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밭에 움직이는 파라솔

by 안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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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서 옛날 노래소리가 들린다.

고추밭 속에 나란히 서 있는 파라솔에서 들려온다. 파라솔 속에는 노부부가 고추를 따고 있다.

노인들은 힘든 고추 따기를 하면서 지루함을 잊기 위해 옛날 노래를 들으면서 세월없이 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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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대지를 달구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다. 그래도 불어 오는 바람이 시원한 들판에는 온통 붉은빛으로 변해가는 고추밭이 있다. 고추를 딸 때가 되었지만 일손이 없어서 그대로 익어만 간다.

부지런한 농사꾼은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고추 딸 때는 혼자서 다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하기 때문에 도울 일손을 있어야 하고, 그 일손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지역 사람이 없어서 타 지역 사람이나 외국 인력에 의존하고 있다.

고추가 한창 익을 무렵에는 베트남 인부가 있는 집으로 가서 사정도 해 보지만, 다른 집에 예약된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다. 고추는 붉게 익어가는 만큼 농부의 마음도 타 들어간다.

앞으로 몇 번을 따야 하지만 우선 첫 번을 따 주어야 달린 고추가 익어가고 뒷 고추가 많아진다.

고추 딸 때 인력 구하기 힘들면 내년에는 고추 농사를 덜 짓게다는 마음을 먹지만, 봄이 되면 힘들었던 생각은 잊어버리고 작년보다 조금 더 짓기까지 한다. 올해는 고추값이 많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값이 올라갈 요인에만 귀가 솔깃해져서 또 더 심는 것이다. 실제 가을에 가서 고추값이 있어서 본인만 고추를 줄렸고, 이웃집이 고추돈을 많이 사는 것을 상상하기 싫은 것이다. 특히 큰 목돈을 벌 수 있는 것은 고추이다.


고추는 구정이 지나면 하우스에 모종을 파종한다. 그 모종을 길러서 고추를 밭에 심을 때가 바쁜 때이다.

옛날에는 벼 모내기가 농가에서는 큰일이지만 고추 하는 농가는 고추심기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 같다.

그 뒤에도 고추가 자라면 줄을 여러 번 쳐야 되고, 병충해 방제도 있지만 가장 일손이 많이 가고 큰일은 고추 따기이다. 고추 따는 것은 익은 것만 따야 하고 하나씩 따기 때문에 사람의 손이 가장 많이 들고 힘이 드는 작업이다. 온종일 허리를 숙여서 고추 따기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다. 한낮에 지열이 올라오고, 몸에서는 땀이 나고 같이 동작을 반복하니까 지루하고, 아무리 따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고추밭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허리가 주로 아프다.

간혹 자식 많은 집안에서는 공휴일 날 소집해서 고추를 따기도 하지만 그때 평소에 일하지 않고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죽을 맛이다. 고생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하자니 죽을 맛이다.

특히 며느리들이 더 죽을 맛이다. 시아버지 어머니가 열심히 따는데 안 딸 수는 없고, 같이 따려고 하니까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쓰니까 온몸이 아픈 것이다.

이때 시아버지 어머니들은 며느리 보라는 듯이 더 열심히 하니까, 그것에 보조를 맞추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고추 따기라고 말하는 며느리들이 많을 것이다. 고추 따는 철 공휴일에는 며느리들은 비가 오기를 학수고대하지만 요즈음 비가 와도 우비 입고 파라솔 밑에서 고추를 딴다.


고추 따는 일은 주로 여자분들이 하고 남자들은 고추 따는 일 대신에 고추를 운반하거나 세척해서 건조기에 넣는 작업을 주로 한다.

요즈음은 고추나무에서 꼭지는 그대로 두고 고추만 분리해서 말리는 것을 선호한다. 나중에 다시 말린 고추에 꼭지를 다시 따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다.

