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에 가면 옥수수를 삶아서 큰 양은 대야에 넣어서 그 위에 식지 말라고 비닐까지 덮어 시장 모퉁이에 삶은 옥수수 파는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발길이 무의식 중에 아주머니 앞으로 갔다. 옥수수 가격을 묻고는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비닐을 걷고 김 나는 옥수수를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 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옥수수 사라고 외치지는 못하고 사 달라는 애절한 눈빛만 보내는 아주머니 얼굴에서 그리운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대도시 유명한 재래시장에 가면 손님이 많이 오는 점포 골목에 솥을 걸어 놓고 즉석에서 옥수수를 져서 파는 곳이 있다. 다른 물건을 파는 점포로 있다가 잘 사 먹는 옥수수 삶아 파는 점포로 바꾼 것이다.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온다. 옥수수가 얼마 하지 않지만 많이 팔아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다른 물건을 팔 때보다 수입이 더 많은 올리는 것 같다. 그러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변에 옥수수 삶아 파는 가게가 더 생기는 것이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삶아 파는 옥수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이다. 유명한 관광지나 차가 주차 가능한 도로를 지나다 보면 옥수수를 삶아서 파는 곳도 자주 본다. 사실 옥수수는 누구나 먹기에 부담 없고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옥수수는 원래 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쉽게 자라고 열매도 실하게 맺기 때문에 우리 양식에 많은 도움이 되는 작물이다. 지금은 소득 작물로 재배도 많이 하지만, 밭 가장자리나 빈 공터 어느 곳이나 심으면 잘 자라는 것이 옥수수이다. 옥수수는 키가 커서 어느 정도 자라면 잡초와 경쟁해도 지지 않는 작물이면서 옥수수는 게으른 사람도 할 수 있은 정도로 척박한 땅이나 재배하기에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작물이다. 콩 같은 작물은 씨앗을 한 번에 파종해 모종을 길러서 밭으로 옮겨 심으면 인건비나 일이 쉽기도 하고 수확이 더 많은 것이 보통이지만, 옥수수는 그냥 땅에 직접 심는 것이 더 많이 달리고 실한 옥수수가 되는 작물이다. 옥수수는 이른 봄에 심기도 하지만 늦게 수확하기 위해서 초 여름에 심기도 한다.
특이 강원도 옥수수가 유명하고 또 재배도 많이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여행을 하다가 도로변에 파는 옥수수를 흔히 사 먹는데 강원도 쪽으로 여행할 때 옥수수가 맛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우리 고향도 옥수수를 많이 한다. 강원도와 가깝기도 하지만 기후도 맞는 것 같다. 고향에서는 옥수수를 강낭이라고 말하는데 내 입맛에는 고향 옥수수가 가장 맛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는 특별한 간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 간식으로는 옥수수가 최고였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먹고살기가 괜찮은 편이었다. 내가 집안에 장손이기 때문에 할머니의 극성스러울 정도로 보살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주머니를 하나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 주머니에는 옥수수가 항상 가득 담겨 있었다고 한다. 다른 간식이 없으니까 늘 할머니가 옥수수를 까서 주머니에 채워 주었던 것이다. 늘 옥수수를 과자 먹듯이 먹고 다니면서 옥수수 철에는 주머니에 옥수수가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누가 주머니의 옥수수를 빼앗아 먹거나 떨어지는 날에는 어린 녀석이 난리를 쳤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옥수수는 그 후로도 늘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여름날 옥수수가 한창 익을 무렵, 담배를 경작하는 집에서는 담배를 건조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집집마다. 황초굴이라 해서 담배를 건조하는 높은 집이 하나씩 있었다.
