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동네에서 긴 겨울밤이면 같은 또래들이 모인다. 또래들은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서로 모이는 집들이 달랐다. 어른들은 자주 가는 사랑방에 모이고 젊은 사람들도 또래가 있는 집으로 모였다.
노인들이 젊었을 때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학교 하러 가거나 공장에 가지 않으면, 집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어른들과 같이 살았다. 젊은 사람들도 바쁜 농사철에는 일도 바쁘고 힘도 들어서 자주 모이지 못했지만 농사일이 끝나면 겨울밤에는 거의 만났다.
겨울이 되면 농사일은 없으니까 산에 가서 땔감나무하는 것이 주로 하는 일이다. 낮에는 나무를 보통 오전에 한 짐 하고 오후에 한 짐 한다. 그러고는 어두워지기 전에 저녁을 먹고 나머지 긴 밤은 온전히 자유 시간이다. 이런 때는 또래 누구 집으로 출근하다시피 시간이 되면 모인다. 추운 겨울이라 군불을 넣어서 뜨뜻한 방에 모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젊은 시절이었다.
낮에 있었던 이야기도 하고 동네 소문이나 또래들이 객지에 나가서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들도 객지로 가서 돈 벌 생각도 해 본다. 그러다가 했던 이야기를 또 할 수가 없으니까 다른 것을 한다.
보통은 화투를 치는 것이 주로 했고 윷놀이 같은 것은 보통날은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민화투를 치기도 하지만, 화투 치기를 할 때면 저녁을 먹은 지도 한참이 지나서 배가 출출할 때이다. 그래서 먹는 내기를 많이 했다.
돈이 별로 없는 젊은이들이라서 라면보다 국수 내기를 많이 했다. 국수도 물에 씻어 맛국물이 필요한 국수가 아니라 그냥 삶아 먹는 국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라면 내기를 할 때면 그 국물조차 모두 마실 정도로 맛난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라면과 국수를 섞어서 량도 많고 라면 국물 맛도 어느 정도 나는 것으로 했었다.
그렇게 국수나 라면 내기를 하다가 때로는 무나 김치 내기도 했다.
무는 가을에 수확해서 땅을 파고 넣고서 집 텃밭에 주로 저장을 하는데, 무 구덩이를 보통 겨우내 반찬으로 만들기 위해서 짚으로 마개를 만들어 놓는다. 필요할 때에 짚 마개를 빼고 무를 가져가고 다시 마개를 해두는 것이다. 그렇게 땅속에 저장된 무를 화투 쳐서 지는 편이 가져오는 것이다.
무도 그렇게 다른 집에서 훔쳐 오는 것이지만 어렵지 않았고, 무를 잃은 집도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무를 훔쳐 올 때는 누구 집 무가 시원하고 달다는 이야기를 소문으로 알아서 그 집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가지고 온 무가 시원하지도 않고 맛이 없으면 그 정보를 이야기한 사람에게 원망이 돌아가는 것이다. 김치는 집 가까운 곳에 독을 묻어서 보관하기 때문에 화투로 김치 내기도 했다. 여기서도 맛있는 김치가 누구 집이라는 이야기에 듣고서 그 집으로 훔치러 가는 것이다.
가장하기 힘든 내기는 곶감 치기이다. 보통은 하지 않지만, 더러 할 때도 있었다.
화투를 쳐 곶감을 훔쳐 오는 내기이다. 곶감 치기는 초겨울에 주로 하는데, 그때가 건조가 거의 되어서 먹기도 좋고 조금 지나면 손질해서 들어가기 때문에 훔쳐 오기만 하면 대박인 것이다. 여기서도 일단 화투를 치면서 서로 누구 집에 아직 곶감이 걸려 있고, 있는 곳이 어디라는 이야기를 한다.
곶감이 주로 걸려 있는 곳은 곶감을 깎은 어른이 자는 사랑방 앞이고, 어떤 경우는 높은 담배 황초굴에 매달아 두기도 했다. 그런 곳을 어디는 쉽고 어렵다는 것도 이야기하다 보면 화투 승패가 나서 어디로 갈지 정해진다. 화투를 진 사람들은 그것을 훔치러 가는 것이다. 곶감을 훔치기란 쉽지 않아 거의 실패하지만, 간혹 성공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겨우내 자랑으로 회자되고, 해를 넘겨서도 그때의 무용담으로 남기도 한다. 곶감은 그렇게 맛이 있었던 내기였다.
그러다가 닭치기를 하기도 한다.
닭은 같은 마을에서 훔칠 때도 있지만, 주변 마을에서 훔치는 경우가 많다. 닭장을 미리 아는 곳이나 현장에 가서 찾기도 한다. 보통 닭장은 대문 입구나 기거하는 방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닭장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닭을 훔쳐 올 때에 닭이 울거나 소리치면 안 되니까 일단 대가리를 움켜잡아 소리 나지 않게 하고, 다리를 푸덕거리지 못하게 감싸서 나와야 한다. 그럴 때 닭들이 회에 앉아 있으면서 잡힐 때까지 조용하면 좋은데, 닭을 잡다가 놓치거나 옆에 닭이 푸덕거리면 포기하고 도망쳐 나오는 것이 상책이다.