고추 딸 때 허리가 아프기 때문에 땅에 앉아서 허리를 어느 정도 펴고 따면 덜 아프다. 그래서 처음에는 엉덩이에 두께가 상당히 있는 둥근 방석을 차고 앉아서 따다가 이제는 바퀴가 달린 수레를 타고 발로 밀고 따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 기계는 파라솔을 달아서 햇볕도 가리고 딴 고추를 담을 수 있도록 해서 고추 따는 사람이 편한 쪽으로 진화된 것이다.

고추 따러 오는 사람들은 이 기계가 없으면 고추를 안 딴다고 하니까 여러 인부를 동원했으면 그 숫자만큼 기계도 있어야 한다.

열 명 이상 고추를 따는 경우는 푸른 고추 밭에 파라솔이 펼쳐진 것을 보면 바닷가의 해변이 연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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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따서 햇볕에 그대로 말리는 경우를 태양초라고 하고, 고추 건조기에 넣어서 화력으로 말리는 것을 화근초라고 하는데 인건비 때문에 고추건조기로 말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요즈음은 고추를 말리지 않고 그대로 꼭지만 따서 생고추를 판매하는 경우가 늘어간다.

햇볕에 말리면 색깔이 곱게 나오고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약간 덜 익은 고추나 병든 고추는 잘 마르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아 손실은 있지만 태양초라고 한다.

고추 건조기에 이용하면 빨리 말리고 상태가 나쁜 고추도 잘 말릴 수는 있으니까 보통 농가에서 선호한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태양초를 선호하기 때문에 농가에서는 고추 건조기에 넣어서 살짝 화력으로 찌고 다음은 햇볕에 널어서 말리는 방법으로 태양초를 만들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인건비가 많이 드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태양초와 건조기로 말린 고추의 구분은 보통 꼭지를 보고 알 수 있는데, 요즈음은 고추 꼭지를 따고 말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태양초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말린 고추는 농협에서 수매를 하거나 아니면 개별적으로 고추 상회로 가져가서 판매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소비자와 직거래를 할 수도 있다. 고추가 나오는 물량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보관했다가 고추값이 오르면 파는 경우도 있고 돈이 급하면 건조되면 즉시 파는 경우도 많다. 수십 년 전에는 고추가 나올 때가 대학교 등록금을 주는 때였기에 그즈음에 고추가 한껏번에 나오는 시절도 있었다.

고추 팔아서 대학 등록금 마련했다는 것이 엊그제 같았지만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가격이 맞지 않으면 냉동 창고에 넣어서 다음 해 고추 나올 때까지 팔지 않고 있다가 가격이 오를 때에 파는 것이다. 고추를 냉동 창고에서 삼 년을 넣어 두고 있다가 파는 경우도 있는데, 냉동 창고에서 가장 변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농산물이 건고추이다.


예전에 고추 나는 철이 되면 고추 상인들이 오일장에 진을 치고 있다가 시골에서 나오는 고추를 서로 살려는 광경이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상인이 거의 없고, 장날에 고추를 가져오는 농민도 별로 없다.

본인들의 차가 있으니까 직접 고추 상회에 싣고 가서 팔거나 농협에 수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고추를 살려고 상인들이 저울을 들고 농가를 다니면서 일일이 농민들과 흥정하던 모습이 흔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그런 상인이 간혹 있긴 한데, 좋은 고추를 사는 것이 아니라 병이 난 것이나 불량한 고추만 헐값에 산다고 한다. 농민들은 그런 불량한 고추는 골라서 버려야 하지만 돈을 준다고 하면 파는 것이다.

그런 고추를 빻으면 색깔이 약간 다를 뿐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고추를 쓰는 곳이 있기 때문에 사러 오는 것이다. 요즈음 상인은 버려야 할 불량 고추를 주로 사 간다.


고추를 따는 사람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다. 그분들이 우리나라에 체류하면서 품삯을 받고 고추 따는 것이다. 이분들은 일이 끝나면 돈을 즉시 주어야 한다. 돈을 안 주면 일을 해주지 않는다. 먹는 것은 본인들이 해결하고 주인은 간식만 준다.

