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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l 07. 2023

어둠이 내리는 베이징 공항

낯선 공항에 저녁놀이 나타나는 시간에 내렸다.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경유하는 공항이다. 공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항 안에서 머물면서 갈아탈 항공기를 반나절은 기다려야 한다. 공항에 머무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와 비슷한 모양새가 많지만, 여기도 말은 통하지 않는다. 모두가 무심히 지나가고 말없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젊은이들은 거의 전화기를 보고 있고, 나이 든 사람들은 의자에 누워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기다림이 지루하지도 않은지 열심히 떠들면서 놀고 있다. 아이들의 모습은 어디를 가도 비슷한 것 같다. 간혹 일행이 있는 사람들은 넓은 공항 로비에서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그 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공항은 넓고 한산하다.

한편에 조용히 한자리 잡아서 앉아 있으니까 지난 몇 달이 머릿속에 지나간다. 공항에는 저녁놀이 옅어져 가고 어둠이 내리면서 주변에 가로등들이 켜져 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낯선 곳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조용한 공항 로비에서 혼자된 것을 느낄 때 다시 여행 나온 것이 실감한다.


올봄에 남파랑 길을 걷고는 한동안 특별히 할 일 없이 그냥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여러 달이 되었고, 무기력하게 보낸 날들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시 보낸 것 같은데 한낮이고, 다시 밤이 찾아오는 것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때로는 아침부터 지루한 시간만 계속되면서 의욕도 없이 마음만 답답하고 웃을 일이 없는 날들이었다. 살아갈 방향을 잃고, 무엇도 하기 싫은 마음으로 보낸 것 같다. 살아갈 날에 대한 의미도 없는 것 같았고, 때로는 여기까지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사는 것이 한없이 지루하다는 것을 느꼈다.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면 삶에 활력이 돌아올까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무기력에 밀려서 생각하기 귀찮아서 그냥 지냈다.


조용한 시골에 가면 의욕이 날까 싶어서 늘 마음속에 편안한 곳으로 기억하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면 마음에 평안이 오리라 믿고 갔지만, 혼자서 몇 밤을 지내고 나니까 어두움이 밤이 더 답답하게 마음에 자리했다.

잠이 깬 새벽은 할 일 없이 어두운 밖을 바라보면은 너무 외롭고 공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다 새날이 밝으면 좋아하는 냇가로 가서 물고기를 잡아서 끓여 먹어도 보았다.

옛날에 그렇게 맛나던 매운탕도 별맛이 없고, 매운탕을 먹는 것보다 끓이는 것이 더 즐거웠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끓이다가도 하기 싫은 생각이 들어서 힘들게 했었다.

그리고 냇가에는 다슬기도 있지만, 다시 가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푸르게 짙어져 가는 들녘을 산책하는 일도 갈수록 흥미가 줄더니, 가는 날이 별로 없었다. 또 날씨가 더워지면서 깔따구가 괴롭히니까 걷기도 싫어졌다. 할 일 없이 시골에서 빈둥거리기도 지겹고, 시골의 길게 느껴지는 밤이 싫어서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도시로 다시 나왔다.


도시에서 하루는 짧은 것 같기도 하지만, 변함없는 일상이 답답해졌다. 그래도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거기도 무기력한 마음이 치유되지 않았다.

인생에서 열심히 살던 시기가 지나고, 이제 희망도, 할 일도 없는 때에 사추기를 만난 것 같다. 사추기가 오면 가장 앞에 오는 것이 외로움인 것 같다.

대화하는 사람도 줄어들고 내게 관심을 주는 사람도 없는 시절에 혼자라는 생각을 절실히 느낀다. 외로움이 무기력하게 만들고 살아갈 의욕도 없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사는 것만 아니라 주변의 일들도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열심히 의욕적으로 사는 사람을 볼 때 별난 성격을 갖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렇게 바쁘고 의욕적으로 사는 사람이 한없이 부럽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도, 공원도 가보지만, 오가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아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무심히 지나치는 나그네처럼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 중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다시 돌아온 집은 한없이 답답한 공간이다.


다시 그렇게 무료한 시간 보내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또 혼자서 여행을 시작했다.

세상에서 여행보다 더 좋은 것은 별로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혼자서 떠나는 여행은 좋은 면도 있지만, 견디기 힘든 날들도 많이 찾아온다. 여기도 찾아오는 대표적인 것이 외로움이다. 지난해에 무모할 정도로 용기를 앞세워 떠난 해외여행은 어려움이 많았다. 지나고 보니까 모르고 떠났으니까 갈 수 있었지, 알고는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선 듯 가지 못하는 것이 해외여행이었다. 가는 길이나 자는 것은 인터넷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도 여행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낯선 나라 길 찾기 하는 고행길이었다. 더욱이 언어가 되지 않아서 소통되지 않는 눈으로 보는 여행이었다. 언어가 되지 않으니까 인터넷에서 알 수 없는 길 찾기는 모두 걸어 찾아다니는 힘든 도보여행이었다. 그러다가 길을 잃어서 헤매고 다닐 때는 이국땅에서 생존의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온전히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억지로 다녔던 여정이었다.


그래도 그 여행에서 얻은 것도 있었다.

이제 다시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서 다시 한번 무모하게 해외로 나왔다. 홀로 하는 여행을 이제는 나름의 방법을 찾으려는 마음이다. 외로움이 오는 것은 막을 수 없고, 같이 여행하는 하는 미운 동료로 생각하고 가는 것이다.

이제는 혼자 하는 여행도 즐거움이 최고의 목표이다. 유아적인 생각이 들어도 하잖은 것에 즐거운 마음을 갖는 동심으로 돌아가서 여행하는 것이다.

일단은 모든 것을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호기심이 생기지 않은 것도, 호기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리하게 여러 곳을 보려고 하지 말고, 여유 있게 선택한 곳에 집중하고 즐기는 것이다. 지나가는 곳은 모두가 처음이고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동심으로 돌아간 마음으로 돌아다닐 것이다.


이제 환승 공항인 베이징 공항에서 어둠이 내리는 밖을 보면서 또 하루가 저무는 것을 바라본다. 공항에는 쉴 새 없이 밤 비행기가 오르고 내린다.

늦은 밤에 목적지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면 내일 아침에 도착할 것이다.

이것은 지난해와 같은 생각이다. 내일 여행할 곳은 내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도 달라진 것은 이제는 기본적인 준비는 하면서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여행에서 또 무엇을 얻고 느낄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가보는 것이고, 이렇게 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잊지 않을 생각이다. 감사한 생각을 하니까 낯선 베이징 공항이 정겨운 곳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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