때로는 닭을 무사히 서리해서 나오다가 수상한 소리를 들은 주인이 나오면 닭을 들고 도망을 치기도 했다. 보통은 서리를 당한 주인이 소리치면 따라오다가 지치면 포기도 하지만, 성깔 있는 주인은 도망간 방향이나 동네로 와서 집집마다 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면서 닭서리 한 사람들을 잡아 닭값을 물려간 경우도 간혹 있었다. 들켜도 닭값만 물어주면 문제 삼지 않았고, 그냥 젊은이들의 장난으로 치부했다.
이렇게 잡은 닭은 훔쳐 가지고 와서 목 따고, 물을 끓여서 털을 뽑아서 장만한다. 다른 것도 없이 닭만 잡아서 소금에 찍어 먹어도 그날 밤은 진수성찬이 되는 것이다. 장만한 닭을 먹으면서 조금 전에 닭서리 하던 성공사례를 몇 번이나 잡아 온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서로가 무슨 역할도 이야기하고 닭은 어떻게 하면 울지 않는다고 서리하는 방법도 공유한다.
그중에 집에서 기르는 토끼를 서리하는 경우가 쉬운 것에 속한다. 토끼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구석에 몰아서 잡아서 나오면 된다. 토끼는 한 곳에 많이 사는 경우가 많아 한두 마리를 가져와도 표시도 별로 나지 않아 잃어버린 주인도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서리해 온 토끼는 가죽을 벗기기도 쉽다. 가죽에 구멍을 내고 볼펜 대를 이용해서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러면 살과 가죽 사이로 바람이 들어가서 잡아당기면 쉽게 살과 가죽이 분리된다.
다음날에는 변함없이 청년들은 산에 나무하러 갔다.
가면서 또래가 만나면 또래끼리 어제 닭서리를 한 이야기를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동네에 떠도는 소문을 들어본다. 어제는 누구 집에 닭서리 당했다고 하는 소문이 며칠 돌다가 조용해진다. 이웃 마을에서는 닭을 잃은 사람은 다른 동네에서 와 훔쳐 갔을 것이라 추측은 하지만, 며칠 지나면 닭장을 더 튼튼히 하고 운수소관으로 돌리고 그냥 지나간다. 이렇게 서리하는 것도 일 년에 몇 번이지 자주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겨울밤에 모이면 화투로 그런 내기하는 것은 같이 하는 동료의식도 있고, 같이 책임진다는 생각이 있어야 말이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마음에 훔쳐 먹는 재미도 있었을 것 같다.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나면서 설 명절이 다가오면 거의 여름에 땔 나무와 땔감들도 어느 정도 해서 마무리되고 설 명절 준비를 한다.
설 명절이 지나고 보름 무렵이 윷놀이를 하는 때이고 “대리”도 하는 시절이다.
이때는 집안끼리 모여서 하기도 하고, 같은 또래가 모여서 주로 한다. 같이 초등학교를 나온 동기들이 모여서 놀았는데, 여기서는 “대리”라는 모임을 일 년에 한 번은 했다.
“대리”는 개인들이 쌀을 작은 주발로 한 주발씩 내고, 김치와 시래기나 무를 내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래기나 무로 나물을 만들고 쌀밥을 지어서 저녁을 먹고는 모여 앉아 노래하면서 밤에 노는 것이다. 동네에서 어디 노랫소리가 나면 오늘 누구네가 “대리”한다고 알 정도였다.
그때는 반찬이 없어도 쌀밥만 먹어도 그렇게 맛이 있었다고 한다. 일 년 내내 흰쌀밥을 구경하지 못하다가 생일날이나 먹었던 쌀밥을 이렇게 “대리” 하는 날이면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잘하는 “대리”는 돈도 십 원씩 거두어서 양미리나 두부를 사다가 무와 함께 끓여 놓으면, 흰쌀밥에 이보다 더 맛있는 진수성찬은 없었다. 그것도 친한 친구들과 같이 먹는 밥이 맛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준비하느라 바빠서 온종일 힘들어하다가 늦은 저녁이니까 더 그러했다.
대리하는 날에는 처음에는 윷놀이하다가 윷놀이가 끝나면 방에 둘러앉아서 노래 부르는 것이다. 그때는 별로 재미는 없을 것 같은 노래 부르기를 한두 시간은 합창을 하면서 놀았다. 같은 동창들이 모였으니까 재미도 있었지만, 동창들도 남자 여자가 모이면 서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분위기가 색달라서 그렇게 즐거웠던 것이다.
그 시절은 한 집에 아이들이 대여섯 명은 있었으니까 집집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아이들이 많아서 노는 곳도 많았고 겨울밤에도 골목에 사람 지나가는 소리가 밤이 늦도록 들리던 시절이었다. 아침이면 누구 집에 닭 털들이 날아다니면, 어제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을 하지만 닭을 잃은 주인에게 고자질은 하지 않았다. 닭서리 하던 때를 추억으로 생각하면서 오늘도 옛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벌써 환갑이 훨씬 넘어 노인정에 오는 노인들이다. 그렇게도 없이 살아도 그때가 즐거웠고, 그립다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지나간 세월은 추억으로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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