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여 호가 넘는 시골의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가 된 노인은 이른 아침에 경운기를 몰고 밭으로 간다. 경운기 뒷좌석에는 반세기를 넘게 같이 살아온 할머니도 타고 있었다. 같이 아침이면 밭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노부부의 일상이다. 힘에 부쳐서 그렇게 많이 농사는 못 하지만 올해도 고추와 콩을 심어 놓고 철 따라 할 일을 하고 돌아오면 노부부는 적적한 집에서 서로 바라보면서 덜 외롭게 지내는 것을 위안으로 살아간다.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회로 한 것이 노부부에게는 가장 행복된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자식 공부시킬 일 없고 돈 들어갈 일도 없어서 큰돈 벌 일도 없지만, 그래도 아프지 않고 늘 하던 농사 하면서 사는 것이 바람이다.
수년 전 이때쯤에 오대산 큰 사찰에서 전갈이 왔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아들에 관한 소식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잘 사리라 늘 바랐던 아들이다. 그러던 아들이 스님이 되어서 오대산으로 출가했다는 소식이다. 소식을 들은 시간이 일에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던 때였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할머니와 같이 한동안 멍하니 어두워 오는 앞산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 아들은 노인이 온종일 농사해 도시로 보내 다른 부모들도 못 시킨 대학까지 한 아들이다. 아들이 고관대작은 되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평생 월급 받는 공무원이라도 되길 바라던 아들이다. 그런 바람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남은 것은 허탈함뿐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밤새 한잠도 못 자고 뒤척이다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남쪽 지방에 있는 어느 사찰을 찾아 나섰다. 이름만 들었지 노인은 처음 가는 곳이고 그 사찰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그 사찰은 여동생이 주지로 있는 곳이다. 여동생은 젊어서 출가를 해서 이곳에 주지로 머물고 있다. 집에서 일찍 출발했지만 오후쯤에 사찰 부근에 도착해서 물어서 찾아갔다.
여동생을 만나면 무슨 억한 심정으로 조카까지 스님으로 만들었느냐고 따지면서 지금이라도 조카를 원래대로 돌려보내라고 항의하러 온 것이다. 여동생을 보자 화가 머리까지 올라왔지만, 승복 입은 여동생이 낯설기만 해서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노인의 생각은 아들이 여동생을 찾아와서 출가에 대해서 상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온 것이다.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까 여동생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노인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으니까 서둘러 돌아서 나왔다. 여동생은 하룻밤 묵어가라고 했지만 사찰에서는 더 있기 싫고 인근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다시 오대산으로 가서 아들을 설득할 생각을 했다.
오대산에서 노인은 난리라도 칠 생각이었지만 규모가 큰 사찰에서 그런 분위기 아니어서 일단 아들을 찾았다. 여러 번 묻고 이곳저곳을 다닌 끝에 아들과 마주했다. 아들을 보자 당장 집으로 가자고 소리쳤지만 아들은 울기만 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 이렇게 출가하면 안 된다고도 하고, 집안의 장손이 가문을 이어야 한다고 설득도 하였지만 노인은 절망감을 느꼈다.
오대산에서도 늦은 저녁 무렵에 발길을 돌리면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 허망하고 허탈한 마음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온갖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고 무력함을 느끼면 산사에서 민가까지 내려오는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졌다. 할머니와 같이 농사해서 아껴서 대학까지 시키면서 남들에게도 자랑스러웠는데 아들은 이제 스님이 되어서 할아버지 곁을 떠났다.
노인은 손이 귀한 집안의 장남으로 나서 아버지를 도와서 농사하다가 평생 농부로 살고 있다. 밑으로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 명씩 있다.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마을에 몇 명 다니지 않았던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어릴 때니까 친구 따라갈 수도 있고 그 또래들은 교회에 나갔다가 안 가기도 하고 늘 그랬다. 그래도 노인은 부모님이 교회에 가는 것을 싫어하시니까 가지 않았다. 남동생은 중학교를 나와서는 농사를 몇 년 하다가 어느 날 부모님과 담판을 하더니 교회학교에 가겠다고 집을 나갔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부모님도 처음에는 완강히 반대를 하다가 나중에는 포기하셨다. 그렇게 오랫동안 객지에서 신학공부를 하다가 세월이 지나서 지금은 작은 도시에서 목사님을 하고 있으면서 돌아가신 부모님의 기일이나 명절에도 고향에는 오지 않는다.
