 잘 주지 않는데 너무 고마워서 받아서 다른 그릇에 붓고 담아온 그릇을 돌려주었다. 다슬기의 씨알이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다슬기 국을 맛볼 것 같고, 그 다슬기 국을 아제에게 한 그릇 줄 생각이다.
저녁도 끝내고 날이 어두워 지니까 더위가 한 풀 꺾이는 듯하다. 저녁이 되면 어디 놀러 갈 때도 없고 오는 사람도 없다. 어두워질수록 더 조용해진다.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경운기나 차 지나가는 소리는 들리지만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시간이 더 갈수록 차 지나가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런다가 어느 때부터 동네가 움직임이 없이 조용해져서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일 나가는 경운기 소리가 난다. 이런 조용한 밤에는 다리가 더 쑤신다. 다리가 아파서 쉽게 잠이 들지 않아서 뜨거운 수건으로 찜질을 해보지만 효과는 그때뿐이다.
잠이 안 오니까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유일하게 하는 일이다. 누워서 텔레비전은 보다가 어느 순간에 졸음이 오면 그렇게 잠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다가 새벽에 텔레비전 소리에 잠을 깰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아침까지 잠이 안 와서 일어났다 누웠다가를 반복하다가 아침이면 몸이 무거운 상태가 된다.
젊었을 때는 키도 크고 늘씬해서 이 개골에서는 눈에 띄는 축에 들어갔는데, 멀리도 못 가고 밑에 마을로 시집을 와서 도회지 한번 못 살아보고 평생 농사만 짓다가 결국은 이 개골에서 혼자가 되었다. 시부모 다 모시고 바쁜 농사철에 힘든 줄 모르고 밥하고 밭에 갔을 때가 한창 젊었을 때였다. 그 젊은 날 젊다는 생각도 없이 보내가다 시부모님 떠나시고 자식들도 출가시켜 객지로 살길 찾아서 갔을 때 할아버지와 단둘이 서 농사하면서 지냈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이제는 혼자 남았다. 홀로 된 지금 그동안 모르던 곳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다리가 아파서 잘 거동하지 못하는 불쌍한 노인이 되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집에서 가끔 할아버지 생각도 나지만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외롭다. 무엇을 먹고 싶어도 이제는 하기 싫어서 안 해 먹고 아픈 다리 탓하면서 누워 있는 것이 제일 편하다.
내일 아침에 해 뜨면 또 일어나서 움직이지만 내일 꼭 해야 할 일이 아직은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 가서 놀까도 고민도 하지만 가보면 어제 보던 그 할머니들과 서로 아픈 타령만 하다가 때 되면 먹기 싫은 밥도 한 술 떠야 되니까 집으로 왔다가 갔다가 하다 보면 앞산으로 해가 넘어간다. 그러다가 저녁이 오면 텔레비전 보다가 잠이 든다. 그래도 아픈 다리는 계속 아프다. 그러면 다시 아침이다.
다리가 아프다가 못 걸으면 다음에는 태어나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 옆집에 살던 할머니도 전동차 타고 다니다가 못 걸으니까 처음에는 도우미 아줌마의 도움으로 집에 있었는데 어느 날 시설로 가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먼 곳으로 떠났다.
할머니도 본인이 갈 곳이 보이는 것 같아 사는 것이 별거 아니고 슬퍼진다.
그래도 옛날 생각하면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면서 나오지 않는 쓴웃음을 짓으면서 조용한 저녁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