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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Dec 22. 2023

왕따 노인


검은 모자를 눌러쓴 노인은 노인정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온다. 하루 한 번은 왔다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돌아간다. 

노인이 문을 열고 들어와도 누구도 돌아보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 조용히 열고 들어오기 때문에 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조용한 특유의 인기척이 나면 누군지 짐작되기에 화투 치는 노인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노인정에 노인이 들어오면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사람 취급을 한다. 그때부터 노인도 조용히 들어왔다가 뒤에서 구경만 하다가 말없이 나간다. 평소에도 말을 거의 하지 않은 편이고, 매일 다니던 골목길을 걷는 것이 하는 일이다. 집에서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알 수 없고 늘 조용히 동네 골목을 걷기만 한다. 노인은 말을 너무 하지 않아 말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늙으면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노인은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니 실수도 없고 다른 사람과 의견 충돌도 없을 것 같다. 사람들에게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은 말이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은 노인이 밉고 보기 싫어서이다. 

집단으로 왕따를 시키고 있다. 

또래의 노인이나 친척, 심지어 집에 있는 할머니까지도 미워하고 있다. 젊어서 술 주정한 것이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말 없는 늙은이가 되어 조용히 사는 노인을 옛일로 아직까지 미워할 감정이 남을 것 같지 않다. 수많은 세월이 그런 잘못도 잊게 할 정도로 시간이 지났을 것 같다. 그냥 겉보기에는 없는 사람 취급당하면서 걸어 다니는 노인의 삶이 불행하고 안타깝다.

 

왕따 노인이 노인정에서 말을 하지 않고 지낸 지도 오래되었다. 노인정에서는 화투판에 넣어주지도 않고, 왕따 노인도 말은 안 하지만 자존심이 있어 화투판에 들어갈 생각을 않는다. 이런 취급을 받으면 노인정에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하루 한 번은 들린다. 

노인정에 나오는 노인들도 연륜이 있어 이해심도 있고 서로 원만하게 보낼 것 같지만, 작은 이해관계도 자기주장만 하고, 쉽게 다투고 돌아서면 서로 험담을 한다. 그러다가 마음이 많이 상하면 노인정에 나오지 않는다. 오래 살아서 얻은 지혜는 보기 싫은 사람은 보지 않는다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왕따 당한 노인도 마음이 상해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하루 한 번은 꼭 나온다. 자기를 불쌍히 여겨서 화투판에 넣어 줄 것이라고 기대를 하는지, 집이나 골목을 다니기가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 사람 구경하러 오는지는 모른다. 왕따 노인은 그렇게 없는 사람 취급당하고부터 얼굴이 무척 수척해 보인다. 모자는 더 깊이 눌러쓰고 천천히 걷는 걸음걸이에서 외로움이 묻어 나온다. 

 

멀지 않아서 외로움과 왕따로 인해서 병이 올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있는 버릇을 들였다면 덜 외로운 마음이 들겠지만, 집에는 늘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는 할머니가 있어 편한 곳이 없다. 

같이 사는 할머니는 늘 버릇처럼 옛날 서러웠던 이야기를 하면서 밥은 해준다. 할머니도 그동안 살아온 미운 정조차 없는지 입만 열면 원망하고 미워만 한다.

왕따 노인은 주위에 편들어 주거나 눈길을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노인이 성질 같아서는 답답한 마음을 소리 지르고 한바탕 하고 싶다. 이제는 그럴 용기도 없고 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노인이 지금 죽어도 슬퍼할 사람은 주변에 없다. 같이 사는 할머니나 자식들도 슬퍼하지 않을 것 같고, 노인정에 같이 노는 노인들도 슬퍼하지 않는다. 

할머니나 자식들은 말을 하지 않지만 빨리 죽으면 좋아할 것 같고, 노인정의 노인들도 안 보이면 더 좋아할 것 같다. 이렇게 죽어도 슬퍼할 사람조차 없는 삶을, 노인은 살아있으니까 사는 것이다. 아직 죽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면서도 안 죽으니까 사는 것이다. 때로는 외로워 죽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많지만, 스스로 세상을 하직할 용기는 없다.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왕따 노인이 살아온 결과물일 것이다. 

 

노인이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옛날의 술주정이 아니라 현재 너무 자기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과 미워할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인정에 가면 나오는 음식에 대한 식탐도 대단하고, 음식을 먹고 나면 같이 설거지도 하고, 몸을 써야 하는데 노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간혹 노인정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니까 싫어하는 것이다. 옷을 안 빨아주는지 정갈하지 못하고, 말은 거의 하지 않지만, 미운 짓을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 노인이 되어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 오면 기분도 맞추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런 눈치 없이 살기에 미음을 받는다고 한다. 옛날 일보다 현재가 노인을 더 왕따 시키는 것이다. 

노인은 생각 없이 살다가 어느 누구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했고, 늙어가는 몸이지만 불쌍하다는 마음도 얻지 못했다.

 

그래도 젊어서는 노래도 잘했고, 겨울이면 솜씨 있게 나무를 해서 땔감을 준비했었다. 동네에서 가장 나무는 잘하는 것으로 인정받았다.

소나무 낙엽을 끌 때도 나뭇단이 다른 낙엽이 없을 정도로 매끈하게 했고, 잡목 나무를 할 때는 가지런하게 예쁘게 해서 나무를 지고 내려오면, 지나가는 사람마다 잘했다고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그렇게 해온 나무들을 나무 가리로 만들 때도 안전감 있고 모양 있게 솔가지로 지붕을 만들어 놓으면 누구 것보다 보기 좋았다. 그렇게 여름에 땔 화목을 준비하던 때가 노인이 가장 대접받을 때였다. 

 

오늘도 경로당에 왔다가 집으로 말없이 모자를 눌러쓰고 걸어간다. 발걸음이 빠르지 않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지나온 세월을 후회도 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는 인생이다. 

생각해 보면 왕따 노인은 자신이 죽으면 누구보다 빨리 사람들의 사람들 기억에서 잊힐 것 같은 마음이다.

이 동네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사람 중에서 좋은 사람, 아까운 사람, 생각하기 싫은 사람, 억울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왕따 노인은 좋다거나 아쉬운 사람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노인이 돌아가시면 슬퍼할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서 잠시라도 눈물을 흘려줄 사람은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아직도 죽을 날이 언제인지 모른다. 잘 걷지는 못하지만, 아직 아픈 곳은 없다. 평소에 먹는 약도 없으니까 걷는 기능이 없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왕따를 당해서 답답하고 울화통이 치밀어서 곧 몸이 상할 것 같기도 하다.

노인은 사람들이 미워하니까 더 오래 살지도 모른다. 집으로 들어가는 왕따 노인은 할머니 얼굴을 볼 생각이 나니까 얼굴이 더 굳어진다. 

 

 



#왕따 #노인정 #노인 #술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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