그런 동생은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서 “형님은 교회에 나가야 구원받는다"라고 하면서, 교회 나가라고 전도만 한다. 그러고는 조상님들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한다.
노인 마을 주변 마을에는 목사가 된 사람이 많다.
위 마을에는 20여 명이 목사가 되었고, 한집에 한 사람은 목사가 있다고 해도 맞을 정도이다. 아랫마을에는 삼 형제가 모두 목사인 집도 있고, 노인이 사는 동네에는 일찍이 이름 있는 목사가 있었는데 노인의 형님뻘 되는 분으로 이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전파한 분이다.
이렇게 목사가 많다 보니까 윗마을에는 목사로 성공한 유명한 분도 있다. 그분도 형편이 어려워서 중학교를 중간에 마치고 객지로 나가서 야간 학교 해서 힘들게 목사가 되셨다. 그 목사는 다른 방법으로 먹고 살길이 없어서 오직 먹고살려고 한 것이 도시가 개발되는 곳에 자리 잡아 성공한 것이다. 운이 좋은 목사가 된 것이다.
노인이 사는 곳에서 이렇게 목사가 많은 것은 먹기 살기 위한 직업으로 선택한 경향이 짙다. 학교를 많이 할 돈도 없고, 학교 시켜줄 사람도 없으니까 돈이 적게 드는 신학을 택한 면도 있고, 시골에서 농사 돕고 공부할 시간도 없었지만, 대체로 실력이 없어서 정규대학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상대적으로 들어가기 쉬운 신학교에 들어간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니까 목회란 직업도 괜찮은 직업으로 자리하고 있다.
어느 날부터 노인의 막내 여동생 소식이 끊어졌다. 부모님의 걱정도 있고 해서 찾아 나섰다. 수소문해 보았지만 찾기란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찾지 못해서 나쁜 일이 생긴 것인지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러던 중에 누가 어느 사찰에서 여동생인 것 같은 사람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만 듣고 여동생을 찾아서 그 사찰에 갔다. 여동생 이름을 말하니까 모른다고 했다. 그러다가 처녀 때 사진을 보여 주면서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여러 스님 중에 한 분이 비슷한 얼굴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다른 사찰을 가 보라고 해서 그곳에 가보니까 또 다른 곳에 가라고 했다. 우여골절을 겪고서 여동생을 만났다. 머리를 깎았지만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여동생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비구니가 된 것이다. 부모님 이야기를 하고 설득해도 비구니로 살겠다는 뜻을 말릴 수가 없었다. 가끔 연락은 왔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도 집에 오지 않았다.
많지 않은 두 동생들이 목사와 스님이 된 것이다. 노인은 이제 종교는 생각하기도 싫어졌다. 그래도 노인은 신념이 있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조상님에 대한 제사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시고 있다.
노인의 형제들은 믿는 신은 서로 다른 것이다. 이제 와서 누가 좋고 나쁘고를 따지기 싫고 서로 존중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래도 내 자식들은 나처럼 무교로 조상을 믿고 살기를 바랐는데 스님으로 출가를 했으니까 생각하면 답답하고 세상일 노인의 뜻대로 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멀지 않아서 추석이 온다. 조상의 산소 벌초는 노인이 할 것이다. 다른 집은 동생들이나 자식들이 있어서 서로 웃으면서 그간 할 이야기도 하면서 같이 하지만, 노인은 혼자 해야 한다. 노인은 살았을 동안에 조상님 산소는 때 되면 벌초하고 관리되지만, 노인이 돌아가시면 그 산소는 산이 될 것이다. 올해도 산소에 벌초할 때에 이제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더 정성을 다해 풀을 벴다.
명절 때가 되면 자식들이나 동생들이 고향에 많이들 오지만 노인 집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 명절이 더 쓸쓸하고 마음이 울적하지만 그래도 조상님의 차례상은 잊지 않고 할머니와 같이 준비한다. 할머니는 명절 때가 되면 가끔 자식이 손자를 데리고 대문을 들어오는 꿈을 꾼다고 말한다.
오늘도 노부부는 경운기를 타고 들에 나간다. 그렇게 많은 것은 심지 않았지만 고추와 콩을 심어 놓았다. 벼는 먹을 만큼 심어서 농사하고 있다.
그렇게 뜨거워서 한낮에 일을 못했는데, 이제는 그런 뜨거운 철은 지났다. 얼마 안 있어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들에는 곡식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 들에 황금물결이 일 무렵이면 추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