많은 고추를 농민들이 다 따기는 불가능하고 외국인이 아니면 인근 도시에서 인력이 유입된다.

고추 따는 철이 되면 외지에서 들어와 침식을 제공받고 고추를 따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는 새벽에 와서 고추를 따고 시간이 되면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기름값이라고 해서 차비를 따로 준다고 한다.

고추 따는 철에는 외부에서 많은 인력이 유입되지만 그래도 부족해서 난리이다. 돈을 더 주고라도 사람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지니까 인건비는 해마다 올라가고 있다.

사람 구하기 힘들어서 선불 주고 모셔온 외국인이 돈만 받고 야간에 도주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이렇게 힘들게 따는 고추도 가격이 있으면 좋지만, 너무 많이 심었거나 고추가 기후가 맞아서 너무 잘 된 경우는 가격이 폭락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고추를 따면 손해가 나는 경우는 고추 딴 사람 품삯 정도밖에 되지 않는 해도 있다고 한다. 이런 때는 고생만 하고 헛 농사를 지은 해인 것이다. 달린 고추를 그냥 버릴 수는 없는 것이고 사람을 사서 따기에 손해가 나는 경우는 친척이나 자식들이 많이 동원된다.

특히 자식이 많은 집은 보통 때도 고추 딸 때는 호출하지만, 고추값이 바닥일 때 더 많이 호출한다.

이렇게 고추값이 폭락할 때도 있지만 아주 높은 가격이 될 때도 있다. 이때에는 고추의 작황이 나쁘거나 병충해로 고추 생산이 적은 경우는 가격이 무한정 오른다.

농가에서 목돈을 벌 수 있는 때이기도 하고 이런 날을 기대하면서 고추를 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도 고추 값이 무한정 올라가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는다. 정부에서 수입고추나 비축 고추로 가격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해가 고추농가는 행복한 해이다.


고추는 품종이 여러 가지이다.

크게는 맵지 않은 고추와 매운 고추로 구분하지만 맵지 않은 고추 중에서도 종류가 많다.

고추 품종 중에는 고춧가루가 많이 나오고 맛이 있는 다복이라는 품종이 있다. 이 고춧가루로 김장을 하면 김장 맛이 더 좋다고 한다. 그런데 이 품종은 수확이 덜 나고 병충해도 약해서 농민들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품종은 가격이 2할 정도는 더 받지만 그래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농가 고추 밭에 가보면 보통 서너 줄은 이 다복을 심어져 있다. 본인들이 먹기 위해서다.

이 고추에는 약도 덜 치고 수확을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심는 것이다.

고추에 농약은 4일에 한 번을 치는 농가가 많다. 그렇게 하면 일 년에 10번 이상 치는 것이다. 심한 농가는 15번이나 친다고 한다. 거의 농약으로 목욕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병이 안 생기고 빛깔 좋은 고추를 수확할 수 있다. 아마도 고추에 약 치는 것을 보면 고추를 먹을 생각이 없어질 것이다.

농민들은 본인이나 자식들에게 그렇게 약 많이 친 고추는 안 먹고 약을 덜 친 고추를 먹는 것이다.

고추가 반들반들하고 잘 생긴 고추는 약을 더 많이 친 고추로 보면 된다.


한여름의 들판에 푸른 고추밭에는 여러 색깔의 파라솔이 서 있다.

푸른 밭이 한없이 넓게 펼쳐져 있고, 해변처럼 한쪽에 파라솔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한두 개가 외로이 서 있기도 하고, 여러 개가 같이 모여 있기도 한다.

그 파라솔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움직이는 파라솔이다.

그 파라솔은 햇볕도 막아주고, 비도 막아주고, 의자도 되고, 고추 자루를 실을 수도 있다.

그 파라솔 밑에는 고추 따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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