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사람이 많이 살 때는 낮에는 골목마다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는 집안에도 사람, 마당에도 사람, 골목에도 사람이 있어서 비밀이 없었다. 누가 왔다가 가면, 동네에서 누가 봐도 보니까 금방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그렇게 빨리 돌아서 엉뚱한 소리를 할 정도로 남의 말이 많았던 시절이지만, 동네를 소리 지르고 다니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때도 그 사람들은 늘 그르려니 하는 것으로 취급했다.
소리 지르던 사람은 술을 먹으면 먹은 술이 깰 때까지 동네 골목을 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욕도 하는 것 같았지만, 주로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평소에 감정이 있는 상대를 향해서 소리를 지르다가 나중에는 상대도 없이 공연히 소리치는 것이다. 동네에서는 소리 나는 방향에 따라서 오늘은 웃못에 누가 또 술 먹고 소리 지른다고 알 정도가 되었다.
그런 사람이 마을에 세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소리 지르는 것은 처음에는 술을 먹으면 저렇게 미친다고 동네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술이 다 깨고도 습관적으로 질렀던 것 같다. 그 소리가 이웃에 피해가 되고 시끄러운 일이지만, 동네에서 신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동네에는 집안이 있고 친척들이 있어서 보호막도 되고, 또 그 가족을 봐서도 그냥 넘어갔다. 그러던 사람들은 늘 술과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이다.
동네에서 소리 지르는 남편을 둔 아주머니들과 그 자식들은 늘 불안하고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자식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객지로 돈 벌려고 떠났고, 남은 것은 오직 아주머니가 술 주정하는 남편과 같이 싸우면서 살아갔다. 살면서 즐거움도 별로이고, 먹고살기 위해 있는 토지에 농사를 아주머니 혼자서 지으면서 살거나, 농사 거리가 없는 집은 다른 집 일을 해주면서 품삯으로 살았다. 그 시절에는 도망가거나 다르게 살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고 미련스럽게 살았던 것이다. 몰라서 인생을 불행하게 살아온 것이다.
명절 때가 되면 객지로 나간 자식들이 힘들게 번 돈으로 고기와 선물을 사 오면 그것이 그렇게 대견스럽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 좋은 일도 있었지만, 객지에서 명절이 돼도 어느 때는 연락도 없이 자식들이 오지 않을 때 마음이 쓰렸다. 자식들도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소리 지르고 다닌 아버지에게 감정이 남아서 명절 쉬러 오지 않은 것이다.
나이 들어가니까 소리 지르던 술주정도 힘에 부쳐서 줄어들더니 어느 날부터는 술도 못 먹을 정도로 몸이 나빠지니까 조용해지더니 일도 했다. 그때부터는 아주머니가 조용해진 남편을 좋아하기보다는 미우니까 구박을 한다. 아주머니도 사람이니까 이제부터 복수심이 나오는 것이다. 그 많은 세월을 구박당하고 때로는 구타도 당하면서 살아온 시간 들이다. 억울하고 분해서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술을 못 먹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 같이 몇 년을 살았지만, 아래 못에 살던 김 씨와 웃못에 살던 김 씨는 환갑도 되기 전에 돌아가신다. 죽고 난 후에 오히려 남은 아주머니는 혼자 일을 해도 넉넉히 먹고살고 그전보다 마음 편하게 살아갔다. 그래도 자식들은 변변한 교육을 받지 못해서 객지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자식들도 술에 진절머리가 날 만도 하지만, 주정하는 아버지를 닮아서 술을 너무 먹어 몸에 병이 나 술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자식들은 소리 지르지는 않는다. 시대가 소리 지르면 그냥 두질 않기 때문이다. 고향에 홀로 계신 엄마를 찾아서 거의 오지 않으니까 홀로 있는 엄마도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이 원망스럽다. 그래도 자식에게 남들처럼 해준 것이 없기에 탓할 낯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남은 아주머니들은 할머니가 되어 혼자서 쓸쓸히 살아가고 있다.
