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춥기도 하지만, 바람이 불어서 얼굴에는 마스크를 하고 걸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걷기는 오후가 되자 다리가 무거워지고 힘들어지는 때였다. 어디 바람을 막아줄 곳이 있으면 잠시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걷는 길에서 그런 곳은 보통 정류소이다.
해파랑길 5코스 울산 도심 아파트 지역을 걷고 있었는데 오르막이다. 그때 바람이 내려오는 맞바람을 맞으면서 급한 오르막은 아니지만, 올라가니까 힘이 든다. 그래도 멀지 않은 곳에 정류장처럼 보이는 것이 있어서 그곳으로 걸어갔다.
투명한 유리에 바람을 막아주는 정류장이다. 일단은 무거운 배낭을 정류장 안에 놓인 길게 만들어진 간이 의자에 내려놓았다. 바람을 막아주니까 한결 덜 춥다.
내려놓은 배낭 옆에 쉬려고 앉았는데, 긴 간 의자가 따뜻한 느낌이다. 뜻밖이라 손으로 만져보면서 확인해 보아도 따뜻하다. 전기로 하는지 의자를 따듯하게 만들어 놓았다. 바람도 막아주고 따뜻한 곳에 앉아 있으니까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이렇게 따뜻한 곳에서 앉아 쉬다가 일어나기 싫었지만, 다시 걸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정류장 의자는 강한 느낌을 남겨 주었다.
처음 걷기 시작한 해파랑길에서 만나면 반가운 것이 정류장이었다. 이곳에는 앉아 쉴 수 있은 의자가 있고 바람도 막아주고 버스 타려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쉬었다 가는 곳으로 정류장을 찾았지만, 며칠을 걸으니까 그곳이 꼭 필요할 때가 있었다. 점심때가 되어서 준비한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정류장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정류장은 해파랑길 코스가 가는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점심때가 되면 눈은 해파랑길도 찾았지만, 정류장을 찾기도 했다.
예전에 정류장은 나들이하기 위해 나가서 처음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좋은 옷 입고 어디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곳이었다. 그 옛날에는 타고 갈 개인차도 없고 보통 외출하거나 먼 곳에 가려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은 어디 가지 않아도, 공연히 버스 시간이 되면 정류장으로 가 누가 어디 가는지 구경도 하고 전송도 했었다. 버스가 들어올 무렵에도 오늘은 마을에 누가 내리는지, 어디 갔다가 누가 돌아오는지도 알 수 있는 곳도 정류장이다. 그래서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늘 기다리는 장소이고, 서로 안부를 묻는 장소이고 마을 소식이나 소문이 나누는 곳이기도 했다.
예전에 정류장은 표시도 없이 사람들이 모여 하루에 한두 번 들어오는 버스를 기다리던 곳이었다. 그때는 표시도 없고 버스 타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던 마을 입구가 정류장이었다.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정류장이 이용되다가 정류장이라는 표시부터 먼저 하기 시작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많은 곳부터 비를 피할 수 있은 정류장이 만들어지고, 그다음은 바람까지 막아주는 정류장을 만들었다. 아직도 표시만 있는 곳도 있지만, 이제는 정류장이 문까지 있어서 바람을 완전히 막아주고 의자를 따뜻하게 만들어 놓기도 한다. 더 잘 만들어진 정류장은 냉난방이 되도록 전자기구를 들려 놓은 곳도 있다.
정류장은 정거장이나 승강장, 정류소로 불리기도 한다. 이제는 지역마다 정류장을 특색에 맞게 만들어서 정류장만 보아도 이 지역의 특색이나 특산물을 알 수 있다. 고성에 가면 정류소마다 공룡 표시가 있고, 사과가 많이 나는 곳은 사과 모양을 한 정류장을 만들어 놓았다. 정류장에는 이처럼 그 지방의 특징을 잘 표현해서 만들어 놓았다.
정류장은 간이 건물이지만, 각 지역마다 모양이 다르다. 대체로 그 지역 특색에 따라 만들어져 있다.
시골에 잘 만들어진 정류장은 기와지붕에 통나무 같은 좋은 목재도 쓰고, 도로를 지나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백 년 지나도 될 정도로 튼튼하게 잘 만들어 놓았다. 도시에 잘 만들어진 정류장이 있으면 미관도 좋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좋을 것 같은데, 이제 별로 손님이 없는 시골에 그런 정류장을 볼 때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모양새이다.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정류장 홀로 멋있게 서 있다.
정류장은 버스가 서는 곳이다. 버스가 오지 않거나 이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도로가 옆에 있는 정류장은 필요 없는 건물이다. 인적이 끊기고 관리조차 하지 않으면 흉물이 될 수도 있다.
아직은 시골에도 버스 운행을 하지만, 멀지 않아 버스 운행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초등학교를 통폐합하고 스쿨버스를 이용하다가 이제는 학생이 더 줄어드니까 스쿨버스를 없애고, 택시로 등 하교 시키는 것과 같은 흐름이다.
버스의 승객이 없는데, 그 빈 버스 운행에 돈을 지원하는 것보다 여기도 다른 수단이 나올 것이다. 아마도 필요한 시간에 택시를 이용하는 학생 등 하교와 같은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정류장이 필요 없는 것이다. 잘 지은 정류장일수록 아까운 건물이 될 것 같다. 지금도 하루 한 번도 이용하지 않는 버스 정류장이 시골에는 많이 있다.
정류장은 그래도 도시에는 계속 있을 것이지만, 시골의 정류장이 그렇게 변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없어지는 시골 정류장은 이제 추억 속에 도롯가에 있는 작은 건물이 된다.
그래도 트레킹 하는 사람들에게 만나면 반가운 정류장이었다. 길을 걸을 때 햇볕도 피하고, 바람도 막아주고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화려하거나 고급스럽지는 않더라도 긴 길에 서 있는 정류장을 오랫동안 보고 싶다. 정류장은 어느새 우리 마음속에 익숙한 풍경을 자리하고 있다. 울산에서 만난 따뜻한 의자는 정류장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포근하다.
마을 앞에 있는 정류장에는 오늘도 버스를 기다리는 노인들이 나온다. 노인들이 마을에 운동 나와서 오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시골 마을 입구나 길옆에 있는 정류장은 기다림이 있는 곳이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것은 제각각이지만 기다림이 갖고 오는 곳이다.
정류장은 어디를 가기 위해서 기다리는 장소이고, 가는 그곳은 바람과 희망을 바라며 가는 곳일 것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은 궁금하고 기다려지는 것이다. 정류장은 그런 곳에 가지 위해서 오는 장소이다.
어릴 때 봄날이 되면 먼 들판 지평선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알 수 없지만,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계절이 기다려지고 설레는 마음이었다. 정류장도 그런 설렘과 기다림이 있는 곳으로 가는 곳이다.
울 엄마가 오일장 가려고 기다리던 곳도 정류장이었고, 나는 엄마가 시장 가서 돌아올 때 좋은 것을 기대하면서 기다리던 곳도 정류장이었다. 우리 삼촌이 멀리 돈 벌려고 떠났던 곳도 정류장이었다.
엄마나 삼촌도 이제는 정류장에서 볼 수 없다. 정류장에 나오는 노인들이 자꾸만 줄어간다. 정류장에 노인들이 보이지 않으면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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