담배건조를 위해서 황초굴에 장작으로 불을 넣어 그 열기로 담뱃잎을 건조하는 것이다. 한번 불을 넣으면 그 담뱃잎이 노랗게 변할 때까지 중단 없이 밤낮으로 불을 넣었다. 불이 꺼지지 않도록 밤낮으로 교대로 불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장작이 다 타면 다시 넣어 주었다. 그러니 황초굴 아궁이는 늘 장작불이 이글거리면서 타고 있었다. 그때 그 좋은 장작 화력을 이용하여 옥수수를 구워서 먹었다. 한창 옥수수가 잘 익을 철이고 장작불이 좋으니까 정말로 잘 구워졌다. 옥수수뿐만 아니라 감자도 같이 구웠다. 이때가 또 햇감자가 날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황초굴에 구워 먹은 옥수수가 아직도 옥수수 중에는 최고의 맛이다. 사실 옥수수를 삶아서 먹는 것보다 구워서 먹으면 훨씬 더 맛있다. 시장에 가보면 삶은 옥수수를 다시 구워서 파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맛이 더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옛날 집에는 터가 넓은 큰 기와집이었다. 넓은 터에 특별히 다른 작물을 하기보다는 옥수수를 심었다. 사실 옥수수는 그렇게 힘 안 들이고도 심어만 놓으면 잘 자라고 키가 커서 다른 잡초가 자라지를 못하기 때문에 농사하기가 쉬운 면이 있었다.
우리 모친이 일찍이 혼자되시고 그 텃밭에 옥수수를 심어서 수확하면 장날에 내다 팔았다. 그때는 옥수수를 속잎을 하나 정도 남기고 삶았다. 시장에 팔기 위해서는 옥수수를 삶기 전에 먼저 옥수수를 까야하는데, 그때 옥수수 까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다. 모친이 하라고 하면 마지못해 하면서도 불평이 많았다.
옥수수를 삶아서 버스로 싣고 가서, 인근 오일장에 가서 팔았다. 지금 생각하면 난전에 할머니들이 나물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 파는 것과 같이 오일장에 옥수수 장사를 했던 것이다.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오일장이 서는 날 아침에 옥수수를 가마솥에 삶는다. 아침에 삶아야 시장에 가서도 따뜻하다. 그 옥수수가 덜 식게 하기 위해서 비닐을 덮고 뜨거운 그릇을 머리에 이고 버스를 타고 갔던 것이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돈을 만들어서 자식들이 필요한 것도 사고 집안에 부족한 것도 장만했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도 오랫동안 하신 걸로 기억한다. 지금도 장에 가면 옥수수를 파는 곳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참을 지켜본다. 아주머니들이 삶아서 가지고 나온 옥수수는 말없이 사면서 모친의 얼굴을 떠 올린다.
시장 가서 옥수수 파는 모친이 그렇게 못마땅하게 생각이 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이제는 먼 길을 가셨다.
옥수수를 보면 모친이 생각나고 옥수수는 모친을 생각게 한다. 특히 맛난 옥수수는 모친이 자식들을 주려고 밭가에 심은 옥수수이다. 그 옥수수가 가장 맛이 있었다. 일찍이 심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가 한여름을 지나고 추석 무렵에 나올 수 있게 늦게 심은 옥수수이다. 자식들이 추석이면 고향에 오기 때문에 그때에 수확이 되도록 시기를 잘 맞추어서 심었을 것이다. 그 옥수수는 그렇게 상품 가치가 있도록 생기지는 않았다. 그냥 실하게 익어서 먹기에 좋은 옥수수였다. 개중에는 덜 익은 것도 있고, 알갱이가 몇 개 없는 것도 있지만 그 옥수수 맛이 최고였다.
봄에 심어 놓은 옥수수가 익어서 한창 나오는 철이다. 올봄에는 모친을 생각하면서 논둑에도 심어 놓고 텃밭을 만든 곳에서 가장자리에도 심었다. 그리고 집 담벼락 밑에도 옥수수를 심었다. 옥수수수염이 말라 가는 것이 곧 수확이 가까워 온 것이다. 모친이 심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친을 생각하면서 먹을 것이다.
시장에 팔기 위해서 까기 싫은 옥수수를 억지로 까던 때가 모친은 젊은 시절이었고 자식들은 모친 밑에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옥수수를 볼 때마다 모친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