소리 지르고 다니던 두 사람은 일찍 죽었지만, 한 사람은 술에서 벗어나서 술주정도 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소리 지를 힘도 떨어졌지만, 친척들이 주의도 주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동네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신고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조용히 농사짓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 아주머니와 농사도 많이 하고 일하면서 살지만, 아주머니의 심한 잔소리와 원망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도 감내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본인이 그동안 한 짓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사람은 술을 먹지 않고 농사일도 할 수 있는 것은 술주정을 하고 다닐 때도 술로 속을 버릴 정도로 마시지 않고 적당히 먹고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버릇처럼 소리 지른 것 같다. 적당히 먹은 술을 소리 질러서 확실히 깨웠던 것이다. 몸에 크 무리가 없어서 그 뒤로 건강하게 아주머니의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기죽어 살아온 것이다.
동네에서 두 번째로 나이 많은 노인이 된 예전에 소리 지르던 술 주정꾼은 이제는 할머니가 된 아주머니가 큰소리치면 조용히 집을 나와서 동네로 나온다. 일단은 피하고 보는 것이다.
몇 번 말대꾸도 해봤지만, 옛날 자기가 했던 짓들을 들고 나오면서 열을 올리는 할머니에게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제는 힘이 없으니까 할머니가 밀기도 하고, 주변에 있는 빗자루로 패기도 하니까 도망 나오는 것이다. 그래도 밥때가 되어 집에 가면 화가 덜 났을 경우는 밥을 차려주지만, 옛 생각에 화가 단단히 나면 밥도 본인이 찾아서 먹는데도 눈치가 보인다. 이제 걷는 것도 시원찮아 멀리 가지는 못해서 매일 동네 골목을 다니는 것이 일이다. 경운기는 아직도 몰 수 있지만, 작년부터 할머니가 농사 안 짓는다고 해서 같이 농사일 없이 지내는 것이다.
동네에서 할아버지 중에서 농사짓지 않는 사람은 이 노인뿐이다.
농사철이 되면 온종일 마을을 걸어 다닌다. 마을을 벗어나서 큰길이나 농로로 나가지도 않고 오직 마을 골목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다가 지치면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것이다. 이제는 누구 한 사람 말을 붙여주는 사람 없이 지나가다가 나이 많은 동네 어른이라고 인사해 주면 고맙고, 모른 척하고 지나가도 무시당한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마음은 아프지만 내가 인사받을 정도의 어른 노릇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온종일 있어도 말을 붙일 일은 하나도 없고, 동네에 돌아다니는 움직이는 벙어리 노인이 된 것이다. 노인이 다니지 않으면 골목에 무언가 없어진 듯한 움직이는 물건이 같은 존재이다.
그러다가 골목 걷는 것이 힘들고 귀찮으면 동네에서 멀리 보이는 사거리 모퉁이 옛 이발소 앞에 오래 앉아 있기도 한다. 그 모퉁이에 자주 오래 앉아 있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보기 싫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어느 날 할머니가 그곳에 앉아 있지 말라고 하면서 사람 보지 않는 곳에 있거나 집구석에 있으라고 한다. 그 소리에 겁이 나서 며칠은 그렇게 했지만, 그다음에 생각 없이 걷다가 보면 또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요즈음은 노인 일자리인 노란 쪼기를 입는 날이 있어 노인에게는 너무 좋은 일이다.
쪼기 입고 노인들 틈에서 말없이 앉아 있으면, 몇 십만 원을 주니까 답배값은 버는 것이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노인이다. 노란 조끼 입어서 번 돈이 아니면 담배도 피우지 못할 것 같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말할 사람도 없고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 그래서 담배는 낙이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
노인에게는 친한 친구는 없지만, 모두가 수 십 년을 같이 살아온 동네 사람들이다. 그 동네 사람 중에는 조카도 있고 친척도 상당히 있다. 그래서 무시는 당하지만,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것이다.
자식들도 이제는 노인을 무시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둘째는 이제 집에도 오지 않고 안부 전화도 없다. 노인은 전화기가 있지만 전화하는 사람이 없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찾는 전화가 있어 들고 다녔지만, 지금은 할머니도 찾지 않으니까 집에 그냥 두고 다닌다.
