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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l 15. 2023

노년의 삶

마타 호른의 마을인 체르마트의 저녁 무렵, 색깔 있는 간소복을 입고서 등에는 작은 배낭을 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가이드처럼 보이는 사람을 따라서 앞사람을 보고 걸어가기도 하고,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말없이 걸어가고 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손잡고 엄마와 누나는 뒤따라 간다.


멀리서 나이 든 노부부처럼 보이는 노인들이 천천히 걸어온다. 다 같이 등에는 작은 배낭을 메고 걸음이 빠르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서 얼굴에는 힘들어하는 표정이다. 아마도 같이 여행 나온 노인들이 구경을 마치고 숙소를 찾아가는 분위기이다.

걸음이 빠른 할아버지는 천천히 걷은 할머니를 연신 뒤돌아보면서 빨리 오라는 눈짓이다. 아마도 혹시 서로 떨어지면 찾는데 힘이 들어 신경을 쓰는 것일 것이다. 그래도 늙어서 같이 여행을 올 수 있는 노인들은 잘 살아가는 것이다. 늙어서 여행은 그렇게 가슴이 뛰지는 않지만, 집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것보다 좋은 것이다. 두 노인의 얼굴에는 살아온 연륜과 고단함이 함께 있는 모습이다.


늙어서 별로 할 일도 없고 남아도는 시간을 집에서 텔레비전 보면서 보내는 분들도 많다. 특별한 일도 없고 무료하고 지루한 것이 노년의 삶이다.

어떻게 보내든지 시간이 지나면 노인의 시간은 끝이 오는 것이다. 끝나기 전에 노인들의 삶은 무료하고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할 일이 없고 필요로 하는 곳도 없는 희망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이 없는 노년의 삶이 쓸쓸하고 외로운 것이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치인 것 같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동안 할 역할을 다 했으니까 자리나 위치에서 물러나야 다음 세대가 그 역할을 이어 받을 수 있기에 할 일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노년의 삶에서 평생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람들이 늘 찾는 수선공이나 전문 기술로 끝까지 일할 수 있는 분야가 있거나, 농사하면서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행복한 편이다.

예술가나 화려한 직업으로 자기 영역에서 존경받으면서 사는 사람도 노년의 삶이 행복할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사람도 재력이 없으면 더 불쌍할 수 있다. 큰 재력이 있어서 자기 돈으로 자기 영역에서 풍족하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서 어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정이라면 가족의 테두리에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덜 지루한 삶을 살 수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핵가족화되어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간혹 가족이 만나도 각자 사는 것이 익숙해서 며칠이 지나면 서로 불편하다고 한다.

그러니 늙어서 부부가 마음이 맞거나 맞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사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게 살면서 가끔 자식들이 찾아오는 것이 지금 흔한 노인들의 생활인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혼자서 외롭게 늙어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여기에 외로움과 쓸쓸함이 있는 것이다.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노인의 삶도 있다. 어려운 삶이지만 그래도 바쁘면 외로움은 덜할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그것은 힘든 삶이다.


노인들의 삶이 얼마나 무료하면 어느 도시를 살 때, 걷기 운동을 나갔는데 한 아파트에서 뻐꾹기 소리가 나는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뻐국기가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들린 것이다. 자세히 살펴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계속 걸어가는데 분명히 다시 뻐국기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자세히 보니까 베란다 한구석에 작은 할머니가 앉아 있는 것이다. 못 본 척하고 다시 멀리 가면서 유심히 신경을 써서 들으니까, 뻐국기 소리는 분명히 할머니 입으로 낸 소리였다.

아파트에 갇혀 사는 할머니가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뻐국기 소리를 내어서 밑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노년에 너무 외로운 할머니의 모습을 본 것이다.


노년의 삶은 외로운 것이다.

가난은 임금님도 어쩔 수 없다는 옛말이 있듯이 사람의 노년의 삶의 외로움은 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역할과 희망이 없어진 삶에서 찾아오는 것은 외로움이다. 노년의 삶은 외로워지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래도 가고 싶은 곳도 가고 잠시라도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외로움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외롭지 않고 즐겁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마음수련을 많이 하면 좋아질 수도 있고 종교에 정신을 빼앗기는 것도 방법이다.


예전에 가족 속에서 노인의 위치는 존재 가치가 있어서 권위도 있고 역할도 있었다. 지금은 기대하기 어렵고 그런 역할도 요구하지 않는 세월이다. 그냥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고 도와주는 것이라는 요즈음이다.

그래도 노인의 삶도 끝까지 감동적으로 살거나, 지나고 나면 생각나게 하고 때로는 그리워해 주는 삶을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늙어서 화려한 삶보다는 조용하면서도 자손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살아야 한다. 농부로서 평생 일하다가 가는 사람, 자기 기능에서 일하면서 사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잘 사는 노년이다.


그래도 자기 일이 있어서 끝까지 할 수 있는 노인은 행복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경운기를 몰고 할머니는 뒤에 타고 바쁠 것 없이 천천히 밭으로 가는 노부부가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부부가 같이 농사하면서 서로 보살피면서 사는 것이 평생 일거리가 있고, 서로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삶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시골에서 그렇게 사는 노부부에게 물어보면 만족하지 못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대답하고 느끼는 것이 인생이고 노년의 삶인 것이다.

같이 여행 가방을 메고 구경 나온 노부부는 노년을 잘 살아가는 것이다. 바쁘지 않게 세상을 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보면 지루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끝까지 살 수 있다면 즐거운 것이고, 그러다가 다니는 것도 싫으면 조용히 정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로움은 친구처럼 여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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