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니까 노인들은 오전부터 노인정으로 모인다.
겨울에는 노인들이 집에 있어야 난방비만 더 나오고, 노인정에 가면 따뜻한 방에서 또래 노인들과 모여서 심심하지 않게 놀면서 시간 보내기 더 좋은 곳이 없다. 그래서 겨울에는 오전부터 할아버지는 남자 노인정에 가고, 할머니는 여자 노인정에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말하다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나라 걱정도 하지만, 대체로 화투 칠 성원이 되면 화투놀이를 한다.
화투를 하지 않으면 옛날에 잘 나가던 추억도 이야기하고 의리 있던 사람 무용담이나 별난 사람들도 대화꺼리가 되지만, 그래도 주로 자기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다가 노인정에서 민감하게 관심이 갖는 것은 누구 어디 아프다는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어디가 아파서 병원 갔는데, 얼마나 아프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다는 예상도 한다. 아플 때 몇째 자식이 병원에 데리고 갔고, 자식 중에는 누가 무엇을 하고, 사는 것은 어떠하다는 것까지 말이 오간다. 이때도 어느 자식은 효성이 있고 누구는 잘 와보지도 않는다는 험담이 오가는 곳도 노인정이다.
주변 동네에 사는 노인들까지 화제에 오르면 누구는 요양원에 벌써 갔다고 하면, 다른 노인은 며칠 전에 어디서 봤는데 안 갔다고 서로 주장이 엇갈리기도 한다. 그러면 옆에 있는 노인들이 그 사람 아직 안 갔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주장이 나누어진다. 그렇게 이야기가 궁금증이 있으면 그 동네에 아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물어본다. 알아본 대답은 요양원이 아니고 어디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그런 대화이다. 그러면 노인들은 평소에 그 사람은 그렇게 건강했는데, 노인들은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는 말로 모아진다. 노인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몸을 사용했으니, 누구 할 것 없이 탈이 날 때도 됐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노인정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못된 자식들이 있다는 말을 한다.
부모가 아프면 자기 집으로 모실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고, 거동이 불편하면 어떻게든지 요양원으로 보내서 자기들에게 전화로 아프다고 귀찮게 하거나,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나쁜 자식이 있으면 요양원에 일찍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면서 어느 동네에 사는 노인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면서 그 자식을 공부시키려고 고생하던 노인이었는데 안 됐다고 동정하면서 그 자식을 욕하기도 한다.
노인정에 모인 노인들은 나이가 더 들어 걷지 못하면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가겠다는 말은 하지만, 그때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일 것이다. 그래도 지금 잘 걷지 못하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못 걸을 때가 되면 자기 자식들도 자기를 요양원에 보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서글픈 마음이다.
자식 중에서 조상님들 산소가 어디 있는 줄 아는 자식이 없다는 말을 노인들은 자주 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조상님들 산소 벌초를 하는 마지막 사람들이고,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도 자기들이 죽으면 자식들은 안 지낼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산소를 아는 사람은 노인들뿐이고, 알려주려고 해도 오지도 않고 알려는 생각도 없다고 한탄도 한다. 조상들 묘가 묵어서 산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몇몇 집안은 노인들은 죽으면 멀리 산속에 있는 산소를 벌초할 자손들이 없을 것 같아 본인들이 살아있을 동안에 마을 가까이나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도로 옆으로 조상님들의 묘를 이장하거나 묘의 흙을 가져다가 한 곳에 조상님들의 비석을 만들고 있다. 넓은 잔디밭에 조상의 함자를 새긴 비석을 순서대로 세우고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자손들이 조상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았으니까 벌초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노인정에 모이면 그렇게 만든 노인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자랑하고, 올해는 누구네 집도 그렇게 한 곳에서 관리하는 비석들을 만들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조상님들을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비슷한 것 같다.
그렇지만 여러 말이 오가다 보면 나중에는 그렇게 모아서 관리하는 비석들조차 관리를 하지 않으면, 돌조각처럼 버려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차라리 처음 그대로 그냥 산이 되도록 두는 것이 좋다는 말도 나오면서 결론 없는 노인들의 조상 모시기이다.
노인정에서도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의견이 다른 것이 많지만, 생각이 같은 것이 있다. 앞으로는 조상에 대한 제사는 없어질 것 같고, 산소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여기 있는 노인들이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면 노인정에 모인 노인들이 자주 이야기도 하지만, 집에서 오래 아프지 않다가 죽는 것에는 모두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다가 변함없이 시작하는 것은 화투패이다.
이 화투는 노인정에 사람이 모일 때부터 변함없이 했었고, 노인정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어느 집 사랑방에 모였을 때도 화투놀이가 주로 하는 놀이였다. 세월에 따라 화투 놀이하는 방법과 내용이 달라졌을 뿐이다.
처음에는 서로 편을 나누어서 무엇을 사서 먹는 내기를 주로 했다. 그냥 화투를 치기도 했겠지만, 주로 편로 만들어 먹는 내기를 했다. 동네에 메밀묵이나 두부를 하는 집이 있으면 그것을 사 먹는 내기에서 술 먹는 사람들이 모이면 술과 안주 내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국수나 라면 내기도 했는데, 라면 값이 비싸서 라면만 하기가 부담되어 국수를 섞어서 끓여 먹었던 것이다.
더 비싼 것은 삶은 계란 내기를 할 때는 지는 편은 큰돈을 썼다고 생각했다. 어떤 날에는 닭 삶아 먹는 내기도 했는데, 이때는 동네 닭을 사다가 쌀을 넣고 양을 많이 해 먹기도 했다. 그렇게 닭치기를 하는 날이 가장 거금을 걸고 하는 날이었다.
이때 화투 못 치는 노인이나 돈이 아까워 안 하는 사람은 라면 내기를 하면 라면을 끓이거나, 계란 내기를 하면 계란을 삶았다. 닭을 삶을 때는 닭을 사 가지고 와서 요리하는 것도 그런 사람들이 했다.
그렇게 노인들의 화투는 먹고살기 어려울 때 주로 먹는 내기를 하다가 형편이 나아지면서 돈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자 노인정에서도 처음에는 백 원짜리였다. 그러던 것이 남자 노인정에는 천 원으로 올라갔지만, 여자 노인정에는 처음부터 십 원짜리를 놓고 하다가 여전히 십 원짜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백 원까지로 올라갈 가능성이 아직은 없다고 한다. 지금 할머니들이 노인정에 나오지 않아야 올라갈 것 같다. 그때는 아마도 백 원이 아니라 천 원으로 뛰어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노인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화투를 치면서 무릎이 아파 뻗고 치기도 했지만, 갈 때는 무릎이 아파서 걷기가 불편하지만 그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지는 것이 화투이다. 그때 집으로 갈 때면 할머니도 같이 집으로 가는 시간이다. 집에서 부부가 상봉해서 저녁을 먹고는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둘 다 잠이 들면, 먼저 밤중에 잠을 깬 사람이 왕왕거리는 텔레비전도 끄고, 불도 끄고서 다시 잠을 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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