노인들은 노란 조끼를 하는 날에 아침에 출석을 부르고 나서 노인정으로 모여 화투를 친다. 점심때까지 치는 화투가 노인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그때도 화투를 말없이 치지만, 그래도 같이 놀아주니까 다행이다. 화투 치려는 사람이 많으면 노인은 제외되어 뒤에서 구경 만한다. 화투판에 넣어 줄 때가 많지만, 어느 날 노인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어서 노인정에 있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가장 보호막이 되어줄 조카가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면전에서 무안을 주고, 성질을 돋우는 것이다. 예전에 소리 지르고 친척들에게 술주정을 하던 일을 상기하면서, 심한 모멸감을 준다. 노인은 자기가 한 짓이니까 변명은 못하고, 그래도 순간 화가 올라와 소리 빽 지르고 노인정을 나왔다. 같이 늙어 가지만 조카가 삼촌에 막 말을 해도 노인정에 있는 누구도 노인을 두둔하지 않았다. 노인정에서 나와 집으로 가 누워 억울함을 삭이면서 며칠을 보냈다. 집에 있는 할머니도 조카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고소하다는 표정이다. 젊어서 너무 못할 짓을 많이 해서 지금 당하는 것이지만 노인의 외로움과 슬픔은 너무 깊다.
지난날 한 일이 용서되지 않아 노인은 외롭고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몸이 노화되어 가지만, 어디 특별히 아픈 곳도 없고 먹고 있는 약도 없다. 아마 큰 병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병원에서 보내면 이렇게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말을 할 사람도 없고 말을 걸어 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밥을 해주는 할머니가 있으니까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할머니도 친척들이 없고 동네에서 보는 눈이 없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 동네를 걷다가 다시 노인정에 갔다. 들어가면서 익숙한 풍경인 화투를 치고 있다. 노인이 오랜만에 들어오니까, 인사하는 사람도 있다. 조카는 본 척도 하지 않고 화투를 치고 있다.
이날부터 노인은 화투판에 끼지 못했다. 화투판에 한 사람이 부족해도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서 오라고 해 화투를 친다.
이제 노인정의 또래 노인들에게도 무시당하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다. 노인정 화투판 뒤편에 앉아서 구경하다가 졸기도 하고 그렇게 보내도 사람들이 있는 곳이 덜 외롭다.
없는 사람 취급당하면서 살아가는 노인은 예전에 한 짓이 아직도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때 늙어서까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젊어서는 주변에 목소리 큰 누나도 있었고 형님도 두 분이나 있어서 바람막이되었는데, 그분들은 다 가시고 이제 노인이 집안에서 가장 연장자가 되고 보니까 모두 없는 사람 취급한다. 그 목소리 큰 누나가 막냇동생이라고 제일 많이 보살펴 주었는데, 그 아들인 조카는 노인을 옛이야기를 하면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도 용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세월이 지나면 잊히기도 하지만, 노인은 잊히지도 않는다.
죽기보다 더한 외로움이 노인과 함께하고 있다.
아직 객지에 나간 경험도 없고 다른 곳에서 산 적도 없으니까 무엇이 좋은지 몰라서 그래도 덜 외로울 수는 있다. 그래도 혼자가 되고 외톨이가 되는 괴로움은 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더 나쁘다는 외로움을 노인을 몸에 달고 다닌다. 그것에 일일이 반응한다면 스트레스로 큰 병이 올 것이지만, 반응하지 않는 것이 다행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동네를 생각 없이 걷고 있는 것이다.
늘 의미 없는 걸음이지만 오늘도 동네 골목을 노인은 걷는다.
죽지 않아서 걷는 길이고 다음은 어디로 걸을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발이 가는 데로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쉬어야 할 곳에 잠시 앉아 있으면, 갑자기 할머니가 여기 앉아 있지 말라는 소리가 기억난다. 다시 일어나서 걷는다. 동네 사람들이 더러 지나간 것 같은데, 인사를 하지 않으니까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습관이 된 것 같다.
언제 이렇게 동네를 걷는 것도 걷지 않을 때인지 알 수 없다. 숨이 쉬어지니까, 걸을 수 있으니까, 걷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죽지 않으니까 걷지만,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 또 시간이 지나면 욕을 하는 조카가 먼저 걷지 못하고 먼 세상으로 떠날지 모르는 일이다.
의미를 붙일 수 없는 걸음이지만 같이 소리 지르던 사람들은 수십 년 전부터 걷지 못하고 떠났지만, 그래도 이렇게 걸을 수 있으니까 그들보다 더 잘 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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